한 달 내내 매일매일 면접을 본 건 아니고, 몇 단계 가량 진행한 후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그날 통보한 다음, 며칠 후에 합격자들끼리 모여서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방식이라 약 한 달이 소요되었다.
1차 면접에서 하도 덜덜 떨고 쪽팔림의 끝을 봐서 그런가 그 이후 단계에서는 별로 떨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룹 디스커션
외항사 승무원 면접의 그룹 디스커션은 워낙 후기가 많은데, 보통 (속된 말로, 먼저 나대지 말고) 미소로 호응많이 하라는 얘기가 제일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디스커션' 아닌가. 난타전으로 공격을 할 필요는 없지만,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게 합격을 보장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디스커션 할 때마다 의견개시 했다.
계획적으로 '무슨 말을 꼭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적은 없고, 한두 명쯤 의견 개시한 후에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발언을 했다.
난 자세도 자연스럽게 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한국에서 외항사 승무원 면접 본 분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룹 디스커션에서 다들 얼마나 각 잡힌 자세로 다소곳이 앉아있는지.
난 디스커션 내내 그렇게 앉아있었던 적 없다. 내 왼쪽에 있는 사람이 발언하면 왼쪽 팔걸이에 몸을 기대고 턱을 괴고 듣는 식이었다. 의도적으로 그런 자세를 취한건 아니고 듣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됐던 것이다. 내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발언하면 몸을 앞으로 숙여서 듣기도 했고, 뭔가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다리를 떨 것 같다 싶어서 아예 다리를 꼰 적도 있다.
디스커션 내내 내가 미소 짓고 있는지 여부는 신경 써본 적도 없다.
그리고 난 내가 본 모든 외항사 면접에서, 디스커션 단계에서는 단 한 번도 탈락하지 않았다.
그룹 디베이트
디스커션은 면접관이 주제 하나를 주고 10-15명의 지원자가 그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방식인데 반해, 디베이트는 면접관이 주제 하나를 주고 2명씩 지정해서 너네는 찬성, 너네는 반대 의견을 내라고 찬/반을 지정해 주는 식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찬성쪽이더라도 면접관이 너 반대해 라고 지정하면 반대 의견을 내야하는거라, 디스커션 보다는 조금 난이도 있다고 느껴졌다.
디베이트에도 첫 그룹 인터뷰 때처럼 별별 주제가 다 나왔는데, 내가 있던 조가 받았던 주제는 무려 '한반도 남북 통일이 필요한가'였다.
당시에는 대체 승무원 면접에 왜 이런 주제까지 나와야 하나 싶었는데, 나중에 현직 되고 나서 알게 된 건 승객들이나 동료 크루들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엄청 무거운 주제들 같지만 이런 얘길 스몰톡으로 제법 했다. (물론 내 경우에 종종 그런적이 있었다는 뜻이고, 모든 승무원이 매 비행마다 이런 얘길 한다는 뜻은 아니다.)
디베이트 면접에서 기억나는 것 하나.
찬반으로 나눠서 의견 세 가지씩 정리하라고 한 다음, 면접관들이 각각의 조가 정리한 의견 세 개씩 발표해 보라고 했다.
찬성조 2인은 미리 합의한 대로 첫 번째 사람이 의견 한 개, 두 번째 사람이 나머지 의견 두 개 발표를 했다.
난 반대조였고 발표 순서가 두 번째였는데, 내 파트너가 같이 정리한 의견 세 개를 모두 발표해버렸다.
어어?
면접관들이 나를 쳐다보았고 더 말할 의견이 남았느냐고 물었다.
의견 세 개씩 정리하라고 했는데 파트너가 세 개 발표했으니, 내가 더 말할 수 있는 의견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물은 것이다.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면접관분들이 '너, 더 말할 거 없지?'라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물론 당시 면접관분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건 순전히 내 시각이다.)
그래서 난 궁여지책으로
파트너가 말한 내용을 rephrase 했다.
"추가 의견은 없습니다. 제 파트너가 지금 발표한 것처럼 저희 팀이 정리한 의견은 총 세 가지입니다. 저희가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내가 무언가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자 면접관 분들이 계속 나를 쳐다보았고, 그 중 한 분이 꼬리질문을 했다.
"그럼 찬성팀 의견이 틀렸다는 뜻인가요?"
"아뇨. 시각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반대를 하라고 하셔서 단점만을 생각했지만, 저 팀은 찬성하라고 하셔서 장점만을 생각한 것이니까요. 지금 나온 의견들 중에 틀린 의견은 없겠지만, 기왕이면 면접관분들께서 통일 반대하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저랑 제 파트너가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우리가 찬성파면 어쩌려고 그래요?"
"오늘은 반대해 주십시오. 한국인인 저도 지금 면접 통과하겠다고 외국분들 앞에서 조국 통일을 반대하고 있잖습니까."
"하하하하!"
면접관분들 웃음소리에 순간 1차 안개꽃 사태가 다시 떠오르며 흠칫했지만(....) 그 이후로 별일없이 디베이트는 그렇게 통과했다.
디스커션이나 디베이트에서 꼬리질문을 받아야 통과다, 아니다 안받아야 된다 이런 말들이 많은데, 당시의 나는 단순히 꼬리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 면접관과의 대화 흐름이 끊기지 않았기 때문에 통과였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