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 곧 외항사 오픈데이가 열렸다.
오픈데이는 외항사가 승무원 채용하는 방식 중 하나로, 사전 서류 스크리닝 없이 누구나 이력서 한 장만 지참하면 참여할 수 있다.
보통 호텔의 그랜드 볼룸 홀에서 열리고, 면접관들이 아침부터 6-8시간 정도 홀에 상주하며 워크인으로 들어오는 모든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받는다.
이력서를 제출할 때 면접관과 간단히 스몰톡을 하게 되는데, 면접관은 이력서 한 장과 그 스몰톡만으로 지원자들을 스크리닝 하여 실제 면접을 보게 될 지원자들을 추린다.
보통 한국에서 열리는 오픈데이에는 한 번에 수천 명이 지원하고 그중 100여 명, 많으면 200여 명이 추려져서 면접을 보곤 했다.
내가 싱가포르 항공 면접에서 탈락한 후 열린 오픈데이는 카타르 항공의 오픈데이였다.
장소는 부산.
(면접 장소였던 호텔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보통 오픈데이가 서울에서만 열렸던 터라 당시에 이건 굉장히 드문 케이스라고 했었다.
비용 아낀답시고 기차표랑 숙소를 최대한 저렴한 걸로 알아보고, 서울보다는 덜 치열하려나?라고 생각하며 오픈데이 전날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안이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전 09:00부터 이력서 제출이 가능하다고 공지되어 있길래 나름 일찍 가서 대기한답시고 오전 07:50에 면접장소인 호텔에 도착했는데
아니
이미 지원자들로 홀이 만석이라 더 이상 진입도 안 되는 상태였다.
체감상으로는 어린이날 놀이동산 인파 수준이었다.
호텔 로비까지 한참 이어진 대기줄 끝을 간신히 찾아 줄을 서고 수시간 대기 끝에 14:00쯤 되어서야 간신히 이력서를 낼 수 있었다.
아름다운 호텔 로비와 홀에서, 정장 갖춰 입고 메이크업과 헤어 깔끔하게 한 수천 명이 답변과 미소 연습하며 순서 기다리는 모습을 몇 시간 동안 지켜보는데
그 시간과 상황이 치열하다 못해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대기하는 동안 계속 생각했다.
미친.
진짜.
아놔....
승무원 하겠다는 사람 진짜 많구나.
내가 정말 몰라도 너무 몰랐네.
갈아 신을 편한 신발도 챙겨가지 않았던 나는 구두 신고 몇 시간 서있던 발이 아파, 면접이고 뭐고 얼른 이력서 제출하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땐 발이 아파서 똑바로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면접관한테 이력서 내면서 하는 스몰톡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스몰톡이니 뭐니 제대로 되었을 턱이 없다.
당연히 그날 오픈데이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부산 오픈데이는 그렇게 뜬금없는 부산 여행이 되었고
남은 건 익숙지 않은 구두 신고 너무 오래 서있어서 상처 나고 물집 잡힌 발뿐이었다.
혈흔으로 얼룩진 대일밴드를 갈아 붙이며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생각했다.
이번엔 완전 실수고
똑같은 실수 또 하면서 시간 낭비할 수 없다고.
다음 오픈데이에서는 난 무조건 첫 타임에 끝낼 거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이번엔 카타르 항공의 서울 오픈데이 공지가 떴다.
오케이, 이번엔 와준댄다. 서울로.
다시 한번 가보자고. 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