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의 KPI는 어떻게 정하는가?

주부의 KPI는 완벽한 정성지표


안녕하세요 초짜 주부남입니다


이번 년에도 어김없이 새해가 찾아왔습니다.

올해에는 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어떠세요? 새해가 반가우신가요?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부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해가 오는 게 기대가 되고 좋은 것인가?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 초짜 주부남 -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진 과도칼 같은 KPI>
<주부의 KPI는 완벽한 정성지표>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진 과도칼 같은 KPI>


직장인에게는 숙명과 같은 것이 있다.

바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 성과 지표)


잘 아시다시피, 이 지표를 활용해서 분기 및 당해연도의 목표 달성을 정량적으로 수치상 표기하여 '잘했는가? 못했는가? 못 했다면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평가한다.

이 지표가 때론 도움 되기도 하고 던져진 수류탄처럼 회수할 수 없는 폭력적인 무기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중간중간 진척 정도를 확인하고 '이건 잘했군.' 자가 칭찬을 할 경우도 있음과 동시에 원했지만 못한 것, 게으른 나의 모습, '왜 이렇게 메타인지가 부족한가' 에 대해 자책을 하기도 한다.

(때론 말도 안 되는 목표수치를 설정하도록 강요받기도 하였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현재 휴직 중이라 공식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작년 나의 1년은 어땠는가에 대해 돌아보았다.


답은 없지만 있어 보이도록 만들어 오라는 지시의 해외 출장과 도저히 실무선에서는 풀 수 없는 문제에 총알받이 역할이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간혹 운 좋게 얻어걸려 내 뒤편에 있는 누군가에게 총알이 닿지 않게 되었을 땐 칭찬을 받기도 했다.


잘 알다시피 애초에 쏘여진 총알은 누군가 맞기 전엔 막을 순 없다.

때론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자연스럽게 피해졌고 내 뒤에 있던 누군가는 그 총알에 맞진 않았지만 왜 총알 자체를 날아오게 했냐며 강한 질책을 받기도 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먼저 백기를 들었던 나의 팀장님.

그분은 이 전쟁터를 도저히 견디지 못하여 마음의 병을 얻으시곤 먼저 백기를 들어 다른 전쟁터로 이직했다. 그다음 나와 손발이 맞았던 한 동료. 그 이도 역시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었던지 백기를 들어 이직했다.


그다음 나. 나는 그래도 버티고 버텼다.

"그래. 총알이 떨어진다면 자연스럽게 종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현재 나의 환경을 생각했을 때 가장 최선의 선택은 이 총알받이이지만 '지금 이 상황이 나만의 갑옷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중요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때로는 뚫리기도, 때로는 막기도 하였다.

하지만 막음으로써 생긴 시퍼런 멍과 가슴 한편에 구멍이 뚫려버린 그 공허한 기분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던 중 어느 정도 종전이 가시거리 앞에 있는 시점에 난 이곳 스위스로 오게 되어 휴직을 했고 남은 일들의 대해선 차기 담당자에게 모든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면서도 또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들을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그분 또한 익히 이 프로젝트에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일은 누가와도 해결될 일이 아닌 걸 안다라며 본인은 깊게 관여하지 않고 유체이탈 권법으로 있을 것이니 전혀 개의치 말라며 "멀리서 보기에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라며 오히려 나를 다독였다. 그에게 고맙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복합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최근 연락이 닿았는데 이직은 아니지만 그분도 휴직을 했다.

자그마치 4명을 보내버렸다. 다시 보아도 문제가 정말 많은 프로젝트다.


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KPI 지표로 잘했을 때에는 '잘했어~. 근데 원래 해야 하는 거잖아. 그리고 아시다시피 요즘 회사가 좀 어렵잖아.' 이 놈에 어느 회사던 연봉협상 시즌엔 맨날 힘들다 한다. 분명 잘 된 것도 있는데 말이다. 이처럼 잘했어도 KPI로는 연봉협상의 무기로 쓰일 수 있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럴 때에는 가차 없이 약점 잡듯 그 KPI 지수로 난도질을 한다. 이건 미달됐네? 왜 미달이지? 왜 미달이 되었는지 설명하고 어떻게 해서든 평균 점수를 맞추기 위해 기울어진 운동장마냥 잘못된 비율로 갈지자를 써버린다.


그래 이해하긴 한다.

어쩔 수 없지 회사는 이윤 집단이고 전체적으로 덜 줘야 어느 누군가는 이득이 될 테니까.

이해는 한다만 동의하진 않는다.


여태까지 나는 평가 결과에 대해서 신경을 쓰며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다.

일부러 더 잘 받기 위해서 아부를 떤다거나, 누군가는 특정 시점에 영리하게 더 목소리를 높였지만 나는 그런 걸 미련하게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본 회사에서도 그렇지만 이전 회사에서도 평가권을 쥔 사람이 자신이 뭐라도 되는 것 마냥 으스대며 "얘들이 내가 인사고과를 쥐고 있는 걸 모르나?" 하면서 그 알량한 개소리를 지껄이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다.


난 그때 그 상황에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버렸고 덜 성숙한 지능이 어린애가 과도칼을 쥐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것과 같이 느껴져서 아예 신경을 꺼버렸다. 그런 통제하지 못하는 몸짓과 아직 자라지 못한 지능 때문에 괜히 다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내 할 일에만 더 집중하려 노력했다. 다행히 운이 좋게 특별히 모난 곳 없이 직장 생활의 대부분은 평균이거나 아주 근소하게 높은 정도를 받아왔었다. 다행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나도 사람인지라 평가 결과에 대해 얄팍한 신경을 쓰긴 썼나 보다.


<주부의 KPI는 완벽한 정성지표>


그럼 이제 주부가 되었다. 주부의 KPI는 어떻게 설정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량적으로 수치상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예시)

식사 준비.

365일 중 아침을 제외하고 점심과 저녁을 준비한다고 가정.

그렇다면 약 730번의 식사 준비.

그중 외식을 할 경우도 있으니 현실적으로 70% 준비한다고 가정.

총 약 511번의 식사 준비.

그럼 그 식사의 만족도 별점이 5점 만점 중 4.5은 넘어야 평균등급이라 평가해야 할까?


청소, 빨래, 분리수거, 설거지, 다리미질 등 영역은 또 어떠한가.

도저히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

구글 설문지를 만들어 투표를 할 수도 없고 참 어렵다 어려워.

이처럼 주부의 KPI는 완벽히 정성지표이다.


그리고 평가 주체는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난관에 봉착했다.

사실 아내(슈퍼보스)도 있지만, 슈퍼보스가 출근하고 나선 하루를 오롯이 혼자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나의 관점이다. 내가 상사고 내가 부하고 내가 실무자이자 결정권자이다.


이렇게 부담스러운 직책과 다양한 업무가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직책 중 하나이다. 마치 가족회사에서 출근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유령직원. 그러나 명목 상 등록되어 있는 고문 직책의 한 사람처럼 말이다.


아니 잠깐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주부에게 KPI가 진짜 필요할까?

나도 모르게 사회에 절여져 있고 그렇게나 싫어했던 피평가자의 위치와 이 KPI 지표에 물들어 버린 것일까?


이번 해맞이가 왠지 모르게 기대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신나지도 않는 처음 겪어보는 무색무취의 평온한 기분이다.


직장인의 경우 해가 바뀌면 연봉협상이나 성과급과 같은 어떤 사건들을 마주한다.

하지만 주부에겐 그런 일련의 이슈들을 마주할 일이 없다.

그래서 기대되지도 않고 실망스럽지도 않고 새로운 해가 와도 감흥이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단지 내 짧은 주부의 관점에서 나도 모르게 '새해에는 더욱더 무탈한 삶을 기대했다.'

그래서 주부인 어머니께서는 "무탈한 게 최고다, 아프지 말고." 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신 걸까.


이 글을 써 내려가며 피평가자의 삶에 절여진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나는 뭘 하고 싶어 하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의 대해서 깊게 생각에 잠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다른 주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다들 어떤 목표를 갖고 살까?

그 목표가 올해의 목표일까? 아니면 인생의 전체의 목표일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어쨌든.

난 이제 피평가자의 삶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이 주부의 KPI를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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