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는 합리적일 때만, 그리고 내가 기분좋을 때만.
안녕하세요 초짜주부남입니다.
모름지기, 내고는 합리적일 때만 가능한 건 만국공통이지요?
한국의 겨울이 유난히 춥다고 들었습니다.
당근온도 99도로 따듯하게 챙겨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초짜 주부남-
스위스에서 집을 구했다.
전 세입자는 세네갈 국적의 30대 후반 인테리어에 진심인 미혼 흑형이었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 남자 혼자 사는 것이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특별한 장식품과 가구, 그리고 벽에는 아주 큰 카펫을 걸어놓은 인테리어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집 전체가 미술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것과 같이 화려했다. (하기 사진 참조)
나와는 작품을 보는 결은 조금 달랐지만 그는 아프리카 고향이 그리웠던 것인지 아프리카풍의 카펫들과 짙은 우드톤의 가구들, 정확히는 황토색에 가까워 토기로 만든다면 무척 잘 어울릴만한 색을 지닌 소품들과 의자 등이 많았다. (저 벽면 외 다른 벽엔 벽 전체를 가리는 요상한 패턴의 카펫이 있었다.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쉽다.)
잠깐 스몰토크를 했는데 그가 일하는 국제기구 분야는 요즘 재정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쉽게 줄 일 수 있는 인건비를 줄이려 전체 인원의 30% 정도를 감축을 했고, 그로 인해 거주 지원비가 줄어서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한다고 했다. 다행히 그는 새로운 직장을 잡아서 괜찮다고 했다.
속으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생존이 됐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리고 사실 첫 집을 파산한 집에 들어가는 건 기분이 안 좋지 않은가 누구든.
그래서 그가 집을 줄임과 동시에 있는 가구들을 정리하기 위해, 특별한 황토색 가구들과 여러 물건들을 싼 가격에 판매한다 했다.
오케이 콜.
그런데 그가 보내준 엑셀 리스트에는 ‘저 가격에 저걸 왜 샀지? 저것만 안 샀어도 너 여기서 오랫동안 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중 우리가 픽 한건 55인치 스마트 TV와 세탁기.
세탁기는 다른 곳에서도 살 수 있지만 가격이 조금 저렴하더라도 설치비와 이전비가 거의 2배 든다. 어차피 써야 한다면 이미 설치된 거 쓰자.
그리고 텅 빈 집에 스피커만 있으면 집이 무슨 미술관도 아니고 너무 휑할 것이다. 유튜브로 테니스나 축구라도 보려면 티비가 필요하고 나중에 되팔기도 쉬울 것이라 예상했다.
우리는 나머지 가구들은 원하지 않았으나 그가 코너 소파와 1인용 소파 의자 2개, 야외용인 각기 다른 커피나무 테이블과 의자 2세트를 (총 테이블 2개, 의자 4개) 공짜로 주었다.
정확히는 버린거겠지만(?) 우리에겐 이게 식탁이고 소파였다.
(하기 사진은 세네갈 형이 준 커피 테이블로 TV 받침대 사용.)
그렇게 무소유의 삶을 겪으며 더욱더 물건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쯤 드디어 한국에서 짐이 왔다. 자그마치 4달 정도가 걸린.
원래의 가구들을 정리하고 나니, 세네갈 형이 전해준 코너 소파와 구매한 TV를 정리할 때가 됐다.
여기에도 당근이 있을까?
사실 그런 어플은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한 간에 누구에게 정보를 들었을 때 페이스북이 워낙 잘 되어있어서 다른 어플은 모른다고 했다. 그 팁을 얻어, 지웠던 페이스북을 다시 설치하고 15년 전의 비밀번호를 찾아냈다. 로그인해 보니 그 시절 친구들과 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역시나 해맑다 좋다.
역시 나는 여전하구나.
저 녀석의 삶을 응원했다.
잠시 떠난 추억 여행을 접어두고 이제 일을 하자.
For sale, free or wanted 라는 그룹에 가입 신청을 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를 그룹에 가입시켜주지 않았다. 아주 자세한 소개글과 첫 번째 게시물인 도시바 55인치 TV 판매글을 써서 같이 신청했는데, 이렇게 수다스럽게 물건을 판매하는 게 오히려 사기꾼 같아 보였을까?
그 그룹만을 기다릴 수 없이 그룹에 가입하지 않고도 물건을 올리면 지역기반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추천을 해주는 Marketplace 시스템이 있었다. 페이스북 녀석들 똑똑하다. 이러니 당근이 치고 들어올 틈이 없구나.
이곳에 나의 물건을 올렸다.
첫 번째 게시물 도시바 55인치 TV. 프랑스어는 못하지만 스펙과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Numbers work!!
간단한 시장 조사를 한 뒤 스펙, 모델명, 스마트티비 동작 중인 사진, 잠재적 우리 고객님이 사이즈가 대략적을 얼마 정도가 될지 아실 수 있게 A4용지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올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고객님들이 연락 왔다
[첫 번째]
그거 들고 우리 집까지 배송 가능? 그러면 그 가격에 삼.
초짜주부남 : 쏘리. (너 같으면 팔겠냐? 패스.)
[두 번째]
몇 년식이죠? 그거 새것도 비슷한 가격에 파는데 5만원 더 깎아줘요.
초짜주부남 : 쏘리 (나도 안다만 5만원은 선 넘지. 너 같으면 팔겠냐? 패스.)
이런 유사한 연락과 진짜 의미없는 찔러보기식 연락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러다 슈퍼보스는 팔지 말고 스티커 붙여서 버리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하라고 한 마디 할 때 쯔음, 한 젊은 남자가 연락 왔다.
구매 가능한가요?
제가 작은 스튜디오에 사는데 그 티비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동작 잘하죠? 어딘지 알려주시면 이번주내로 갈게요.
아주 정성스러운 글이었다.
'아 근데 주소를 알려줘도 될까?' 싶어서 집 근처 가까운 버스 정류장을 알려주고 여기로 오면 나와 같이 가자라는 나만의 작전 세웠다.
그리고 드디어 첫 거래날.
그는 여자친구와 같이 왔다. 프랑스의 아주 잘 생긴 모델과 남자 그리고 나보다 키 큰 프랑스 여자.
둘은 동거하는 커플 같아 보였는데, 그 역시 나를 보곤 '이놈 페이스북으로는 프랑스어 잘했는데 실제론 한마디도 못하네? 사기꾼인가?' 표정이 살짝 느껴졌다.
난 그 불신의 눈빛을 없애고자 영어로 파는 이유와 쎄봉 쎄봉(C'est bon = 이거 좋아)를 난발하자 무장해제를 했다.
나는 사전에 나의 잠재적 VIP고객님이 구매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잘 작동함을 시연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집 현관 앞에 티비를 가져다 두고 프로모션을 준비해 두었다. 그리곤 모든 방문과 창문을 닫았다. 왜냐면 혹시나 도둑놈일 수 있으니 우리 집 구조를 보여줄 수 없었다.
그렇게 프로모션 행사를 마친 후 우리는 거래 성사를 했다.
우리 VIP 고객의 한마디. 트헤 비앙!(Très bien!) = 좋다. 속된 말로 쩐다.
나도 너무 만족해서 5프랑(1만원 조금 안되는 가격)을 그가 내고하지 않았음에도 깎아주었다.
내고는 합리적일 때만, 그리고 내가 기분이 좋을 때만. 이건 국룰이다.
그렇게 첫 거래를 마친 초짜주부남.
여기도 당근이 있긴 하다. 근데 얼토당치 않은 뻘소리와 연락 후 잠수, 그리고 프로필에 아랍어로 쓰여있고 누가 봐도 이상한 놈들이 있다. 한국과 유사하다. 역시 만국공통 전 세계는 지구 안에 울타리다.
사실 두 번째 코너 소파 썰도 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 간략히 언급하자면 그 고객 역시 커플이었는데 역시나 둘이 함께 왔다. '사기꾼 같으면 어떡하지?'라는 의심 때문에 두 명이 같이 왔나?라는 합리적 의심이 있다.
왜냐면 동양인이 여기서 페이스북 당근을 하는데 채팅용 프랑스어가 아주 수준급이다.
그리고 프로필 사진은 없다. 그러면 좀 이상할 듯..?
내가 아랍어 프로필 보는 거랑 비슷하겠지?
다행히 그 커플 또한 거래에 만족했던지 트헤 비앙!(Très bien!)을 외쳤고 나에게 1 따봉씩을 날려줬다. 난 고객의 만족에 반응해서 두 손으로 쌍따봉을 날려줬다.
이렇게 낯선 이곳에서 난 어째 저째 잘 살아가고 있다.
내가 자주 쓰고 좋아하는 말이 있다.
원이 아니더라도 네모도 굴릴 수 있다.
다만 때론 힘을 많이 줘야 할 뿐.
난 내 마음속에 항상 어떤 상황이든지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마치 '어떤 형상이든, 난 굴러가게 할 수 있다'라는 마음 가짐이다.
그리고 난 '그게 삶이랄까?'라고 생각한다.
공처럼 원이면 편하겠지만 그렇게 쉬운 게 살면서 얼마나 될까?
조금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진다면 뭐든 굴릴 수 있다고 믿는다.
가령 아랫부분을 미는 게 아니라 윗부분을 밀면 쉽게 굴릴 수 있듯이.
이 마음처럼 난 어째 저째 나에게 직면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굴러가게 하며 잘 살고 있다.
그렇지만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야하지 않겠는가?
내고는 아주 합리적일 때만, 그리고 내가 기분 좋을 때만임은 국룰이다.
리고 내가 기분좋을 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