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갑니다


안녕하세요 초짜주부남입니다


6개월 간의 특별한 휴직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미리 감사합니다!

- 초짜 주부남 -




2025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특별한 휴직. 그렇게 6개월이 쏜살 같이 지나갔다.

육아휴직도 아닌 개인의 사유로 인한 휴직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긴 하다.


특별한 기회인 만큼 이곳에서 현지 채용박람회, 현지 면접, 현지 취업상황, 조금이나마 객관적인 나의 상황 경험을 했다. 단순히 나의 직업적 진로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대해서 휘발되는 생각 및 고민은 언제나 했지만 이렇게 브런치스토리라는 툴을 이용해 정리해 볼 수도 있었다.


항간에 누구는 '그런 것들도 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 내 발이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구나? 하는 걸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첫 번째, 현지 취업.

우리나라에서도 경력직 이직은 빠르면 3개월, 보통 5~6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 6개월 만에 이곳에서 한 번에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 이곳에 스토리를 적진 않았으나 첫 번째 면접 본 회사와 대면 면접을 봤다.

회의실에 큰 화이트보드가 있었고 면접관과 메커니즘을 도식화하고 수식을 써 내려가며 토론식으로 진행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방식이었다.

면접관인 빡빡박사님과 유럽아재는 '오? 너 생각보다 영어 좀 하네?'라는 말을 했고 소통은 어느 정도 되었다. 그런데 몇 영역에서 살짝 삐그덕 했다.

그 면접 이후 빡빡박사님은 내 모든 경험들이 좋으나 영어 때문에 좋은 소식은 전달하지 못하나 이건 단순히 영어 때문이라 몇 개월 뒤에 다시 면접을 보자고 했다.

(그들은 모국어 정도의 영어를 바라는 듯하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코딩 테스트를 통과하고 면접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원어민이 아닌 이상 영어야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끊임없이 두들기다 보면 어느 한 곳에는 실금이 가서 그곳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두 번째, 영어 학원에서의 커뮤니티.

영어학원 선생님인 사라가 나에게 간단하게 내 이력을 보내달라고 했다. 자신 주변에 내 분야와 관련된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커뮤니티 중심으로의 일자리가 이어지기에 이것 또한 그의 일환으로 생각된다.


또 어느 날 수업시간에 각 나라의 요리의 대해서 이야기하는 주제가 있었는데, 나의 요리 컬렉션을 보여주자 학원 수강생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설거지도 간신히 할 줄 알았는데 요리를 해?라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건 어떤 맛인지 궁금해하는 학원생들을 보며 나 좀 치는데?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영어 선생님인 사라는 한국인 선생님 또는 한국요리 강의가 있다면 나를 소개해주겠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세 번째. 통역 의뢰.

지난번에 만났던 k-문화여왕이 갑자기 연락이 와서 이곳에서 k-pop 행사가 있는데 한국 아이돌이 온다고 나에게 통역을 요청했다. 아시다시피 그 정도 실력이 아니다.

그래도 '실력이 안돼서 못해요'라고 할 순 없어서 '그때 아쉽게도 일정이 있네요' 라며 거절했다.

k-문화여왕이 시작해 보라고 했던 콘텐츠맨의 일상을 시험 삼아 올려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다.

이건 지속 가능성이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과연 인생에서 몇 번이나 유럽에 살면서 취업을 꿈꾸고, 새로운 분야로 업종을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주칠 기회가 있을까?

그리고 이 기회가 한국에 갇혀 있어서 퇴근만 바라보고 내 사업을 하는 것 아니면 또 다른 회사로 이직을 마음에 두거나, 아니면 한 회사에 체념해서 고인물이 되는 것과 비교하자면 과연 어떤 것이 더 높은 가치가 있을까?


연봉은 크게 오르지 않더라도 꼬박꼬박 나오는 회사의 월급과 얼마 되는 복지포인트에 만족하며 헤드헌터나 이직 지원을 하며 한 회사에 5~6개월 정도 과정을 거치다 눈 떠보면 1년이 지나가고 그러면서 금방 40대가 되고 그마저도 금방 지나가지 않을까..?라는 눈에 보이는 미래가 많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던 이 퇴사 결정을 우리 집과 처가에 이야기했다.

'너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라는 질문은 일찍부터 예상했으나 직접 들으니 조금 실망스러웠다.

기러기 부부로 살라며 쉽게 이야기할 수도 없고 내 생각과 여기서 행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니

'그래도 그렇지 요즘 세상이 얼마나 어려운데'라는 말이 돌아왔다.

'저도 알죠. 그래도 이 기회를 두렵다고 안 해보고 그냥 쳇바퀴 돌고 있는 다람쥐로 돌아갈까요?'


그래 당연히 걱정이 될 순 있겠다. 내가 그 고민도 안 하고 결정을 했을까?

결정을 했다면 ‘그래 잘해봐라 응원한다’라는 말이 그렇게나 어려웠을까?


그렇게 감정만 소비하던 차 슈퍼보스는 한마디를 했다.

'이제 집에다가는 통보를 하는 방식으로 해야겠어.' 그래 맞는 말이다.

결혼을 했고 가정을 꾸렸으니 내 가족은 슈퍼보스다. 그리고 한 가정으로써 분리해야 함을 절실하게 더 느꼈다. 사실 분리를 했었지만 도리만 하되 분리를 하기를 맘을 더 단단히 먹었다.


나의 결정에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준 슈퍼보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했을 때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사기업인 회사를 때려치운다는 것이 좀 막연한 결정처럼 보였겠지만 이 결정을 무조건적으로 응원했다.


그 응원에 힘입어 슈퍼보스가 밖에서

'남편은 여기서 뭐해요?'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쭈뼛쭈뼛) 주부예요~'라는 말을 하지 않고,

"나 참 여기서 좀 쉬라고 휴직시켜 놨더니 그걸 못 참고 일을 또 찾더라고요" 라며 너스레 떨 수 있게 꼭 실현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재밌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생각도 있다.

가령 이번 면접 이야기나 학원에서의 스토리를 전해줄 때에 아주 재밌어했다.


슈퍼보스에게 재미를 줄 때 나는 가장 행복한 사실을 이곳에 와서 더 자세히 알았다.

하여 난 어떻게 해서든 이곳에서 살아남아야겠다.




소중하게 얻은 휴직기간 동안 가장 크게 느꼈던 건 따박따박 돈을 쥐어주는 회사에 고마움도 느꼈고 왠지 모를 연민도 느꼈고 지나온 불편한 상황도 조금은 이해도 되었다.


이곳에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한국의 회사라는 한 구름덩어리를 보았다.


회사라는 구름은 바람 따라 흘러가다 가벼워져야 할 때는 비를 내리며 사람을 줄여 그 몸집을 줄이고,

때로는 해를 가려 우울함을 주기도 하며, 때로는 해를 가려 시원한 그늘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고마움도 있고 실증이 날 것과 같은 상황을 전해주기도 하는 이 구름 속에서 나는 이제 벗어나려 한다.


해외에서의 구름은 너무 높아서 올라지 타지 못 할 수도 있고, 만약 운 좋게 올라탔더라도 양털구름과 같이 영역이 매우 작아서 언제든 내려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한국 안에서 다가올 미래를 알면서 불안하게 타고 있을 바에 새로운 구름으로 올라타서 새로운 풍경을 보고 싶다.


이제 이 글이 올라갈 때쯤 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아주 짧게나마 구름 위를 편안하게 날아서 잠깐만큼이라도 해방된 느낌을 즐겨야겠다.


자 그럼 이제 퇴사하러 한국에 갑니다.



이제까지 아주 얕은 글이지만 한 글자라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선택의 무게는 각 상황에 따라 너무나도 다르지만 설령 옳은 선택이 아니더라도 그 선택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는 선택을 해봐야 진정으로 알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택 따위에 크게 맘 두지 마시길 바라며,

멀리서 건강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초짜 주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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