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밥이 사무치게 그리운 해외생활

그 꿈, 내가 이뤄드리리다


안녕하세요 초짜 주부남입니다

짧다면 짧은 1/3 분기 해외생활에서 가장 그리운 건

엄마의 밥도 아닌 국밥이었습니다.


이 사무치게 그리운 국밥. 시작해 보겠습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 초짜 주부남 -



<요리왕 비룡도 요리책을 봤었겠지?>
<나의 또 다른 이름, 국밥맨>


<요리왕 비룡도 요리책을 봤었겠지?>


이곳 스위스에 온 지 이제 약 4개월 차.


한국에서 해외배송으로 보낸 고추장과 된장, 코인 육수, 간장 등을 차곡차곡 곳간에 정리했다.

현지 마트에서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바리바리 실크로드 보따리상처럼 사재기를 했다. 다 사고 보니 한 2년은 거뜬히 먹겠는데? 정도의 양이였다.

아무래도 출발 전 이제 나의 본분은 요리이기 때문에 요리책도 샀었다. 이 요리책에 나오는 필수 양념들을 메모장에 적어서 거진 2년 동안 할 소스를 구비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래의 책을 살 때, 왠지 모르게 본가에서 봤던 엄마의 책장 속 요리책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엄마도 초짜 주부시절에 요리책을 이렇게 보셨겠구나 하고 상상됐다.

초짜 주부남의 요리 비법책

아무튼 이곳에서 막상 몇 개월 지내보니 차로 30분 정도 거리의 한국마트를 가면 돈까스 소스, 멸치액젓, 김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왠지 속은 느낌이다.

학교 다닐 때 개학 1주일 전 방학 숙제인 줄 늦게 알고 미친 듯이 했는데 알고 보니 숙제가 아니었던 느낌이랄까? 이런 양념들의 도움을 받아서 돼지갈비, 제육볶음 등 한식 메뉴들을 준비할 수 있다.


맨날 볶음밥만 먹겠는데?라고 예상했던 슈퍼보스는 나의 도전적인 메뉴 선정과 어렴풋이 맛을 구현하는 걸보곤 본인 생각보다 더 상상이상이라며 칭찬한다.

하지만 실패한 음식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부산말이 쏜살 같이 날아온다. “영 좀 아닌데? 영 밸론데.”


나는 그녀에게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는다.

“점심 뭐 먹을래? “라고 메뉴를 물어보는 것이 답 없는 망망대해 같이 열린 결말의 질문, 선지가 엄청 많은 선택지 그리고 이 결정이 매 점심 반복된다면 직장인에게는 정말 큰 스트레스임을 익히 잘 안다.


차라리 메뉴를 모른 채 구내식당에 갔는데, 랜덤하게 나온 메뉴가 의외로 괜찮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있다.

선택지가 많은 것이 큰 스트레스임을 대부분 아실 것이라 생각된다. 제 아무리 모든 걸 알고 있는 ChatGPT형이 만능 비서라도 선택은 본인 몫이기에. 때론 누가 그냥 선택해줬으면 할 때도 있다. 그 편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그러므로, 난 슈퍼보스가 ‘뭘 먹고 싶다’라고 완벽하게 방점을 찍기 전엔 그 랜덤박스의 구내식당 요리사가 되고자 먼저 메뉴를 묻지 않는다.

근데 나도 뭘 알아야 유튜브에 검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겐 랜덤 하게 알려주는 저 요리책이 나에게는 비밀 병기 중에 비밀 병기이다.


<나의 또 다른 이름, 국밥맨.>


나, 국밥맨을 조금 더 자세하게 묘사하자면 “국밥은 때론 엄마 밥 보다 더 좋아요”라고 할 정도로 나의 소울 푸드이다.


한 예를 들자면,

슈퍼보스와 첫 번째 데이트 때 내가 맛집이라며 그녀를 버섯탕집에 데려갔었다.(지금 생각하면 무드 따윈 없는 정신 나간 국밥맨이다. 사실 나쁜 말로는 국밥충이 정확한 표현이다.)


결혼 후 그녀는 나에게 속 시원히 말했다.

아니 무슨 첫 데이트를 버섯탕집을 데려가?

그렇게 자신있었나봐~?!!?!?

나 참 정말, 결혼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진짜~


이 정도면 얼마나 국밥에 돌아있는 사람인지 전달됐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국밥맨은 국밥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돼지국밥, 순대국밥, 선지해장국, 콩나물 해장국, 능이 버섯탕 등 국밥류를 너무 좋아해서 20살 이전부터 이따금 혼자 국밥을 때리러 갔었다.

(이제보면 그냥 뚝배기에 담긴 걸 좋아하는 건가?)


성인이 되고선 국밥이 생각날 때에는 한치에 망설임 없이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상황이 허락할 땐 ‘처음처럼 완 바틀’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어떤 날, 비가 오거나 더 달리고 싶은 날엔 1인 세트(순대국밥x수육세트) 처음처럼과 카스 완바틀로 나만의 특제 제조방식으로 힐링 포션을 만들곤 목이 깨질듯한 청량감을 느끼며 ‘이게 행복이지’ 하고 그 순간을 즐겼다.


어느 곳이 맛집이냐는 국밥맨에게 중요하지 않다.

좀 짜면 어떻고 또 좀 냄새가 나면 어떨쏘냐 나에겐 전혀 상관없다. 모든 곳이 똑같은 게 오히려 어렵고 각각의 맛에서 주는 재미가 있다.

마치 “아 그때 거기서 먹었을 때 진짜 짰었는데 뜨거운 물 조금 넣으니 간이 딱 좋았었지.”라는 기억을 되살아 나게 해주는 회상의 도구랄까?


상기 언급한 요리책의 도움을 받아서 이곳 스위스에서 나름의 소울 푸드인 제육볶음과 수육 등을 여전히 마주할 수 있지만 마음한켠에 어딘지 모를 허전함이 늘 있었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어느 11월의 영어 학원 가는 날.

우중충한 날씨,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안 오는 것도 아니고 비둘기가 오줌 싸는 것 마냥 떨어지는 빗방울이 뺨을 스쳤다.


그때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이 허전한 건 순대국밥 쿨타임이 차서 그랬구나.


바로 구글 맵을 뒤져보았다.

순대국밥이라는 이 미치도록 완벽한 메뉴가 이곳에 있을까? 한국식 식당에는 있는데 가격이 무슨 한 그릇에 5만 원이다. 만약 힐링포션의 재료인 카스에 처음처럼을 시킨다면 8만원이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그 가격으로 순대국밥 먹는다면 아무리 맛있는 순대국밥이라도, 순대국밥 할아버지가와도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뚝배기도 맘에 안 들 것만 같은 그 느낌.


이 참고 참은 내 뜨거운 심장 속의 순대국밥의 대한 갈망을 한낱 돈에 휘둘려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건 순대국밥의 대한 모욕이다.


내가 순대국밥을 만들어볼까?

와 나도 주부가 다 됐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사 먹지 못하면 내가 구현하리라.


먼저 순대를 찾아보자. 꽤나 현지에서 나름 히트 치는 한국마트를 갔다. 오? 두부도 있고 갓김치가 있어? 뭐야 다 있네. 순대 있겠는데? 두근두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생각해 보니 해외 이삿짐에는 가공육(스팸, 리챔 등)은 배송이 불가했다. 그런 이유로 순대 공급 또한 불가였을까? 아니면 여기 통관 직원이 유튜브로 순대를 만드는 레시피 영상을 우연히 접해서 "저런 건 먹는 게 아니야"라고 제지를 가했을 수도..?


어떡하지 순대국밥을 먹어야지만 이 을씨년스러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돼지국밥으로 노선을 변경해야겠다. 모름지기 수시간을 못되게 삶으면 인덕션에서도 뽀얀 육수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나만의 요리 비법책을 찾아봤다. 돼지국밥이 없다. 돼지국밥 만드는 법을 유튜브에 검색했더니 온통 업소용 대형 스테인리스에 못되게 삶은 레시피만 나온다. 만약 저런 장면을 집에서 실현한다면 슈퍼보스에게 저 대형 스테인리스 냄비에 직접 들어가 볼 테냐고 한소리를 들을게 분명하다.


그렇게 국밥을 그리워하며 종종거리고 있을 때, 슈퍼보스가 리옹으로 국밥 투어를 제안했다.

그녀는 마치 영화 광해 극 중 류승룡 배우가 이병헌 배우에게

“진정 왕이 되고 싶소? 그 꿈 내가 이뤄드리리다.”

라는 말의 무게와도 같았다.

그 꿈, 내가 이뤄드리리다. (문제 시 삭제하겠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즉시 나의 천국행 기차표를 예약했다.


그렇게 도착한 리옹의 한 한식당집.

먹다가 눈물이 날 뻔했다. 모든 게 완벽했다.

-. 뽀얀 육수와 뚝배기.

-. 다대기와 밥을 국밥에 말지 않고 따로 주어 나에게 자율성을 줬다.

-. 참이슬이 아주 차가웠다.


그렇게 경탄을 하며 참이슬 한잔을 들이킬때, 옆에 신혼여행 온 것 같은 한국 커플의 나지막한 대화가 희미하게 들렸다.


- 여자 : 그래.. 저건 못 참지..

- 남자 : 맞아 맞아(아련하게)


그 남자분께 한잔 드릴까? 하다가 이 행복을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지 않았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그리고 줬다가 괜히 그의 그녀에게 한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난 이기적이지 않다 생각했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성인군자가 되긴 글렀다)


이렇게 한바탕 돼지국밥 소동이 끝나고 난 뒤 가게 직원분이 20대 초중반의 한국여자분이셨는데, 나도 모르게 찐 아저씨처럼 “아 너무 행복합니다. 잘 먹었어요”라고 진심을 전했다.

그러니 그분은 그...정돈가? 하는 표정으로 갸우뚱하시며 “아 정말요? 감사해요~ 주방에 꼭 전달할게요~” 하셨다. 그녀는 모를 것이다. 이 국밥맨이 이 국밥을 얼마나 갈망했는지를.

슈퍼보스는 고객의 행복을 현장에서 지켜보았기에 자신의 국밥투어를 아주 만족해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기찻길에서 난 굳게 마음을 먹었다.


이 돼지국밥을 진정 내 손으로 구현하리라.


사골육수팩, 월계수잎, 청양고추 등의 재료는 공수할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돼지고기는 이 세상 어느 곳에 나 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실 대부분을 넘어 어쩌면 모든 것이 안 해보면 막막한데 실제로 해보면 별것 아닌 게 많다. 이 별것 아닌 것들을 끌어 모아서 나의 모래성을 쌓고 바람에 흩날리건 물에 떠밀려 가던 그중에 남고 남는 것을 고맙게 품는 게 인생이려나 싶다.

또 그러다 남은 것 또한 돌아보면 사라져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또 별것 아닌 것을 모아보면 된다.


자 그럼 이제 이 별것 아닌 돼지국밥 레시피를 끌어모아볼까.

만약 성공한다면 국밥맨의 레시피를 공유해 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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