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학원 내 "코리아 앰버서더 초짜 주부남"
안녕하세요. 초짜 주부남입니다.
살면서 살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건 난생처음입니다.
누구 말을 빌리면 "영어, 그놈 참 비싼 언어야"라는 게 더 느껴집니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초짜 주부남-
<영어 학원을 위한 학원 공부>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면 어떡하냐>
<영어 학원을 위한 학원 공부>
현지 면접에서 영어의 부족함을 뚜들겨 맞았다.
(상, 하편 참조.)
여태껏 밀어뒀던 영어공부를 이제 진정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나의 의지만으로 유튜버 선생님들을 시청함으로써는 한계가 있다. 방향성을 모르겠고, 이게 옳게 하고 있는 건지 모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난 나를 안 믿는다.
유튜브로 공부한답시고 영상을 키는 순간 테니스 영상이나 보겠지. 모름지기 돈을 들여야 강제성이 생겨서 내 멱살을 잡고 끌고 가 주리라 믿는다.
그런데 이곳은 프랑스어권이라 그런지 영어학원 자체가 잘 없다. 오히려 프랑스 쪽에는 간혹 있으나 영어 배우자고 국경을 넘고 차를 끌고 왕복 2시간을 태우기에는 가성비가 최악이다. 그러던 중, 내가 지내고 있는 도시 내부에서 찾고 찾아서 몇 개의 영어학원을 발견했다. 공통점은 예상하겠지만 금액이 더럽게 비싸다. 아래의 네 가지 조건을 보자.
(1) 회사로 운영되고 있는 공장형 과외식 : 17만원/1.5시간
(2) 개인 과외식 : 15만원/1.5시간
(3) 현지 온라인 학원 -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고 2주에 한번 학원 방문.(1시간) : 20만원/1시간
(4) 프리 토킹 학원 - 5명 이하로 구성된 그룹으로 동영상을 보여주고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한다 : 12만원/1.5시간
예비. 한국의 인터넷 강의 수강 : 년 40만원 선.(시원스쿨 기준, 아이패드 미포함)
상기 조건에서 보았을 때 가격적으로는 한국 인터넷 강의가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나, 여기 스위스까지 왔는데 대면 수업도 아니고 온라인으로 한국 사람한테 배우는 게 이게 맞나? 적어도 대면수업은 되어야지.
상담을 받으며 "왜 대면 수업이 잘 없고, 있으면 뭐가 이리 비싸요?"라고 물어보자 학원 선생님 말로는 코로나 이후로 수업 스타일이 대폭 변화되어 이제 대면 수업은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그나마 2주에 한번 대면 수업도 1주일에 한 번으로 바꾸면 금액이 1.5배 늘어난다. (도둑놈 짜식들.)
아무튼 저렇게 4곳을 면담하고 영어 테스트, 맛보기 강의를 체험하니 한 달 반이 우습게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 부러지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분명 가격 때문일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할 때 슈퍼보스(아내)는
'그냥 좀 해 비싸도 뭐 어떡해. 여기 시스템이 그런 걸 나참 답답하네'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게 느껴질 때쯤 내가 먼저 선수 쳤다. (유부남의 감각이란)
"진짜 마지막으로 평생 교육원 가보고 결정할게."
그곳의 이름은 Ifage라는 곳인데 주 2회(화, 목) 1.5시간, 10월 초부터 2월까지 40회.
비용은 약 900 CHF.(약 150만원) 이를 환산하면 4만원/1.5시간. 4배 싼 가격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스위스에서 1년을 산 사람은 평생 교육원에 언어 교육을 받을 때, 500프랑을 국가에서 지원해 준다. 나는 1년이 아직 안 됐기 때문에 신청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면수업에 주 2회에 아주 최적의 학원이다.
와 드디어 찾았다. 영어학원을 가기 위한 학원 공부를 드디어 끝냈다. 영어 배우기도 어렵네 나참.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면 어떡하냐>
두근두근 첫날.
혹시나 동양인으로서 무시받지 않기 위해 적당한 샤스와 면바지에 오랜만에 가르마를 탔다. 교실 내부는 아래와 같다. 가끔 선생님이 저 칠판에서 수업을 하다가 갑자기 상황극을 하듯이 가운데로 와서 연기를 하기도 한다. 여기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여긴다. 확실히 우리나라와는 다르고 다른 게 느껴지는, 달라 할라 참치액이다.
학원 선생님 - 2인 : 사라(여, 영국인), 사이먼(남, 영국인)
(2주에 한 번씩 선생님 교체되는 시스템)
수강생 : 총 7인
1) 아나 - 60대 여 어르신
2) 위고 - 50대 트램 드라이버.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이제는 영어를 정복한다고 한다.
3) 게일 - 30대 중반 여 첼로리스트(담배 냄새가 진짜 대단하다)
4) 일리아나 - 30대 중반 여 마케팅매니저, 이탈리아 사람인데 진짜 시끄럽다. 톤이 다르다.
5) 무하마드 - 올해 은퇴 예정인 세네갈 아저씨. 나한테 자꾸 말을 건다. 내가 신기한가 보다.
6) 조쉬엘 - 자꾸 땡땡이를 치는 20대 여. 공부할 의지는 없어 보임.
7) 초짜 주부남
이렇게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이 모여 팀이 구성됐다.
첫날 웬걸 갑자기 동양인이 나타나니까 신기했는지, 어느 나라에서 왔냐, 왜 왔냐, 한국은 지도상 어디에 있냐? 북한? 남한? 오 말로만 듣던 코리아 정은 킴? 등 정말 악의 없는 질문으로 순수 궁금함이 느껴졌다.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피규어를 보는 것 같이 질문 공세가 한 동안 이루어졌고, 난 여기서 코리아 앰버서더이며 작은 슈퍼스타였다. 한 사람의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질문이 들어왔다. 만약 내가 피규어였다면 진짜 들었다 놨다 만져보고 할 기세로 흥미로워했다. 학원 인원 모두가.
그러던 중 안경은 구찌, 시계는 위블로, 가방은 멋쟁이 가죽가방, 신발은 첼시부츠를 신는 무하마드(상기 사진 중 왼쪽) 아저씨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너네 나라는 영어를 배워? 왜 배워? 쓸 일이 있어?" 여러 질문들을 대답하다 보니 이제 수업을 하면 좋겠다 시점인터라 나도 신경이 좀 쓰였던 상태였다.
"뭐? 이 아재가? 이게 인종차별인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더니, 눈망울이 초롱 초롱하다. 진정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느껴졌다. 단지 여전히 날 피규어로 보는 것 같다.
그래, 이 아저씨야. 우리나라도 영어를 ‘너네처럼' 제2 외국어로 배워. 그런데 우리나라의 문제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 편이야 그런지 회화를 잘 못해.
(이렇게 능숙하게는 못하고, 위 저스트 스터디 포 테스트 라고 했다.)
오홍 그렇구나 땡큐 땡큐 하고 눈을 찡긋했다. 뭐야 이 아저씨.
아무튼 이제 영어수업이 시작됐다. 규칙은 영어만 쓸 것. 프랑스어 금지. 한국어는 당연히 쓸 일이 없다. 그들끼리 의미 전달을 할 때도 무조건 영어로 하기.
선생님 왈. "불편해야 늘고 익숙해져야 늘어요, 여기 미스타 초짜주부남도 있으니까 우리는 더더욱 프랑스어는 안 돼요~" 했다.
나는 영어를 영어로 배우는 게 그게 돼? 하고 의심이 있었다. 한국에서 정규 교육으로 근 15년을 배우는데도 회화가 안되는데 외국어를 영어로 배우면 이해가 될까? 생각했다.
사실 지금 기초 반이라서 근 20년 예전에 배웠던 기초 문법을 영어로 다시 배우는 중이다. 근데 듣다 보니 아 이걸 이럴 때 쓰는구나? 오 좀 재밌는데? 하면서 흥미가 생긴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구성해 보고 연습해 보고 마트에서 말해본다.
한국에서는 문제를 맞히기 위한 영어만을 했었다. 그런데 여기선 대부분의 사람이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가장 간단한 말로 의미 전달이 확실한 영어를 구사하는 게 중요하다. 작은 고추가 맵듯, 문장은 짧을수록 아주 강렬하다. 고로 난 할 말만 한다. 미사여구 따위 없다.
당연히 비즈니스 영어는 어나더 레벨이고 도달하기에는 아직 멀었지만, 예전에는 말이 안 통할 때 단어 나열만 했다면, 이젠 짧은 문장이라도 올바르게 뱉으려고 노력 중이다. 왠지 어딘지 모를 자신감이 생기고 있다.
지금 10회 차 정도인데 몇 가지 일이 있다.
- 사이먼(영어 선생님, 남, 영국)
"너네 나라는 개 먹잖아"
"구글 번역기에 한국어가 있네? 북한말이야 한국말이야? 구분이 안되어있는데?"
나에게뿐만 아니라 이 영국 놈은 모든 사람에게 이런 쓰레기 같은 농담을 던진다. 한 번만 더 이런 농담하면 니 상사 데려와 할 것이다.라고 벼르고 있다.
이 사실을 슈퍼보스에게 말하자 정말 극도로 분개하며 대표 이메일 당장 가져오라고 나에게 지시했다.
나는 눈을 피하는 골든리트리버 마냥 “내 선에서 한번 해볼게. 싸우는 것도 영어 공부 중 하나야”라고 했다.
- 편견 없는 게일,
첼로리스트 여자는 주말에 뭐 했냐고 물어봐서 나 와이프랑 안시 여행을 다녀왔어라고 했더니, "오 허즈번드?" 이러길래 "아니 무슨 허즈번드야, 뭔 소리야 위드 마이 와이프 와이프!!" 이랬더니 "아 오케이~ 어땠어 안시 좋지?' 한다.
- 5개 국어 언어 고수, 위고
미스터 초짜 주부남, 다음 주에 내 강아지랑 같이 산책 갈래? 아주 좋은 곳을 알아!
좋은데.. (너랑 둘이 가긴 좀 무서워..) 무하마드한테 같이 가자고 할게 기다려봐. 이러니까 나한테 다시 가자는 말을 안 한다. (다시 생각하니 좀 요상하네)
- 은퇴 예정, 무하마드
그는 질문 폭격기다.
너랑 대화하고 한국이 너무 흥미로워서 찾아봤어. 삼성의 나라였구나? 근데 너네 대통령은 왜 감옥을 갔어? 삼성의 왕 재용리 아직 감옥에 있어? 한국은 은퇴 나이가 어떻게 돼? 너 2월에 한국 돌아갈 거야? 등등
나는 그가 올해 은퇴함을 알고 있기에 작은 쿠키와 티를 선물했다. 코멘트로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은퇴하시면 이제 여유로운 시간이 있을 테니, 아내분과 따님과 시간을 보내실 때 이 티와 쿠키 드시면서 따듯한 대화를 하길 바랍니다.” 하니까 그는 정말 감동을 받았는지 어떻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연신 고맙다 했다. 그 정도의 의미는 아니었는데.. 아무튼 좋아해 주시니 나도 좋았다.
- 시끄러운, 일리아나
교육 영상 속 남자친구가 있는데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상황. 갑자기 진짜 큰 목소리로 비치!!! 이러더니 혼자 씩씩 거렸다. 그녀는 번쩍이는 롤렉스 데이저스트를 차고 다니고, 장신구가 많아서 필기할 때마다 쩌렁 쩌렁 소리가 난다.
- 땡땡이, 조쉬엘
초짜 주부남, 너 나루토랑 드래곤볼 봤어? 원피스는? 나 원피스는 안 보고 나루토랑 드래곤볼은 봤어.라고 하니까 너는 진정한 아시아인이 아니라고 한다. 아시아인이라면 무조건 원피스를 봐야 한다나?
- 60대 어르신 아나
한국 음식이 없어서 어떻게 밥을 해 먹어? 하고 물어보시고, 나를 아주 초롱 초롱하게 쳐다보신다. 느낌이 마치 결혼한 아들 보듯? 그런데 시계는 까르띠에 탱크 올드 모델을 차시는데 진짜 멋이 있다.
이렇게 다양하게 이 사람들은 그냥 나랑 대화하는 게 재밌나 보다. 처음에는 뭐 저런 걸 물어, 이게 인종차별인가? 은근히 돌려 까기인가? 하고 별로 안 좋았는데, 10회 차가 되니 익숙해졌다. 이러면서 영어 회화가 느는 거겠지?
좀 더 친해지면 아르바이트할 만한 곳을 꽂아달라고 할 작전이다.
아 잠깐만 이게 바로 인적 네트워킹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