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생각보다 더 빠르며, 그리고 더 미끄럽다
안녕하세요 초짜 주부남입니다
전 편에서 헤드헌터와의 작별 후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합니다
그럼 미리 감사드립니다!
- 초짜 주부남 -
Hello, Mr.초짜주부남?
그는 역시 건치 미소의 소유자
금발의 젊은 CEO.
< 건치의 CEO >
너 포트 폴리오와 이력, 괜찮은 듯?
혹시 우리회사가 채용중인데,
관심있으면 한번 봐봐
채용 포지션이 여러개 있어.
< 초짜 주부남 >
나도 사실 너네 회사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어.
혹시 더 자세한 포트폴리오나 이력이 궁금하면 연락줘.
헤드헌터에게 보내긴했는데 원한다면 직접 보낼게.
< 건치의 CEO >
오 보내주면 너무 좋지. 잘 봐볼게
며칠 후, 초짜 주부남 너 좀 친다?
팀한테 연락해서 면접을 볼 수 있게
내가 직접 추진해볼게
연락 갈거야. 곧 보자
에이 설마 진짜 연락 오겠어?
가브리엘라처럼 없어질 수도 있으니 기대를 낮췄다.
하지만 왓츠앱(우리나라 카톡과 같은 외국 카톡),
이메일, 그리고 취업 사이트
1시간에 1번은 보았다.
그렇게 1주일간을 씨름한 나.
아 또 이러네
이 스위스놈들 다들 거짓말쟁이인가?
두두둥
진짜 연락이 왔다.
그의 이름은 T.(이하 빡빡박사)
프로필 사진에는 간달프의 긴 수염을 가졌지만
머리는 빛났고, 눈은 사슴과 같이 초롱 초롱했다
빛이나는 안광과 수염이 미스 매치 같았지만
서양 간지가 느껴지는,
그리고 이력이 아주 화려한 박사님.
학부 입학 및 졸업 년도를 보니
나이는 거의 나와 비슷.
그는 당장 돌아오는 금요일에 면접을 보자고 했다.
그 연락을 받은 것은 이번주 금요일.
오케이 그 날로 갑시다.
또 한 사람, 그의 이름은 P.(이하 유럽아재)
50대 초 상무급.
어느 글로벌 기업의 부사장이였던
아저씨가 얼마 전 이곳으로 이직했나보다.
그는 외국 뉴스에서 보일 법한
정갈한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지녔고
진짜 그냥 유럽 아재처럼 생겼다.
이렇게
사슴 눈의 빡빡박사님과
정갈한 아나운서의 유럽아재.
이 둘이 나의 진짜 나의 면접관이다.
점심시간인 12:00에 화상 면접이 시작되었다
응? 화면속엔 빡빡박사만 있었다.
유럽아재는 다른 회의가 있어서
일단 우리 둘이 시작하자고 했다.
그는 자기의 주요 관심분야,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의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난 내가 여기 스위스에 왜 온지
(만나는 사람에게 하도 말을 해서 거의 입이 아플정도.)
한국 회사에는 휴직 중이고
그리고 나의 업무의 설명을 이어갔다.
빡빡박사는 나를 은근 괜찮게 보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화상회의였지만 그의 반짝거리는 사슴 눈망울이
진정으로 느껴졌었다.
그리고 신기한건 그와는 생각보다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던 중, 지각생 유럽아재 등장.
노타이의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그.
난 느낌적으로
“이 아저씨의 마음을 홀려야 내가 들어갈 수 있다.”
를 정확히 느꼈다
그에게 내가 여기 왜 왔는지,
내 업무 설명을 특히나 정성스럽게 전했다.
유럽아재는 흥미롭게 들으며
“오호~ 웰컴 투 스위철랜드~”
좋은 분위기 속 면접 시작.
포트폴리오는 아주 공을 들였다.
나에게 편하게
그리고 답변을 준비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게.
그렇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
“그래서 뭐 어쨌다고?“ 가 아니라
결론부터 말하고 근거는 최대한 짧게 짧게.
그리고 다행히 빡빡박사와
미리 입을 털었어서 입이 조금 풀렸었다.
그러던 중 유럽아재가 내 설명을 쭉 듣다가
“오케이 니 업무 잘 알겠어. 좋네”
그때부터 시작됐다
유럽아재의 질문 융단 폭격.
유럽아재는
원만한 팀플능력, 커뮤니케이션 스킬 등
모든 걸 디테일하게 질문했고,
사슴 눈의 빡빡박사는 아까는 안그랬는데
직속 상사가 있으니 자신도 좀 긴장했는지
아까는 물어보지 않았던 여러 질문을 쏟아내었다
그런데
면접 방식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 조금 다르다
너가 진짜한게 맞아?
그래서 너가 뭘 어떻게 했는데?
만약 바뀐다면 어떤 결과가 예상되지?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때? 등등
질문 - 답변 형식이 아닌 토론 형식과 비슷했다
이때부터 문제가 터졌다.
나의 영어 실력은
마치 물이 가득 담긴 물풍선과도 같았다
그의 송곳 같은 질문과 토론 방식의 대화가
나의 얇디 얇은 물풍선 같은 영어실력을 위협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나 얇던 나의 고무 갑옷은
손쉽게 뚫려버렸고, 무자비하게 터져버려서
모두 바닥으로 쏟아져버렸다
고맙게도 빡빡박사는
내가 힘들어 할때 나에게
”너 할수 있어“ 라는 촉촉한 눈빛과
“아 너는 그걸 의미하는거야?”
라고 은근히 도움을 줬다
한참을 쩔쩔매던 중,
유럽아재 왈
”혹시 너의 영어 실력이 어느정도라고 생각해?“
아 전 간이 테스트 결과로 B1 수준 입니다
약간의 이해를 돕자면
A1, A2, B1, B2, C1, C2 등급으로
외국어 언어 등급을 나눌 수가 있는데
원어민은 C2, C1은 고급레벨.
그리고 외국인은 적어도 B2는 되어야
대학교 입학이 가능하거나
혹은 현업을 하기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자 곧 기준이다
마치 서류 지원 커트라인 토익 700이상과 같이.
사실 내 B1은 업무를 하기에 부족하긴 하다
유럽아재 왈.
그래 너의 이력과 경험은
우리 회사와 아주 잘 맞고 충분한데..
너 영어가 음... 참... 그래 알겠고.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너 일할 수 있는 비자는 돼?
얼마나 있을 수 있어?
너 5년의 목표는 뭐야?
이런 형식적인 질문이 오갔다.
사실 이것 또한 대비를 했었으나
내 영어 실력의 대해 깊게 찔렸을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마치 국민 MC유재석의 초짜 리포터 시절
수준 정도로 대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말 있어?
이때는 반 포기 상태이니 오히려 말이 잘 나왔다.
아주 달달달달 외워서 자다가도 찌르면 나올 정도로
연습한 그 질문을 쏟아내버렸다
“마치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닌데 어떡해요”
라는 울분이 담겼던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사실 돌아오는 답변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열정을 보여주기 위함이 더 컸다.
어떻게든 일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면접이 끝났다
느낌이 왔다. 아 나 안됐구나.
내가 여기서 일하겠다고 한건 너무 욕심이였나?
근데 그렇지만 나는 할만큼 했어.
여기와서 면접이라도 본게 어디야.
내가 해외 현지에서 면접을 볼 상상이나 했어?
욕심도 과하지 그래 그냥 잊어버리자.
그렇게 2주가 지났을 무렵.
떨어지건 안 떨어지건 연락이나 좀 줘라.
연락도 안주고 그냥 사라지냐 나쁜놈들아.
이대로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거지.
이렇게 가슴 졸이면서 근 두달을 맘 고생했다.
아니면 날 대차게 버려다오.
이제라도 스위스를 즐기게 좀 도와줘라.
사실 면접 때
만약에 내가 입사하게 된다면
코딩이 필수적이겠고,
나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듯 싶어서
면접 후에 독학하며 코딩을 했었다.
개발했던 프로젝트의 기억을 더듬으며
예전부터 해야지 해야지 했었지만
미루고 미뤘던 이 코딩 공부.
드디어 이제서야 해보고
나름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꽤나 뿌듯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 결과를
빡빡박사에게 보냈다.
이 결과가 너의 긍정적인 결정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라며 진심어린 편지 함께.
빡빡박사, 읽고 아무런 대답이 없다.
사슴 눈의 사나이.. 하긴 너의 상사가 면접때
그런말을 했는데 너가 무슨 힘이 있겠니..
이해한다 질척여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간절한 나를 이해해다오.
잘지내 고마웠어.
그렇게 난 또 그에게
나 혼자 내적 이별을 고했다.
그렇게 연락한 후 3일 뒤,
그쪽 인사과에서 연락이 왔다.
모든것이 완벽했지만,
해당 포지션은 유관 부서와의 브릿지 역할,
고객사 상대를 해야하는 포지션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아쉽지만 나의 커리어를 응원한단다
그래 예상했던 결과다.
역시 유럽아재의 마음을 훔치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30몇년간 영어를 안쓰던 사람이
갑자기 며칠, 몇주만에 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걸 바라는 것도 욕심이지.
근데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같았다.
이곳 스위스에서의 면접 자체 기회도
이젠 얻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바로 인사과 직원에게 읍소 메일을 보냈다
그래 나도 이해한다 그렇게 중요한 자리라면
커뮤니케이션, 영어능력이 필수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정규직이 아니더라도 인턴이라도,
아니면 실험보조라도,
아주 작은 무엇이던 관계 없이 시켜만주면
감사히 모든걸 하겠다.
다시 한번만 검토해준다면
정말 감사하겠다.
그리곤 이틀 뒤, 빡빡박사에게 연락이 왔다
미스타 초짜 주부남,
너의 코딩 결과를 보았어 정말 매력적이야.
그리고 우리 인사과에도 메일 회신 한 것을 봤어
너의 열정과 적극적인 실행 능력
너가 바로 우리가 바로 찾던 인재 같아.
내가 우리 팀과 회의 후에
어떻게 해볼지 논의하고 다시 연락줄게.
다시 희망이 불씨가 살아났지만
그렇게 빡빡박사는 없어졌다.
심지어 왓츠앱 프로필도 못보게 가려져있었다
나 차단당했나보다.
맘이 찢어질듯 아팠다
나는 간절히 원했던것 뿐인데
너무 내 욕심이 과했구나
우리나라에서
나는 취업/이직/결혼/다시 이직 등
그때의 그 시간, 현실에만 집중했다
그러면서 맘속에는 해외에서 살고싶다.
해외에서 취업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머리 속으로 상상만 했다.
그런데 진짜 해외에 살고 면접기회를 얻었다.
그 상상이 진짜 현실이 될지 몰라서,
그리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냥 영어공부해야하는데, 해야하는데 하다가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그 지나간 세월에 영어를 했더라면
지금 이 순간 어쩌면 달라졌을 수 있다
나는 그럼 기분좋게 여기 온지 3달만에
현지 취업을 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어쩌면 제 2막의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누굴 탓 할 필요가 없다.
이게 나의 벌거벗은 진짜 내 모습인걸.
그들의 입장으로
입장바꿔서 생각해봤을때,
그들도 당황했겠다
만일 한국에서 내가 면접관인데
외국 사람이 메일이나 카톡, 포트폴리오는
아주 기깔나게 한국말을 쓰는데
실제로 면접에서 더듬더듬 거리고
의사소통이 기대 했던 것 만큼
원활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땠을까?
솔직히 답답하지 않았을까?
바쁜데 CEO가 면접 보라고 해서 봤는데
말도 잘 안통하는 외국사람이
자꾸 일 잘 할 수 있다는 어필이
거의 웅변학원 대표 연설급이다
근데 실제 대화는? 잘 모르겠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들을 속인 것 같은 그 느낌.
그들의 시간을 뺏은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그리고 형식적으로나마 면접을 이어가주고
시간을 내어준 것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삼겹 2인에 카스 하나, 처음처럼 하나요”
했겠다
그런데 여기는 스위스다
처음처럼 1병에 3만원,
삼겹살 1인에 5만원이다.
아픔을 달래 줄 삼쏘도 지금 나에겐 없다.
그리고 슬퍼할 시간이 없다.
언제 또 운 좋게 면접이 잡힐지 모른다.
그때도 이렇게 될 수 없다.
이렇게 오래도 걸렸던
나의 첫번째 면접을
맹물을 들이키며
원효대사 해골바가지 물 같이
”이것이 글라스 소주다“ 라고 상상하며
지금도 여전히 잊어버리고자 노력한다
근데 잘 안된다.
여전히 속상하다.
이제서라도 이놈에 영어, 진짜 해야겠다
아내가 다시 외국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나도 생활을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적이다.
근데 혼자서는 한계가 있어보인다.
안되겠다 영어학원 등록해야겠다.
진짜 꼬부랑 언어, 넌 이제 죽었다 댐벼라
혹시나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이 계신다면,
간접적으로나마 도움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할까 말까 할때는 하는게 맞다”
라고 하던 다수의 누군가가 생각납니다.
기회는 생각보다 더 빠르고,
잡을 수 없을 만큼 더 미끄럽더군요
이 기회를 꽉 붙잡으려면,
갖고 있는 고무장갑보다
더 끈끈한 것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무슨 일이던 마음 속에 바라시는 일이
진정으로 잘 되길 바랍니다.
정말 진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