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좋아하던 일을 스스로 포기했다

음악을 내려놓다

by 테토솜

응급실에 다시 갔던 그날 밤 이후로 모든 일을 그만뒀다. 교회 반주는 사임했고, 학부모님들께 안내문을 돌렸다.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수업이 어렵다는 연락. 그리고 감사하게도 급한 거 아니니 선생님 쾌차하시면 수업받고 싶다 기다리겠다는 연락을 주신 학부모님들도 계셨다. 지인분을 연결시켜 드리기도 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피아노는 어릴 때부터 했는데 중학교 때 전공의 길을 택했다. 그저 피아노 학원에서 1시간가량 놀면서 쳤던 피아노,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국대회를 나갔는데 1등을 했다. 그때 심사평을 적어주신 이화여대 교수님이 음악적인 재능이 있으니 꼭 전공시키라는 코멘트에 부모님은 진지하게 전공의 길을 고민하셨고 그렇게 아무것도 정보가 없는 상태로 강원도 산골소녀는 전공을 택했다. 혼자 버스를 타고 서울을 오가며 레슨을 받았고 유학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겨서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엄마의 항암치료로 유학은 가지 못했고, 검정고시를 봤다. 그리고 우리는 타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를 가면서 서울까지 레슨 다니는 것은 무리라 이사 간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고, 현역 입시를 준비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해당 학교가 정시도 수능배점이 아예 없이 실기로만 입학하는 대학이니 경험 삼아 입시를 쳐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입시곡을 3개월가량 준비해서 시험을 봤는데 운 좋게 합격하였다. 당시 경쟁률은 4:1


그렇게 나의 대학 생활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작되었고 예중, 예고 출신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한 살 어린 나는 학교 생활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공부는 너무 재미있었다.

피아노만 쳤던 내가 이론 공부에 빠져들었다. 음악이 이렇게 논리적인 학문이었나? 피아노 치는 것들에 다 적용이 되니 너무 신기했다. 매 수업시간마다 맨 앞자리에 앉았고, 필기도 빼먹지 않고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시험기간에도 밤새가며 공부를 했고 에세이 시험도 2~3장씩 제출했었다. 하루는 이론 과목 가르치시는 교수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다.

졸업하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니,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쭉 하라는 말씀과 유학도 고려를 해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결혼과 임신으로 유학의 길은커녕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는 게 목표였다.

그래도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면서도 4학년 평점은 4.13이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진짜 흥미와 재미를 느껴 자발적인 공부였다. 열심히 공부한 덕에, 차석으로 졸업했고 8학기 중 7학기를 장학금 받고 학교를 다녔다. 졸업 당시 차석 졸업이었는데 수석은 2개 학번 위인 복학생 언니였고, 동기들 중에는 수석인 셈이었다.


졸업 후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육아로 인해 공부에 대한 꿈은 접어야 했다.


그리고 대전을 거쳐 인천에 자리 잡으면서 지방대 출신이 연고가 없는 수도권에 올라와서 자리를 잡는 건 쉽지 않았다. 특히 예체능은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오로지 실력으로만 증명해내야만 했다. 처음엔 하나라도 수업을 더 하려고 거리가 멀어도 다녔다. 홍보도 꾸준히 했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가지 교수법 공부도 꾸준히 했다.


그때의 그 열정으로 인천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고 나의 수업을 들었던 사람 또는 나랑 같이 일했던 분들이 여기저기 소개를 해주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지만 육아를 하는 게 도움이 됐던 것인지, 아이들 수업하는 것과 아이들 케어하는 것이 사실은 하나도 어려운 게 없었다. 이미 육아는 내 삶의 일부였기 때문에.

미혼인 선생님들은 어려워하는 것들을 나는 어렵지가 않았다.


학부모님들 중에서는 내가 미혼인 줄 알고

의대 다니는 조카 소개해주겠다고 하시기도 하셨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때가 23~24살이었으니.. 아무도 애엄마라고 생각을 안 하셨고 졸업생이겠거니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 뒤로 첫 상담 때부터 아이 엄마라는 것을 오픈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서로 어색해지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밖에서는 일 잘하고 잘 가르치고 인정받는 내가

집에서는 도박으로 맨날 싸우니 스트레스가 나도 모르게 쌓여갔다.

상담사 분이 얘기하셨던 사회에서의 나와 가정에서의 나의 간극이 점점 벌어졌던 것이다.


그게 이혼을 진행하면서 곪아 터지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중에 공황을 경험했고 공포감과 불안함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이런 스토리가 담긴 음악 인생을 스스로 놔야 했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음악을 포기해야 했다.


이 모든 상황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나는 왜 이렇고 있는가.

왜 내가 원하는 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걸까

스스로 원망도 많이 하고 자책도 많이 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의 상태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keyword
이전 02화원인이 없는 증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