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약 검사 해줘요
지자체 소속 약무직 공무원이 되기 이전에, 연구직 공무원으로 식약처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식약처 연구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공직약사는, 주로 의약품 심사 및 시험분석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지방식약청에서 근무할 때는 유통 중인 의약품, 의약외품, 화장품이 품목별 기준에 적합한지 실험실에서 검사하는 일을 했다. 의료제품의 허가권을 가진 제조업자와 수입업자는 제품 품질을 관리하고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을 판매할 의무가 있다. 식약처는 그들이 그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며 연간 계획에 따른 기획점검, 이슈가 발생할 때는 수시점검을 실시한다.
‘조제 후 냉장보관하며, 7일 이내에 사용하세요.’
어느 협회에서 이렇게 표기된 항생제 건조시럽에 대한 시험검사를 요청했다. 물을 넣을 때 시럽이 되는 분말형태의 약을 건조시럽이라고 한다. 이런 제품은 사용할 때 녹여서 쓰는데 냉장보관하면 7일까지는 진짜 괜찮은 걸까 나도 궁금했다. 시럽의 품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함량과 산도(pH)를 측정하는 시험을 했는데 냉장보관한 시럽은 모두 적합했다. 냉장보관하지 않은 시럽에 대해서도 추가 실험을 해보았는데 함량은 큰 변화가 없었으나 산도가 기준에서 벗어났다. 그러니까 약국에서 ‘냉장보관’이라고 알려준 항생제 시럽은 꼭 냉장고에 보관해야 하며, 처방받은 지 오래된 항생제 시럽을 두고두고 아이에게 먹여서는 안 된다.
‘대변에 약이 그대로 나오는데 이거 약효가 있나요?’
어느 단체에서 서방정에 대한 검증을 요청했다. 천천히 체내에서 녹도록 특수하게 설계된 알약을 서방정이라고 한다. 시간대별로 약의 주성분이 기준에 맞게 적절히 용출되는지 확인하는 용출시험을 실시한 결과 적합이었다. 신기하게도 용출시험이 끝난 뒤에 약의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불만 신고가 많았는지 이 약의 주의사항에는 ‘비어 있는 서방정 매트릭스가 대변에 보일 수 있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약도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헤나로 염색했는데 피부가 뒤집어졌어요.’
천연 염색제 헤나를 사용한 사람들의 피해 사례가 이어지자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는 합동점검을 실시했다. 문제가 된 품목을 대상으로 함량시험, 중금속시험 등 여러 항목을 검사했는데 미생물한도시험에서 기준치를 웃도는 세균과 진균이 검출되었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제품은 회수 및 폐기 절차를 밟았으며 이 제품을 수입한 업체는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참고로 헤나와 같은 염모제는 화장품으로 분류되어 식약처에서 관리한다.
지금은 이렇게 담백하게 서술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결과 확정을 위해 여러 날의 땀과 눈물 어린 야근이 필요했다. 미생물한도시험의 결과를 얻기 위해 세균은 3일, 진균은 5일간의 배양이 필요한데 본청에서는 더 빨리 결과를 알려달라며 수시로 채근했다. 나는 ‘이렇게 자꾸 전화하면 실험을 제대로 할 수 없어 결과가 오히려 늦어진다.’라며 담당자를 협박했다. 사실 검사자는 실험 도중에 적합일지 부적합일지 감이 오지만 최종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내부 직원에게도 비밀을 유지했다. 특히 부적합 결과가 나올 때는 회수 담당 부서의 후속조치와 사회적 파장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 간혹 업체가 제기한 소송에 검사자가 휘말리기도 하므로 실험결과에 대한 근거 자료를 완벽하게 갖추는데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식약처는 다른 정부 부처보다 연구직 공무원 비율이 꽤 높은 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의 직급별 정원표에 따르면 전체 인원 대비 연구직의 비율은 약 36%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의약품 분야 연구직의 경우 약사 면허와 석사(박사) 학위를 동시에 소지하여야만 지원할 수 있었다. 2025년도 식약처 연구직 채용 공고문에 따르면 관련 전공 석사 이상 학위는 필수 요건이며, 의약품과 관련된 직무에 지원하면 약사 면허 소지자를 우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연구직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여러 부서에서 연구, 심사, 실험, 관리 업무를 해봤는데 사실 실험하는 게 고된 만큼 제일 재미있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당시 사용했던 휴대전화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깨달았다. 열심히 일하느라 실험 사진을 별로 찍지 않았다는 것. 그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추억이 되었고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오랜만에 펼쳐보니 대한민국약전조차 흥미롭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