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조직은 없다
가장 힘든 부대는 자신이 군 생활했던 부대라는 말이 있다. 해본 일은 어떤 점이 힘든지, 무엇이 치사스러운지 속속들이 알지만 안 해본 일은 알 수 없다. 겪어보지 않은 조직은 어떤 업무를 하는지 모르니, 보이는 모습으로만 판단하게 된다. 국가직 공무원과 지방직 공무원이 딱 그렇다. 협업해야 하는 관계에 있음에도 서로의 업무도, 상황도 모르니 일부를 보고 오해하기 쉽다.
“식약처는 노는 줄 알았어요. 매번 지자체에 이것저것 시키잖아요.”
지방직 공무원은 지역민을 위한 사업과 민원 처리 외에도 정부에서 보내는 지도점검 요청에도 회신해야 한다. 국민신문고로 접수된 민원 대다수는 식약처, 보건복지부와 같은 국가기관으로 이송된 후 지자체로 재이관된다. 이러니, 실질적인 업무는 지자체가 다 하고 국가직 공무원은 노는 거 아니냐는 오해를 하게 된다. 국가직에서 지방직 공무원이 된 나는, 이 상황이 안타까워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며 열심히 전 직장을 해명하곤 한다.
식약처 소속 지방청에서 근무할 때, 나도 저런 오해를 했다. 식약처 본청에서 지시하는 기획점검, 수시점검의 여파로 발생하는 수많은 시험검사, 적부 결과 보고 그리고 회수 및 폐기 진행까지를 지방청에서 담당한다. 저 본청 나리들은 지방청 사정을 알까 불만을 가진 적이 많았다. 그러니까 식약처와 같은 정부의 국가직 공무원은 지자체에만 이것저것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위 조직에 속한 다른 국가직 공무원, 공공기관, 지원금 받는 협회에까지 일을 준다.
억울해서 식약처 본청 근무를 자원하여 갔더니 그곳은 그곳대로 업무가 산더미였다. 본청 업무의 가장 큰 틀은 정책 수립, 그에 필요한 예산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일, 성과 목표를 정하고 달성률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 외 법률을 개정하는 일, 국내외 안전성 자료를 관리하고 필요시 즉각 반영하는 일, 언론보도와 국정감사에 대응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니까 다른 기관에 업무 지시 또는 협조를 요청하는 조직은 이미 본연의 업무가 별도로 있어서 놀고 있지 않다.
국가직 공무원일 때 나는, 지방직 공무원이 모두 6시 정시에 퇴근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식약처에서 근무할 때, 지자체의 업무 담당자와 협업을 한 적이 있었다. 자료를 조금 더 확인한 후 내가 다시 전화를 하기로 했고, 그 전화를 건 시각이 6시 2분이었다. 설마 했는데, 그 담당자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도 통화했던 사람이 6시가 넘자마자 전화를 받지 않자, 나는 그가 칼같이 퇴근했다고 생각하며 질투했다. 업무가 별로 없으니 근무시간 중에 모두 처리할 수 있나 보다 억측하면서 부러워했다.
지방직 공무원이 되어 보건소 근무를 하면서야 비로소 그때 내가 그 담당자를 오해했음을 깨달았다. 국가기관에 비해 지자체, 특히 민원을 담당하는 부서는 근무시간 내 전화도 자주 오고, 방문하는 민원인도 많다. 식약처는 보안등급이 있는 기관으로, 방문자의 신분을 확인하며 허가받은 사람만 사무실까지 들어갈 수 있다. 반면, 보건소는 사무실이 개방되어 있어서 누구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전화를 받거나 방문 민원인을 상대하느라 업무가 밀려 야근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니, 공식적인 업무 시간이 종료된 저녁 6시 이후에는 사무실을 개방하지 않으며 울리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 통화가 되지 않는다고 퇴근한 것은 아니며 지자체 업무도 적지 않음을, 남 일이 내 일이 되고서야 배웠다.
한쪽을 면직하고 새로 임용시험을 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지 않고서야, 국가직과 지방직 공무원을 다 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양쪽의 업무 경험이 국가기관과 지자체 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텐데, 6급 이하 실무자의 국가직과 지방직 공무원 상호 인사 교류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 어느 쪽도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그러니 양쪽을 다 경험해 본 내가 외쳐본다. 노는 조직은 없다. 업무의 성격과 종류가 다를 뿐,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