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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약을 맹신하는 사람들

속이는 자와 속는 자

by 이진영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독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반에 7~8명은 독감에 걸렸다더니 저녁 무렵부터 머리가 아프다던 아이가 밤새 고열로 앓았다. 아이를 물수건으로 닦고 해열제를 먹이고 열 내리는지 짚어보다가 옆에서 쪽잠을 자고, 다시 열이 오르면 물수건으로 닦고 앞서했던 행동을 반복하고. 이렇게 무한 반복하다가 다음 날 병원문이 열자마자 진료를 받았다. 역시 독감이 맞았고, 의사는 먹는 약과 주사 중에 선택할 수 있다며 그 차이점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이런 경우 나도 약사라서 알고 있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쉬는 날만큼은 자신의 전문 분야를 숨기고 싶은 경험, 어떤 직군이든 있을 것이다.

수액.jpg 독감치료제를 맞고 난 후 보통 해열제와 영양제 수액을 연달아 맞게 된다. 비급여 항목이 있어도 아픈 아이 앞에선 무엇인들 어떠랴.


“저기, OOO이라는 약 알아요? 그거 어떻게 처방받아요?”

최근 아이가 독감을 앓았던 지인이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자기 아이는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의사와 상의한 후 독감약을 먹지 않았고 며칠 만에 회복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조카가 아무래도 독감에 걸린 것 같아 검색해 보니 독한 독감약보다 저게 낫다고 인터넷에서 추천했다며 궁금해했다. 유명인이 먹고 효과를 봤다니 좋은 거 아니겠냐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잘못된 정보를 막아야 한다는 마음이, 쉬는 날 전문 분야를 숨기고 싶은 마음을 이겼다. 의약품안전나라 사이트에 게시된 의약품 정보를 찾아 보여주면서, 이 약은 독감치료제가 아니며 어린이에게 검증되지 않은 약을 먹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열변을 토해냈다.


지인이 말한 약을 검색해 보니 이와 관련된 인터넷 글들이 쏟아졌다. 효과가 좋아서 질병 예방을 위해 매일 일정량을 먹고 있다는 글, 국내 제약회사와 식약처가 짜고 허가가 안 되게 막는다는 글이 보였다.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는 AI로 합성한 가짜 의사가 등장하는 의약품 광고 영상이 널렸다. (출처, kbs뉴스 2025.9.23. 자) 의약품을 허가된 사항과 다르게 광고하는 것, 의약품이 아닌 것을 의약품으로 오인할 수 있도록 광고하는 것 모두 약사법 위반이지만 이를 뿌리 뽑기가 쉽지 않다. 위반 게시글, 동영상 삭제 절차에 필요한 시간보다 업로드 속도가 절대적으로 빠르다. 게다가, 플랫폼 중에는 삭제가 어려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도 있다.


AI 가짜 의사 kbs 기사.png 출처: KBS 뉴스 (2025.9.23. 자)

코로나 팬데믹 중에, 특정 의약품에 대해 반복적으로 식약처에 전화하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약이 코로나 치료제로 전국 병원에서 적극 활용되어야 하는 약이라며 식약처에서 왜 홍보하지 않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그와 비슷한 취지로 여러 번, 여러 부서에 전화를 돌리더니 그다음은 왜 어린이, 청소년에게까지 사용하도록 허가를 안 내어주냐고 따졌다. 당신의 전화를 받고 있는 직원은 부서 내 말단 공무원이며 의약품 허가는 혼자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여러 부서의 심사와 여러 단계의 전문가 논의를 거치는 전 과정을 그는 의심했고 자신의 뜻을 관철할 때까지 전화할 기세였다.


이렇게 특정 약을 맹신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허위 광고의 창조자일까, 희생자일까. 전자도 후자도 있을 것이고, 그 목적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허위 광고의 이면에 있는, 이것을 공들여 만들고 확산시키는 사람들이 얻게 될 이득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허가 안 된 명약은 없고, 임상시험 중인 약은 효과와 더불어 안전성까지 입증되어야 최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새로운 약의 새로운 효능을 보겠다고, 효과와 안전성이 모두 입증된 기존 의약품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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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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