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 협박당한 것인가
국가직 공무원을 그만두고 지방직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격렬히 반대하신 분이 딱 한 분 계셨다. 그분이 말씀하신 반대 이유는 단 하나, 그간 진정한 민원의 쓴맛을 본 적 없는 나는 그 일의 험난함을 상상조차 못 한다는 거였다. 그때는 ‘내가 그렇게 미덥지 못한가?’, ‘떠나는 일손이 아쉬우신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당직 근무 단 한 번으로 나는 깨달았다. 민원은 쓰다 못해 매울 수 있음을.
“지금 여기, 이 지역 OOO 축제에 왔는데 주차할 때가 없어요. 차 여기 세울 테니 내 차는 단속하지 마요. 내 차 번호 불러줄게요.”
“선생님, 오늘 축제로 인해 도로가 혼잡하여 경찰서 쪽에서도 교통정리를 하고 있어요. 주정차 단속은 저희 쪽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니 선생님 차가 단속되지 않을 거라고 확답드릴 수 없어요.”
“그럼 내가 그쪽으로 운전해서 갈 테니 주차장 열어놔요.”
“죄송하지만 여기 주차장도 이미 만차여서 폐쇄”
(말을 끊으며) “나 화장실이 급한데 어쩌라고!!!” (뚝)
지방직 공무원으로서의 첫 당직 근무일은 하필 지역축제 첫째 날이었다. 누군가가 당직 근무일을 바꿔 달라고 요청해서 바꾼 것이었는데 나는 뒤늦게 교훈을 얻었다. 지자체의 월간 행사 일정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날 나는 온갖 주차와 축제에 대한 민원들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본인의 용무가 급한 것으로 나를 협박한 그분은 주차 자리를 찾으셨는지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당직 근무 내내 책임지라는 전화가 다시 오거나 당직실로 손수 찾아오실까 싶어서 겁이 났다.
내가 겪었던 당직 민원의 70%는 주차 관련 불만 사항이었다. 주말 낮 시간대 근무인 일직이든, 야간 시간대 근무인 숙직이든 주차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내가 근무했던 지자체에서는 별도의 주차단속반이 있어서, 민원이 접수되면 즉시 그들에게 알려 조치하도록 했다. 보통 지자체의 불법주정차 단속 업무는 주차 관련 부서에서 담당해서, 당직자가 답변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내용들은 평일 낮시간대에 담당 부서로 연락 달라고 당부드렸다.
다음으로 자주 접수되는 당직 민원으로는 공사장 소음에 대한 마찰이었다. 주말 아침 늦잠이라도 자고 싶은데 아파트 짓는 소리, 땅 파는 소리와 같은 소음이 들리면 누구나 불쾌할 것이다. 일요일에 공사를 하려면 지자체에 신고해야 하다 보니 주로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평일과 토요일에 공사가 진행되었다. 공사장 소음에 대한 민원은 즉각 처리해야 하니 당직자들이 2인 1조로 현장 출동을 했다. 도착했을 때 점심시간이라 공사 책임자를 만나기 위해 굶으며 기다린 적도 있었고, 아파트 신축 공사장이 너무 넓어서 도보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를 못 찾아 마냥 걸었던 적도 있었다. 대체로 책임자는 우호적으로 협조하여 주셨고 토요일은 평일보다 늦은 시각에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 일에 잔뼈가 굵으신 당직자 한 분이 돌아오는 길에 내게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해도 소음 신고는 또 있을 거예요. 아파트를 다 지어야 소음이 안 나겠지요.”
당직 운영 방법은 지자체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일직과 숙직 체계는 모든 지자체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자체와 보건소가 붙어있는 경우 인원을 합쳐서 돌아가면서 당직 근무를 하게 된다. 근무 인원도 꽤 많이 필요해서 6~7인까지 같이 근무했다. 구성은 당직사령 1인에 전화민원 담당자 2인, 현장 출동 담당자 2인, 순찰 담당자 1인 이런 방식이다. 지자체에서는 여직원들도 당연히 숙직 근무조에 편성되었다. 당직실 내부에는 숙직자를 위한 쉼터가 성별에 따라 각각 있었다. 전화민원 담당자가 2인이어서 새벽 1시까지는 같이 근무한 다음 이후 새벽 1시에서 4시에는 내가, 새벽 4시에서 7시까지는 다른 담당자가 잠시 눈을 붙이는 방식으로 분업하기도 했다.
지자체의 당직자 지침은 식약처의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두꺼웠다. 도로 위에 야생 동물이 있을 때의 대응법은 살아있을 경우와 죽었을 경우로 나뉘어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면 일차적으로는 소방서에서 대처하나 그 피해 규모가 커지면 당직자를 통해 지자체 및 보건소 신속대응반까지 출동하게 된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경찰서에서 출동하여 교통을 정리하지만, 사고 차량의 잔재가 도로 위에 떨어져 있으면 지자체 당직자가 출동해서 치워야 한다.
출근길 즐겨 듣는 라디오 방송에서 PD님이 ‘밤사이 우리의 일상을 지켜주신 군인, 소방관, 경찰관을 포함하여 여러 공무원 및 각종 현장에서 야간 근무하시는 분들께 감사드린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간의 당직 근무들이 생각나면서 운전 중임에도 울컥 눈물이 났다. 어떨 때는 함께하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가끔은 처리하지도 못할 민원 전화에 이 일이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감사하다는 그 한 마디가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대다수의 휴일과 밤이 조용히 지나갈지라도, 누군가는 긴급 상황에 대비하는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여러 곳에서 근무 중인 많은 당직자들의 덕을 보고 있다. 공직약사이기 전에 공무원인 나도 그 여러 날 중 하루를 그저 묵묵히 보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