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 협박에 이용된 것인가
“거기 식약처죠? 여기 아주 질 나쁜 횟감을 파는 식당을 신고하려고 해요.”
저녁 9시경 울린 당직용 전화기 너머로 어느 아주머니의 화 난 목소리가 들렸다. 야간 당직자를 위한 지침에 따라 답변하려던 찰나,
“내가 지금! 식약처에 신고하고 있으니 딱 두고 봐!”
전화를 건 아주머니는 나와 통화하는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생중계하는 듯했다.
“선생님, 지금 식약처 업무 시간은 종료되었고 저는 당직자입니다. 불량식품을 신고하시려면......”
(말을 끊으며) “네. 네. 여기 식당 지금 바로 신고할 텐데요, 여기 상호가 뭐냐면요. 내가 지금 식약처에 신고하고 있다고! 나 말리지 마!”
“저기, 선생님. 지금 제 말 들리시나요?”
“네. 네. 여기 식당 이름이 그러니까.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요.” (뚝)
그 후로 그 아주머니는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아마도 가게 주인과 원만한 합의에 이르렀나 보다. 지금 나 협박에 이용된 것인가에 대한 씁쓸함은 사실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무사히 전화가 마무리된 사실에 안도했다. 이와 같은 사유로 야간에 국가기관으로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었다.
“공무원한테는 당직이 있어요.”
공직약사의 단점을 물어본다면 기꺼이 나는 이 사실을 말한다. 엄밀히 말해서 이는 모든 직렬에 해당하는 공무원의 단점으로 볼 수 있겠지만. 당직은 숙직과 일직으로 나눌 수 있다. 숙직은 매일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로, 야간의 비상대기조에 해당한다. 평일이 아닌 모든 날에 해당하는 주말과 공휴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 근무는 일직이라고 부르며 주간의 비상대기조로 볼 수 있다.
식약처의 당직 체계는 본청과 지방식약청이 서로 다르다. 본청에서는 2인 1조로 여직원은 일직, 남직원은 숙직 근무를 했다. 이것은 내가 근무할 때의 기억이라 현재는 그대로 유지 중인지, 변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여직원의 수가 훨씬 많고 일직보다 숙직의 빈도가 더 잦아서, 남직원들이 훨씬 불리하고 힘든 상황에 있었다.
지방청에서는 숙직 대신, 당직자가 저녁 시간대까지 청사 내부를 순찰하며 근무하다가 당직용 휴대전화를 가지고 귀가하는 ‘재택당직’이 있었다. 본청 당직자는 6개 지방청 당직자와의 연결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기에, 중요한 전달 사항이 있으면 지방청 당직자는 본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체계였다.
정규 업무 시간이 끝나면 당직용 전화기로 대표전화가 착신 전환되었다. 당직자가 모든 부서의 업무를 알 수 없기에 당직자를 위한 근무 지침이 있었다. 가령 불량식품 신고 전화는 1399번이라고 알려드리고, 허가 관련 민원 신청 문의에는 평일 근무시간 중에 관련 부서로 직접 전화하도록 부서명과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전화만 온다면 공무원의 당직 근무가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코로나 시국 중에 당직 근무를 한 직원은 밤새 마스크가 왜 없냐는 항의 전화를 받느라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그때 식약처는 보건용 마스크의 성능과 품질을 관리하는 기관에서 마스크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기관으로 바뀐 상태였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상대방의 감정이 격양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는, 그는 연신 사과하며 화난 사람들을 달랬다고 했다. 그는 마스크 관련 업무를 하지 않는 부서에서 일했지만, 관련자가 아니어도 뭐라도 답변해야만 하는 것이 당직자의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