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내가 공무원을 하는 이유

그때 들은 그 말들 덕분에

by 영샘

자세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나는 많이 지쳤다. 육아휴직 후 돌아왔더니 타 팀의 일부 업무가 우리 팀 -정확하게는 내 업무 분장-에 넘어왔고 때마침 관련 이슈가 빵빵 터졌다. 식약처 본청은 언론에서 보도하는 제품에 대해 지방청으로 연달아 검사 지시를 보냈다. 일을 넘긴 팀에서는 ‘이게 이렇게까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는데.’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안도하는 듯했다. 우리 팀에서는 ‘샘(선생님, 주무관이 서로를 편하게 부르는 호칭)은 일복이 있나 보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런 내 기억은 일부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의 나는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양까지 급증한 업무를 감당하느라 단단히 꼬였고 폭발 직전이었으니.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승진과 거리도 먼 지방청에서 왜 이렇게 고되게 일하는지 모르겠다고. 어쨌든 누군가는 이 검사를 하고 결과를 내야 사태가 마무리될 테니까 여기까지는 하고 그만두자는 생각이었다. 일대일로 업무를 보고하던 어떤 날, 나도 모르게 이러한 감정을 드러냈는지, 묵묵히 보고를 듣던 상사는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말했다.

“복 받을 거야.”


다소 맥락 없는 한마디에 놀란 나는 “네?”라고 되물었고, 그분은 다시 한번, “복 받을 거라고.”라고만 짧게 답했다. 그건 위로였을까, 예언이었을까. 누가 누구에게 어떤 복을 받는다는 뜻일까. 어떤 방향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추리소설의 한 문장이 되어 내 마음속으로 훅 들어왔다. 고생한 게 아까워서였는지, 위기가 지나간 후에는 그만둘 결심은 잊어버렸고 그때 들은 저 말만 기억에 남겼다. 그 후로,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인 것은 알겠지만 이렇게 힘든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동료를 보면 나지막이 속으로 읊조린다.

‘복 받을 거야. 그렇게 되도록 내가 샘을 위해 기도할게.’

1750158713836.jpg 내가 만든 복빗자루 (2025년 6월)

국가직 공무원으로서는 의원면직일이며, 지방직 공무원으로서는 신규임용일이 되는 날, 중고 신입으로 출근하는 내 마음에는 스멀스멀 불안이 피어올랐다. 숨기려고 해도 어차피 다 드러날 텐데, 식약처 그만두고 보건소로 왔다고 하면 뭐라고 생각할까. 이전 직장에서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 아닌지 의심하면 어쩌지. 어리지도 않은 나이에 안 해본 일을 빠르게 배울 수 있을지. 가만, 식약처에서 일하면서 내가 보건소 사람들에게 친절한 적이 있었던가? 식약처 이미지 폭망이면 나까지도 폭망인가?


복잡한 내 마음과는 달리 보건소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의 미소는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했다. 신규 공무원인데 ‘시보’가 아닌 나의 사연을 듣고 팀장님은 말씀하셨다.

“환영해요, 정말 잘 왔어요.”

나에게 그 말은 의례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심으로 다가왔고, 안개처럼 가득 찼던 불안이 햇살 속에 흩어졌다. 중고 신입은 사실과 다르게 능력자로 포장되었으며 생각보다 내 나이는 일 배우기에 적당했다. 사실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 늦은 나이가 어디 있을까 싶다. 그리고 지자체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정부에 대한 유감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을 분리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보건소에서 일하면서 나도 종종 보건복지부나 식약처 공무원을 만나 합동 점검을 했으니까.

20210331_121945.jpg 봄날의 햇살 (2021년 3월)


이전에 쓴 글 ‘국가직, 지방직 둘 다 해보니 어때요.’에서 일이 어렵고 힘에 부쳐도 결국 함께하는 사람들로 인해 위기를 넘긴 적이 많았다고 썼다. 여전히 내가 공무원을 하는 이유는 진심이 가득 담긴 말들과 그 뒤에도 이어지는 호의와 지지 덕분이다. 적의로 가득 찬 말과 언어를 넘어선 공격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따뜻한 말 한마디는 누군가를 다시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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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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