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시작은 어디쯤이었을까?
언제쯤, 우리의 결혼 생활 중 어느 구간이었을까.
내가 당신을 너무 이해해 보려는 탓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당신을 무책임하고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여린 사람이라 굳게 믿은 탓이었을까.
사실 2년이 지난 지금은 누구를 탓할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해서 그 사랑을 어쩌지 못해 결혼한 우리가
그렇게나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보여주고 사랑을 만져보려 버둥대고 눈만 바라보아도 마음이 따뜻해졌던 우리가
이렇게 된 데에는 아주 작고 아주 많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
처음에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이지 헌신적으로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당신의 비서가 되고, 가정부가 되고, 운전기사가 되고, 베이비시터가 되고, 당신의 어린 시절 상처의 샌드백이 되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헌신하고 사랑을 듬뿍 쏟아도 일말의 고마움도, 미안함도 느끼지 못하는 당신을 보면서
나의 이해와 배려, 사랑이 오히려 당신에게 무감각을 선물하는 것만 같았다.
스물여섯이라는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우리의 주변 환경은 변한 것이 없는데 세상에서 우리 가족,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아이만
지구를 거꾸로 도는 느낌.
돌이켜 보면 그 불행들 틈 사이사이로도 행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던 순간들이 있다.
그렇지만 죽지 못해 살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