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1
우리는 참 많이도 싸웠다.
싸우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술이었다.
술을 마시면 아침 10시, 11시가 되어도 집에 오지 않고, 술을 마시면 언제나 남들과 다툼이 일어나고, 지갑과 휴대폰조차 잃어버리기 일쑤인 남편을,
집에 경찰관과 소방관까지 불러들이는 남편을 기다리느라 종일 혼자서 아이를 돌보고 지칠 대로 지친 몸인데도 불구하고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걱정이 되어서 전화라도 하면 귀찮아하고 짜증만 내는 남편이 나는 항상 서운하고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글펐다.
아이를 돌보느라 하루 종일 땀 흘리고 아이의 침, 아이의 토를 받아낸 나에게 씻을 시간, 단 30분조차도 주지 않고 출근해 버리는 남편 덕에 나의 20년 지기 친구는 직장에서 퇴근하면 우리 집에 3시간을 넘게 머물다 그제야 진짜 퇴근을 했다. 나의 아이가 범보의자에 앉게 될 때까지.
장장 3개월이란 시간 동안 매일매일을.
이 말도 안 되는 결혼생활동안 우울증이 걸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롯이 20년 지기 친구와 나의 중고등학교 친구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제나 한걸음에 달려와주고 항상 나의 아이보다 나를 더 우선으로 생각하고 챙겨주던 하나뿐인 내 친구들. 아이를 위한 선물보다 나를 위한 선물을 더 챙겨주던.
아이를 키우느라 내가 없어지던 순간순간마다 희미해져 가는 나를 다시금 선명하게 해 주던. 생각만으로도 고마움에 눈물부터 나는 내 사람들.
그래서 나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묵묵히 참아내다 결국 망가지는 건 내 몸과 정신일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나조차도 끝내 결국에는 이석증과 공황발작을 겪고 말았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는 피폐해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