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4
나는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딱 한번 공황발작을 겪었을 뿐인데도 밤에 소파에 앉아있을 때면 어김없이 불안감이 밀려왔다.
또 그날처럼 숨이 안 쉬어질까 봐 무서웠다.
고작 딱 한 번이었는데도.
공황발작이 지속적으로, 여러 번 반복되면 공황장애라고 했다.
TV에서 연예인들이 흔히 얘기하던 공황장애라는 건 얼마나 더 두렵고 불안하고 무서운 걸까.
나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하기만 했던 나는 지인에게 수소문한 끝에 유명한 정신과를 알게 됐다. 예약을 하고 방문한 곳은 산 중턱쯤 있는 정신과였다. 꽤나 큰 건물이었고 외관부터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또 다른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께 나의 결혼생활과 그날의 공황발작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공황발작이 또 올까 무섭다고.
밤에 소파에만 앉아도 그때의 기분이 든다고.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의사 선생님은
남편과 함께 갔었던 첫 번째 병원의 의사 선생님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치료를 할 건 없다고.
그리고는 책을 읽는지 물어보셨다.
원래도 책을 읽는 걸 좋아했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힘들고 우울할 때마다 책으로 도망치고, 책에서 위로를 받았던 게 일상이었던지라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진료실 벽에 있던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서 보여주셨다.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당신이 옳다>
책 제목을 보는데 눈물이 왈칵 차 올랐다.
언제나 나를 비난하는 당신의 말에 치이고 치인 내가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들고 있었던 터였다.
나는 긍정적이고 밝은 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폭풍 속에서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금방이라도 꺼져서 어둠에 집어삼켜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단 하나의 촛불 같았다.
그때 병원을 나서는 길에 주문했던
<당신이 옳다>는 아직도 내 책장에.
책 제목만으로도 위로받았던 그때의 감정도 아직 내 안에 남아있다.
<당신이 옳다>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언제나 내가 문제라는 남편.
"네가 문제야. "
"아니? 문제는 너야."
우리의 끝이 보이지 않는 다툼 속에서 이제는 뭐가 옳고 그른지 조차 판단하기 어렵고 그 상황들을 똑바로 바라 볼 힘조차 없었던 나에게 그 책 한 권만큼은 나만 바라보며 지지해 주는 든든한 하나의 지원군 같았다.
지금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무기력하고 지쳐있었던 것 같다.
나 혼자만 노력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이 관계가 도무지 끝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희망조차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 애썼던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를 움츠러들게 하고 자꾸만 작아지게 만드는 사람에게 더 이상은 너를 내어주지 말라고.
너를 갉아먹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으려 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