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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

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5

by 도또리

그러다 우리는 남편의 직장 때문에 제주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에게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제주도.

그래서 설렘과 기대, 걱정이 공존하면서도 나는 좋았다. 친화력도 좋은 나는 얼마든지 사람들과도 친해질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서.


여름 끝자락에 시작된 우리의 제주도 생활은 그로부터 얼마 가지 못했다.

어쩌면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었을지도

다만 내가 눈을 가리고 보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제주도는 역시나 좋았다.

여전히 나는 24시간 독박육아였고 아이의 어린이집은 대기상태였다. 4살의 아이와 나는 매일매일 관광지와 오름, 공원, 바닷가로 가서 뛰어놀며 우리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결혼 후 아이를 돌보느라 일을 하지 못했던 내가 아이와 매일 즐겁게 놀 수 있었던 것만큼은, 당신에게 감사한다.

그 나이의 또래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여유로웠으니까.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저 아이와 나의 무대가 제주도가 된 것일 뿐.

남편은 여전했다.

여전히 본인만 즐거웠다.

제주도에서조차도 아이와 제대로 놀아주지 않았다. 술에 취해 자는 아빠에게 놀아달라며 아이가 다가가면 불같은 화가 쏟아졌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더 바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4살의 남자아이는 언제나 아빠와 놀고 싶어 했기에.


어디서든 다른 아이가 아빠와 노는 모습을 보면 꼭 다가가서 "아빠 아빠"하며 같이 놀아달라던 아이였다. 그게 마음이 아파 아빠들처럼 몸으로 놀아주려 노력했다. 체력을 있는 힘껏 다 끌어다 모아서.


어느 날, 제주도에도 지인이 많았던 남편

친하게 지내는 형이 나랑 아이도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아이와 둘이서는 외식을 많이 했지만 남편과 셋이서 하는 외식은 좀처럼 잘 없었기에 나는 신이 났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우리는 간단하게 먹을 맥주집으로 향했다.

그때 새로 생겨 한참 인기 있던 호떡과 맥주를 파는 가게.

아이와 항상 함께니 술 마시는 곳은 갈 수도 없었고 술도 잘 못 마셔서 먹을 일도 없었던 내가 너무나 가보고 싶었던 곳.

남편은 여러 번 와본 곳이라고 했다.


들어서자마자 너무 좋았다.

그 분위기, 흘러나오는 음악들, 수제 맥주와 여러 토핑의 호떡들도.

신이 난 아이도 처음 보는 삼촌들과 재잘재잘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친한 형이 행복해하는 나와 아이를 보며 말했다.


"ㅇㅇ아 제수씨랑 아들이랑 이런 데 안 와? 너만 다니지 말고 같이 좀 다녀."


부끄러웠다.


그동안 내가 홀로 육아와 씨름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갈 때, 이 사람은 지인들과 이렇게 편안하고 즐겁고 재미있 시간을 보내고 있었겠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당신은 나를 방치하고 있었던 거는걸.

우리의 아이마저도.


맥주 한잔을 마시고 집에 가려는데 남편은 일어서질 않았다.

아이와 둘이서 먼저 집에 가 있으라는 남편의 말에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이 났다.

너무 외로웠다.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다.

공허했고, 쓸쓸했다.


이건 누구를 위한 결혼생활인 걸까.

우리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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