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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6

by 도또리

제주도에서 맞는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우울했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실 일이 없는 내가 그날은 아이와 함께 간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 캔 사서 들어왔다.

아이를 재우고 방구석 벽에 기대어 앉아 혼자 맥주를 마셨다.

눈물이 펑펑 났다.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선까지 도달했다는 게 몸과 마음으로 다 느껴졌다.

이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4살 아이와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남편이 왔다. 방구석 바닥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들고서 울고 있는 나를 보곤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우리는 또 언성 높여 싸웠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겠노라 남편에게 말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나와 아이의 짐을 친정으로 다 보내고 진짜 가냐며 붙잡는 남편을 뿌리치고서 나는 아이와 제주도를 벗어났다.


그래, 인정한다.

나는 남편에게서 도망친 거다.

남편은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을 거다.


친정으로 들어간 나는 아이의 어린이집을 구하고

직장도 구했다. 제주도에서는 그렇게나 자리가 없어 어린이집을 보낼 수가 없었는데

여기는 보낼 곳이 넘쳐났다.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은 친정 부모님이 해주셨고, 덕분에 나는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었다.


나는 점점 살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남편은

함께 있을 땐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우리가 옆에 없다며 외로워하고 있었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우리가 그때하고 있었던 건

별거였다.

잠깐의 거리 두기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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