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강아지
무엇이 되었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한없는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존재는 사랑을 줄 줄 안다. 봉봉은 차갑고 이기적이기만 하다고 생각한 내 안에도 사랑이 이렇게나 많이 숨어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려준 존재다. 봉봉이 먹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는데 목숨을 잃을까 봐 먹지 못하게 막거나 고통스러워하는데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해야만 할 때, 자유의지를 주었다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만들고 누구보다 사랑한다면서 때때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시련을 주는 신의 뜻을 나는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 백수린
중학교 3학년인가 2학년 때쯤 우리 집에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왔다.
엄마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키우던 요키인데 그 집 아저씨가 강아지를 자꾸 때린다고. 그래서 다른 집에 맡긴 것이 엄마 친구의 집이고, 그 집에서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키우지 못해 주변을 수소문하다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작은 몸에 갈색과 까만 털이 뒤덮여 있는 한 주먹만 한 나의 강아지.
처음 봤을 땐 얼마나 깨발랄한지 나의 잠옷을 물고 놓지 않아 귀엽지만 귀찮아서 좀 미웠었다. 하도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게 하니 엄마는 '그냥 다시 갖다 줘 버릴까?'라고 했지만 왠지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리 강아지는 우리의 식구가 되었고 나의 친구, 나의 동생, 나의 자식, 나의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신은 왜 간절한 소망은 이토록 안 들어주실까.
나의 소원은 우리 강아지가 20살까지 사는 것뿐이었다. 어딜 가서 소원을 빌어도 우리 강아지가 건강하게 해 주세요, 20살까지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빌었는데.
강아지의 작은 두 앞발을 약속하듯 내 새끼손가락을 걸며 20살까지 살자고 했지만 15살이 되던 해. 우리 강아지는 뇌종양에 걸렸다.
백내장 수술이 힘겨웠기 때문일까. 옆집 진돗개에게 물렸기 때문일까. 아님 나와 둘이 살며 고생했기 때문일까. 어떤 약과 수술로도 나을 수 없는 그 병은 15살이 넘어도 아기 같던 우리 강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거의 짖지 않는 강아지인데 밤마다 아파서 울부짖고 같은 자리만 뱅뱅 돌았다. 나중에는 다리에 힘이 없어 휠체어까지 샀지만 두어 번 산책을 나가고 그 휠체어는 쓰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사람으로 치면 혼수상태와 다름없으니 안락사를 하자고 했지만 나의 욕심으로 자연사할 때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이 아직도 후회로 남는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유골함은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어릴 때처럼.
당시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납골당에 두어도 잘 찾지 않을 것 같지 않아
무작정 들고 와 언젠가 스톤으로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며 3년간 방 한 칸에 자리를 만들어두었다.
그러다 작년 겨울 즈음, 온전한 나의 집이 생긴 이후 유골함을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우연히 화분장이라는 걸 접하게 되었고,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또 다른 생명을 키우는 것이라 또 죽음을 마주하게 될까 두려웠지만 어디에 버리거나 처분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화분장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동탄에 위치한 화분장 전문 업체에 연락해 예약을 하고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그곳을 찾았다.
장례는 엄숙하게 이루어졌다. 3년이 지났기도 하고 또 나의 슬픔이나 감정을 겉으로 보이는 것이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감정에 몰입하여 슬프고 싶지 않아 담담히 화분장에 참여했다.
완성된 나무를 보니 비록 양지바르고 좋은 곳에 묻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강아지를 기억하는 최선의 방법이 된 것 같아 좀 편해진 마음이었다.
강아지가 죽고 나서 나는 이름도 바꾸고 새로운 직장도 얻었다.
반려동물은 떠날 때 주인의 힘듦을 다 짊어지고 간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우리 강아지 덕분에 내가 지금 행복히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펫로스 증후군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추억은 서서히 흐려지지만 온전한 사랑을 주고받았던 마음은 강렬히 남았으니까.
아직도 우리 강아지와 함께했던 행복했던 일, 힘들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기가 어렵기만 하다. 매일 사진을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이렇게 글로 남기면서도 쉽사리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는건 우리의 깊었던 15년을 표현하기에는 종이가 너무 납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오래되었는데도 가끔 이렇게 마음에서 못 놓고 계속 떠올릴 때마다 나 때문에 좋은 곳으로 못 갈까 봐 걱정이 될 뿐이다. 다음 생애에도 또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