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침묵이 무서운 아들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어느 날 밤엔 잠자던 방의 드레스룸 앞에 서 있는 흐물흐물한 오렌지색 괴물을 보았다고 했다. 맙소사! 내가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를 아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느 집처럼 우리 집도 ‘베드타임 스토리’로 밤마다 동화책을 읽어 주었는데 내 나이 마흔을 넘기니 어두운 조명 탓에 눈이 시리고 아팠다. 그렇다고 불을 켜자니 말똥말똥해지는 아들의 눈이 떠올라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정도 동화책을 읽어주고 ‘불끄고-눈감고-자자’ 순서였는데 일곱 살이 된 아들은 여기서 한번 더 제동을 걸었다. “얘기해 줘”..... “조용한 시간이 무서워” 했다. “조용해지면 오렌지색 괴물이 또 나타날까 봐?” 내가 물었더니 “... 응” 대답했다. 한동안 토닥토닥 쓰담쓰담이 이어졌다.
세상은 벌써 1년째 ‘코로나19’로 인한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TV에서는 연일 <코로나19 뉴스특보>를 방송했고 마스크 쓰기와 손소독제, 단계별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수업과 사회적 고립,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그로 인한 심리적 불안과 우울은 사람들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3차례의 대유행의 시기가 지나고 2021년 3월부터는 아들이 다니는 병설유치원도 등원 수업으로 전환되었으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여전히 하루 400~500명을 넘나들고 있어 언제 다시 휴원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델타 변이와 오미크론 변이로 시끄러웠던 4차와 5차의 대유행의 시기도 아직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른들에게도 힘든 세상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낯설고 두려웠을까? 불안과 혼돈이 가득한 코로나 시대에서 아들은 생애 가장 힘든 일곱 살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들은 양보 없이 싸우다가 서로의 잘못을 이르기에 바쁘고, 마스크를 쓴 선생님의 표정 없는 눈은 매일 화가 나 있다고 말했다. 마스크가 코 밑으로 흘러 내려온 어떤 아이는 코와 입을 만진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며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한숨을 쉬었다. 벌써 반 아이를 때리거나 욕을 하는 친구가 생겨났고, 한밤중 자던 아들은 “선생님...!”을 외치더니 놀라 깨나서는 엉엉 울기도 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위대한 인물들은 꿈에서도 영감을 받는다고 했던가. 아들의 밤을 위한 나의 수고로움은 몇 년이 더 늘었다. 이는 두고두고 기억했다가 나중에 이자까지 받으리라. 아무튼.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이때부터 우리의 수다는 시작되었다. 처음엔 ‘끝말잇기’나 ‘주제별 이름 말하기’ 같은 게임을 했다. 그다음엔 수학이나 과학상식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보따리를 채우기 위해 짬날 때마다 녹색창에 폭풍 검색을 하기도 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주장했던 지동설과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물개 박수를 치며 흥미로워했다.
아들의 물개 박수에는 마법이 있어서 나를 에너자이저로 만든다.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에너자이저 광고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그러고도 잠들지 않으면 암산으로 푸는 수학 퀴즈! 한참 분수에 빠져있던 아들에게 가분수를 대분수로 바꾸기, 대분수를 가분수로 바꾸기, 기약분수 만들기 등의 문제를 내면서 불면의 밤을 이겨내고 있었다. 가끔 아들보다 내가 먼저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세헤라자데는 그렇게 생존을 위해 밤마다 새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2022년 3월 교육부에서는 전면등교를 발표했고, 드디어 포스트 오미크론의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19’는 이제 1급 감염병에서 2급 감염병으로 전환되었다. 실외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도 전면 해제됐다. 그러는 사이 아들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아파트 1층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들러 몇 시간씩 책을 읽었다. 집 밖을 나와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는 게 우리에게는 소소하지만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마스크는 계속 썼고, 사람들은 저마다 ‘눈으로 말해요’를 시전하고 있어 예전처럼 살가운 안부나 인정스러움은 보기 어려웠다. 서로를 불편한 존재로 인식하고 무례한 관계가 된 건 어쩌면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의 역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들은 짧은 글에서 긴 글 이야기에 빠져 들었고, 나는 로알드 달을 읽기 시작했다. 로알드 달은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작가이며, 그의 소설은 풍자와 해학이 넘쳐난다. 아들이 자라면서 읽는 책들을 따라 나의 독서 취향도 바뀌었다. 아들이 그림책을 읽으면 나는 그림책에 푹 빠졌고, 동화책을 읽으면 재미있는 동화책을 찾아 읽었다. 그리하여 서로가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아들이 읽고 추천해 준 <멋진 여우씨>를 읽고는 홀딱 반해 로알드 달 시리즈를 찾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의 밤이 불타오른 건 내가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를 읽으면서부터다. 어느 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날, 낮에 읽은 부분이 너무 재미있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걸 참지 못하고 아들에게 읽은 부분을 줄줄 털어놓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다른 때 같으면 본인이 읽기도 전에 스포일러라며 길길이 날뛸 판이었는데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다 싶어 바로 외쳤다. “오늘은 여기까지!” 아들은 땅이 꺼져라 아쉬움을 토해냈다. 그 후로도 <마녀를 잡아라>, <내 친구 꼬마 거인>, <마틸다> 등의 이야기를 쏟아내며 우리는 로알드 달의 환상세계에서 기발한 상상력으로 악당을 쓰러뜨리고 통쾌하게 복수하는 기상천외한 모험을 즐겼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절대 끊을 수 없는 일일연속극처럼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은 도서관에 더 이상 우리가 읽을 책이 없어질 즈음에 뉴스에서 드디어 코로나19의 종식을 선언하며 일상으로의 회복을 알렸다. 3년 4개월 만인 2023년 5월이었다. 천일이 넘는 아들의 불타는 밤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들이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쉴 새 없이 쫑알거리느라 나는 자연스럽게 입을 닫고 귀를 열 수 있었다. 입가에 염화미소가 드리워졌다. 이후로 우리는 미사도서관으로 무대를 옮겨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한 보따리씩 빌려와 쌓아 놓고는 읽고 있다. 그 시절 우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웠다고 기억될 것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보다 더 위대한 사랑을 나누었다고.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