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씨의 의자

by E Hana

“엄마 나는 곰씨 같아”


하루는 아들이 하원을 하고 와서는 유치원 선생님이 읽어 주었다며 <곰씨의 의자> 이야기를 해주었다. 불편한 게 많은데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말을 잘 못하겠다는 것이다. 싸울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미운 말을 들으면 상처도 받고, 친구랑 다시 같이 놀고 싶은데 싸우고 나면 토라져서 다시는 안 논다고 하는 게 속상하다고 했다. 노인경 작가의 <곰씨의 의자>는 이렇다. 곰씨가 자신의 의자에 앉아 시집도 읽고 차도 마시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지친 토끼씨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데, 토끼씨는 어느새 이곳에서 가족을 이루고 곰씨를 점점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곰씨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다.


어른이 되어도 감정이 미숙해서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줄 때가 종종 있다. 때로는 선을 넘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도 곰씨 같을 때가 있었다. 영화를 업으로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관계에서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내 공간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영화가 소통의 작업이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촬영이 시작되면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작업이 된다. 또 그렇지 않으면 영화가 종종 산으로 가는 경향이 있기에 감독의 목소리를 존중하지만 때론 고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충무로에서 꽤나 유명한 촬영팀 소속이었다. 촬영감독님 아래 촬영팀과 조명팀이 한 팀을 이루었기에 팀의 규모도 컸고, 촬영 장비를 렌털하는 렌털샵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 팀은 촬영감독이 조명까지 관장하는 DP(Director of Photography) 시스템이었는데, 대부분의 영화는 촬영팀과 조명팀이 따로 있었다. 메커니즘이 복잡한 카메라와 무거운 장비들을 만지는 촬영팀의 특성상 팀 내 여자는 한 명이거나 없거나로 제한적이다. 그러다 보니 피지컬적인 문제나 소통에서 어렵고 불편한 부분들이 왕왕 생겨난다. 아무리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고 해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사실 우리 촬영팀 선배들만큼 아카데믹한 분위기에 매너 좋은 팀도 없었는데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나를 서서히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곰씨가 되었다.


연출팀으로 옮기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촬영팀과 연출팀의 분위기는 정말 다르다. 촬영팀은 카메라의 메커니즘에 집중되어 수직적이고 조직적이며 기능적인데 반해 연출팀은 조감독 아래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무궁한 창작욕구를 펼친다. 촬영팀은 소속이 된 촬영팀에서 꾸준히 일을 배우고 실력을 쌓아 위로 올라가지만 연출팀은 매번 새로운 팀을 찾아 경력을 쌓다가 조감독이 되거나 스스로 감독 데뷔를 한다. 아니면 10년째 시나리오만 쓰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서른이 넘어 연출팀 스크립터로 들어가니 영화사에는 무수히 많은 토끼씨들이 존재했다. 촬영 전공인 곰씨의 지식은 토끼씨들의 도구가 되었으나 곰씨가 촬영팀에서 쌓은 경험은 토끼씨들에게는 오만함으로 보여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오기와 패기로 똘똘 뭉친, 촬영 전공에 촬영팀 출신의, 여자 스텝이 드디어 조감독이 되니 이제는 촬영팀과 기싸움을 벌였다. 그렇게 곰삭은 감정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곰씨는 ‘어떻게 무례하지 않으며 솔직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쉽게 그 대답을 찾지 못했다.


현장에서는 생각보다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감독과 피디, 감독과 스텝들, 연출팀과 제작팀, 촬영팀과 조명팀, 미술팀과 의상, 분장팀이 각각의 전문성을 걸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합이 잘 맞으면 시너지는 극대화되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에 영화는 파국을 맞이한다. 이런 이유로 위로 올라갈수록 작품에 집중하며 개인의 감정은 외면하게 된다. 자리의 무게로 인해 나의 곰씨도 묻어두었으나 영화 현장의 아직 어린 곰씨들이 나는 눈에 밟혔다. 신인 배우, 단역들, 각 팀의 막내들은 이제 막 시작된 일과 배움을 동시에 하기에 두려움과 고난이 크다. 나의 가난한 영혼은 위보다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펜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우리는 타인을 잠재적 바이러스 숙주로 간주하며 관찰 대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을 삶을 공유하는 동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인간을 정의하는 사회성이다. 관계 속에서 삶을 연대하는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존중하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자’는 캐치프레이즈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선을 넘지 않는 방법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정직이 최선의 미덕이라며 ‘솔직함’을 무기로 ‘무례함’을 시전 하는 사람들을 나는 잘 안다. 자신을 ‘곰씨’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엄마도 곰씨였어”


아들에게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아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나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서다. 스스로 답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구나 보이지 않는 물방울이 있어서’ 상대의 공간을 존중하면서 물방울을 터트리지 말아야 한다는 걸 배웠단다. 그 뜻을 이해하느냐 물었더니 이해는 하는데 어려운 것 같다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단순해서 직관적으로 판단하거나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십상이다. 상황에 따른 융통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아 언쟁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엄마보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아들은 이런 상황들을 잘 대처해 나가리라 믿는다.


‘이미 고마워하고 미안해할 줄 아는 너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나는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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