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by E Hana

나는 창문을 연다. 이불을 갠다. 베개를 턴다. 청소기로 침대를 훑는다. 밀린 설거지를 한다. 빨래를 찾는다. 양말 한 짝은 언제나 내가 술래. 세탁기를 돌린다. 청소를 한다. 최대한 대충 한다. 당신이 또 할 것이다. 봄바람이 싱그럽다. 냉장고를 훑는다. 시큼한 냄새. 인상을 쓴다. 오래된 반찬을 버린다. 연필을 깎는다. 성스럽게 깎는다. 손가락을 두두둑. 수학문제를 푼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좋다. 제자를 골탕 먹일 생각을 한다. 마른빨래를 걷는다. 젖은 빨래를 넌다. 각을 잡는다. 꼭꼭 숨었던 양말이 나온다. 콧평수가 넓어진다. 날짜를 샌다. 기념일을 찾는다. 동그라미는 꼭 2개씩.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냄새를 맡는다. 후- 불어 본다. 안경에 김서림을 좋아한다. 책을 읽는다. 밑줄을 긋는다. 단어를 되새긴다. 마음에 파도가 일어난다. 사색에 잠긴다. 커피가 식었다. 한입에 털어 넣는다. 당신의 구멍 난 양말을 버린다. 계절 옷을 쇼핑한다. 해묵은 내 옷들이 보인다. 유행은 돌고 돈다. 아들 옷은 물려받고, 당신 옷만 클릭한다. 바람 안 날 정도로만 예쁜 걸로. 낮잠을 잔다. 샤워를 한다. 머리를 말린다. 돋보기를 찾는다. 손톱을 깎는다. 반죽을 한다. 빵을 굽는다. 빵이 아들을 닮았다. 사랑스럽다. 예쁜 것만 담는다. 음악을 듣는다.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듣다가 가난한 내 행복 안에 살게 해서 미안하다는 노랫말을 곱씹으며 웃는다. 무작정 걷는다. 운동화 끈이 풀려도 그냥 걷는다. 네 잎 클로버를 찾는다. 야-옹. 고양이가 알은체를 한다. 나는 바빠. 인사하고 다시 걷는다. 도서관에 서서 냄새를 맡는다. 오래된 책 냄새. 고귀한 미생물 냄새. 구멍 난 심장을 책냄새로 덮는다. 결혼을 하면서 책을 다 팔아버렸다. 몰랐는데 심장에 구멍이 났다. 그 해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진작 고장이 났을 테지. 아들이 빌린 책을 반납한다. 다시 몇 권을 빌린다. 마트에 간다. 사람 구경을 한다. 장바구니는 언제나 하는 일이 없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서른한 가지 맛 중 엄마는 외계인. 사치를 부려본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중력을 거스르는 기분이 별로다. 25층이라 가끔 코를 잡고 이퀄라이징을 한다. 운동화를 닦는다. 분리수거를 한다. 화분에 물을 준다. 방치한 마음을 미안해한다. 문자를 보낸다. 시계를 본다. 밥을 한다. 김치를 썬다. 봉지김을 뜯는다. 젓가락질이 바쁘다.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인터넷뱅킹은 쓸데없는 습관을 만들었다. 문자가 도착한다. 밥 먹었니? 당신이 묻는다. 지금 먹고 있어. 뭐 먹어? 삼종세트. 맛있는 거 먹지. 저녁에 맛있는 거 먹자. 밥보다 뜨거운 당신 말이 오늘을 살게 한다. 3은 가장 완벽한 숫자라고. 밥과 김치와 김처럼. 당신과 나와 아들처럼. 오래된 영화를 본다. 애수에 젖는다. 눅진한 경험에 멜랑꼴리가 깊어진다. 나이를 먹었다 생각한다. 영화가 나보다 훨씬 더 버라이어티 했는데, 이제는 내 삶이 영화보다 더 다이내믹해졌다. 아줌마가 되면 정말 다이내믹해진다. 오렌지즙을 짠다. 아들이 좋아한다. 짙은 오렌지향에 물개박수부터 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것부터 먹여야지. 빵이랑 먹여야지. 메모를 적는다. 하트는 필수다. 아들이 오는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보다 나를 더 아껴준 우리 엄마. 거울을 본다. 엄마를 닮아간다. 좋은데 슬프다. 아들이 사준 인형을 만지작 거린다. 엄마가 사준 인형은 오래전에 버렸다. 벽에 걸린 사진을 본다. 세상 귀한 아들. 팔삯동이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을 보냈다. 살면서 처음으로 신을 찾았다. 그런 아들이 당신을 빼닮았다. 당신 생각만으로 나는 바람이 분다. 머리를 빗는다. 손가락을 두두둑. 다시 수학책을 편다. 숫자는 언제나 즐겁다. 두 번째 커피. 첫 번째는 핫이고 두 번째는 아이스. 청량한 얼음이 정신을 깨운다. 노동이 나를 기다린다. 아들보다 먼저 제자를 만난다. 칠판을 닦는다. 나는 이제 수업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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