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청문회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4부. [권력] 높은 곳에 있는 가짜들

by Napolia

19. 청문회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국회 청문회장.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 증인석에 앉아 있다.
그들은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대기업을 이끄는 천재들이다. 평소 그들은 숫자 하나,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으로 조직을 장악해 왔다.
​하지만 마이크 앞에 앉는 순간, 그들의 뇌에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집단성 기억상실증.
​의원이 묻는다.
"증인, 그날 호텔에서 뇌물 전달받았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비서에게 지시한 문자가 있는데도요?"
"제 업무가 너무 바빠서 세세한 건 기억나지 않습니다."
"불과 지난달 일인데 모른다고요?"
"송구합니다만, 정말 기억에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골프 스코어는 소수점까지 기억하고, 수십 년 전 라이벌의 실수는 어제 일처럼 끄집어내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치명적인 사건만 선택적으로 지워버린다.
그 뻔뻔한 표정 연기는 남우주연상감이다. '모른다'는 말은 그들에게 가장 강력한 방패이자, 국민을 우롱하는 가짜들의 언어다.
​반면, TV로 그 장면을 지켜보는 시장통의 김 씨 아저씨.
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지만, 10년 전 억울하게 떼인 돈 날짜와 시간, 그때 상대방이 입었던 옷차림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억울함은 뇌가 아니라 가슴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머리 좋은 가짜들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가슴에 멍이 든 진짜들은 그들의 기억상실 쇼를 보며 분통을 터뜨린다.
​지식이 많다는 것이 양심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비상한 머리는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합리화하는 데 쓰인다.
시험 문제를 푸는 데는 천재였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의 수치심을 느끼는 데는 낙제점인 그들.
​청문회가 끝나면 그들은 대기실에서 넥타이를 풀며 말할 것이다.
"수고했어, 오늘 잘 넘겼네."
그들의 기억력은 돌아올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순간에만 작동하는, 참으로 편리하고 선택적인 그 뇌세포가.




​[작가의 한마디]

"머리는 비상한데 가슴이 멍청한 엘리트들이 너무 많습니다."


* 이미지 출처 : Created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