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권력] 높은 곳에 있는 가짜들
국회 청문회장.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 증인석에 앉아 있다.
그들은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대기업을 이끄는 천재들이다. 평소 그들은 숫자 하나,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으로 조직을 장악해 왔다.
하지만 마이크 앞에 앉는 순간, 그들의 뇌에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집단성 기억상실증.
의원이 묻는다.
"증인, 그날 호텔에서 뇌물 전달받았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비서에게 지시한 문자가 있는데도요?"
"제 업무가 너무 바빠서 세세한 건 기억나지 않습니다."
"불과 지난달 일인데 모른다고요?"
"송구합니다만, 정말 기억에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골프 스코어는 소수점까지 기억하고, 수십 년 전 라이벌의 실수는 어제 일처럼 끄집어내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치명적인 사건만 선택적으로 지워버린다.
그 뻔뻔한 표정 연기는 남우주연상감이다. '모른다'는 말은 그들에게 가장 강력한 방패이자, 국민을 우롱하는 가짜들의 언어다.
반면, TV로 그 장면을 지켜보는 시장통의 김 씨 아저씨.
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지만, 10년 전 억울하게 떼인 돈 날짜와 시간, 그때 상대방이 입었던 옷차림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억울함은 뇌가 아니라 가슴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머리 좋은 가짜들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가슴에 멍이 든 진짜들은 그들의 기억상실 쇼를 보며 분통을 터뜨린다.
지식이 많다는 것이 양심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비상한 머리는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합리화하는 데 쓰인다.
시험 문제를 푸는 데는 천재였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의 수치심을 느끼는 데는 낙제점인 그들.
청문회가 끝나면 그들은 대기실에서 넥타이를 풀며 말할 것이다.
"수고했어, 오늘 잘 넘겼네."
그들의 기억력은 돌아올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순간에만 작동하는, 참으로 편리하고 선택적인 그 뇌세포가.
"머리는 비상한데 가슴이 멍청한 엘리트들이 너무 많습니다."
* 이미지 출처 : Created by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