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선택, 혹은 엄마를 위한 생존.
숨이 막힌다.
가슴이 조이다 못해 쥐어짜이는 고통이다.
죽을 것 같은 고통에
혼자 남결질 찰떡이가 먼저 떠올랐다.
이사 오기전부터 시작된 가슴 통증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린이집을 보내자고?”
너도 살고, 찰떡이도 살아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없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남편의 말은
현실적이어서 날 더 아프게했다.
찰떡이가
지친 엄마 얼굴을 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짧아도 괜찮으니
웃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낫다는 게 남편의 결론이었다.
나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쪽은 계속 무너지고 있었다.
“아직 말도 잘 못하고 이렇게 빨리 커버리는데…”
아이의 예쁜 시간을
내가 다 누리지 못하는 것 같은 아쉬움과 안도감에
양가적인 마음이 날 흔들었다..
그때,
문센에서 본 엄마를 우연히 마주쳤다.
짧은 산책 길에
곧 어린이집에 보낼거라는 말을 들었다.
다들 그렇게 하는 걸까.
나만 유난을 떠는 걸까.
나보다 훨씬 젊은 엄마들도
친정도움을 받아도 힘들다는데
난 더 힘들 수 밖에 없지.
그렇게 나 스스로를 위안하며
어린이집에 신청서를 넣었지만,
결과는 뻔했다.
인기 많은 시립어린이집은 당연히 탈락이었다.
이사오자마자 신청했던 아이돌봄서비스는
8개월 째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 무렵,
호흡과 가슴 통증은 더 심해졌고
병원에서 통증약만 겨우 받아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병원 가는걸 싫어하는 나를 아는 남편은
이번엔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옆집도 가정 어린이집 보내는 것 같던데..”
아파트 아이들 대부분이 간다는 가정 어린이집.
따듯한 분위기와 친절한 선생님들 덕분인지
찰떡이가 집에 오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더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33평의 안방 하나에
아이 열두 명과 선생님 두 분이 지낸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내가 더 젊었거나 체력이 더 있었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아이를 위한 선택이
혹여나 나를 위한 선택이 되는게 아닐지.
또 다시 아이에게 좁은 울타리를 씌우는 건 아닌지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어린이집을 선택한 엄마들을 향한 반항이 아니다.
그저,
일방적인 이사로 이미 한 번 힘들어 한 내 아이에게
또 다른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그때였다.
아이돌봄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님~~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전산 정비때 생긴 오류로 어머님이 2순위에서 8순위로 순서가 뒤로 밀렸네요
이번에 선생님이 매치되어서 연락드렸어요. “
이 지역은
아이돌봄 매치가 어렵다더니.
전산 오류라는 이유로
난 이사온지 8개월이 지나서야 아이돌봄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통증이 심해질수록 아이돌봄 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어느 날 갑자기
순위에서 밀려 매치가 안 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8개월 동안 내가 겪었던 고통은
그들에겐 “전산 오류” 네글자로 쉽게 끝났다.
그 사실이 나를 허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분이 오셨다.
어린이집 원장 경력이 있다는 선생님은
낯가림이 시작된 찰떡이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제가 이 동네에서
아이돌밤만 10년을 했어요.
팀장님도 저에게 의지할 정도예요. 호호”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찰떡이는 아이돌봄 선생님 품에서 책을 읽고
집에 가지말라며 옷자락을 붙잡고 울먹였다.
엄마의 마음이
너무 쉽게 기울어지는 순간이었다.
어.쩌.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난 아이돌봄의 가장 큰 리스크를 이미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유치원 원장님 경력을 가진
좋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한 달 만에 이별해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공백은
나와 찰떡이에게 더 큰 상실감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대체 선생님마저 빨리 구해지지 않던 그 시간들.
이제 막 서고 걷고 싶어 하는 아기에게
무릎이 아파 앉아만 계셔야 하는
70넘으신 아이돌봄 선생님만 연계될 뿐이었으니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이번 선택은
내 아이가 덜 아프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으로
신중히 결정해야 했다.
엄마인 나는,
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