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선택은 엄마와 아이 모두 힘들게 했다.
이사는 끝이 아니었다. 진짜 시작은 그 뒤였다.
"엄마가 대체 뭐 하신 거예요?
14개월 아이 몸무게가 9kg이네요.
몸무게가 저번보다 1kg이 줄었어요.
이건, 몸무게 70kg 성인이 한 달 동안 10kg 빠진 거랑 같아요."
영유아검진을 위해 병원에 들른 난
담당 선생님께 충격적인 말까지 들었다.
"이번달까지 치아가 나지 않으면 치과검진도 받아 보시죠!"
라는 권유와
살이 더 빠지면 링겔을 맞추어야 한다는 담당 선생님의 매서운 말에
서러움보다 미안한 마음이 눈물이 되어 흐를 뿐...
가슴이 찢어진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이게 부모 마음인건가 싶었다.
병원에서부터 집에까지 오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모든게 다 내잘못 같았다.
아직은 부축을 해주어야 간신히 아장 아장 걷는 아이의 발달까지도.
아직 낯선 집에 도착한 난
덩그러니.
딴 세상에 나 혼자 놓여진 기분이었다.
익숙한 공기와 온도,
하루를 채워주던 소리와 시선들은
한 순간에 사라진 자리에
나만 툭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머무는 공간도,
공기도,
지나가는 모든 것 들이 낯설다.
그.런.데
“왜 나만 그럴거라고 생각했을까?”
모든것들을 결정하기까지
그 안에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찰떡이가 없었다.
아직 맘마와 빠빠가 세상 언어의 전부인 아기이기에
아무것도 모를거라고 생각했던
무지한 엄마와 아빠의 착각이자 오산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 처참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아기 찰떡이에게도.
이제 13개월이 된 나의 아이 찰떡이는
이사 후 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엄마의 의지와 상관없는 자기주도식을 하고 싶은 건 줄 알았다.
어쩌다 한 입 들어가면 뱉어버리거나
하루에도 먹고 씻기고의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는 나만 안쓰러워했다.
먹을 때마다 온몸이 음식물로 범벅이 되어
하루에도 3번 이상의 목욕을 하던 찰떡이였던지라.
나는 강제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어쩌다 한번 하는 외출에도
우리집! 우리 동네라가 아니라는 듯
손가락을 가리키며 어! 어! 하며 울어 재끼는 통에
외출조차 힘들었던 난 아이가 좋아할 만한 문화센터에 등록을 했다.
하지만, 힘들게 들어간 문화센터에는
나도 나의 찰떡이도 이방인었다.
아직 말이 서툰 찰떡이는
같은 공간의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도,
문만 가리키며 “어! 어! 아냐 아냐”만 반복할뿐이었고,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등록한 엄마들은
코로나 시기의 출산이었음에도 그들만의 모임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집에서도 그곳에서도 우리 둘뿐이었다.
나이 많은 엄마라서
내향적인 엄마라서 더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걸까?
괜스레 찰떡이에게 미안해지기만 할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이는 말이 서툴 뿐, 상실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이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은 내 선택의 결과였지만,
내 아이는 그 책임을 같이 떠안고 있었다.
한달이 지나서였을까?
다행히 찰떡이에게는 앞니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고
전에 먹던 양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음식도 먹어주기 시작했다.
너무나 기쁘게도 혼자서 아장 아장 걷거나
걸음마 보조기를 잡고 의기양양하게 걷는 찰떡이를 보며
안도와 기쁨의 미소까지 지어졌다.
나와 남편은 야식으로 몸무게가 늘어가고 있었지만,
찰떡이의 몸무게와 웃는 횟수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우린 이 작은 생명체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