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다고 믿었던 순간, 불안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번엔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한다.
“선생님~
전 어린이집과 선생님을 놓고 고민 중이에요
계속 저희 집에 와주실 수 있는 건지,
일주일 정도 생각해보시고 신중히 대답해 주세요.
갑자기 그만두시면 저희는 정말 난감해져요.”
그녀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럼요.
전 오랜 시간 이 일을 해왔고 책임감이 강해요.
혹시 그만두더라도 갑자기 그만두는 일은 없을 거예요.”
"워킹맘들에겐 저희 같은 사람의 도움이 꼭 필요하잖아요.
찰떡이 걱정은 마세요.”
그 말이,
그땐 그렇게 든든하게 들렸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찰떡이는 아이돌봄 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했다.
엄마인 나보다 그녀의 품에서 책을 읽는 걸 더 좋아했고,
아침이면 선생님 오는 소리에 현관 앞에 나가 마중했으며
늘 까무라칠 듯 반겼다.
그랬다.
내 아이만 좋아하면 된 거라고 믿었다.
낮잠 시간을 고려해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루 4시간.
그 시간 동안 나는 숨 돌릴 틈을 얻었고
아이와 일, 두 가지 모두 놓치지 않는 행운에 감사했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이돌봄 선생님은
내가 오후 늦게 첫 끼를 먹는다는 걸 알아채고
나를 위한 간단한 먹거리를 챙겨 오셨고,
아이를 보며 우리 집 빨래까지 개어 주셨다.
문화센터에 가는 날엔
“동선이 같아요”라며 차에 태워 주셨고,
우리는 집 근처에 나들이를 갈 정도로 가까워졌다.
“어머님을 위한 시간이 너무 없어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은 찰떡이네만 와서 이 정도 여유가 있어요.
저도 즐거워요.”
그 말에,
난 나의 찰떡이도 마음도 모두 맡겨버렸다.
우리 부부는
찰떡이가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도 즐겼다.
짧은 네 시간이었지만,
영화도 보고 식사도 맛을 즐기며 할 수 있었다.
“언제든 둘만의 시간을 가지세요.
찰떡이는 제가 있으니까요.”
우리의 선생님을 난 믿었다.
그래서일까?
너무 완벽해서였을까.
이유 없는 불안한 마음이 한켠에 잦아들곤 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나의 생각보다 더 빨리 현실이 됐다.
그녀가 원래 맡았던 아이가 병원에서 퇴원했고,
오후 아이돌봄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했다.
그 다음 날부터였다.
“태현아~ 밥 먹을까?”
“찰떡이 이름은 “아인”이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였다."
“태현이 이제 양치하자.”
아직 20개월도 안 된 아이한테
4살 아이가 기준의 치약을 듬뿍 짜 넣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멍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나는 실수로 넘길 수 없었다.
나의 아이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 우리 집에 왔던
완벽한 선생님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나의 불안은 예민함 때문이라고 넘길 수 없었다.
엄마로서 느낀 촉에 가까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