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이 선사하는 작은 행복

<그리움과 성찰> 시리즈 2

by 이민자의 부엌


이민자의 삶은 늘 그리움과 함께한다.
그리움은 때로 아주 사소한 일상 속에서 불쑥 얼굴을 내민다.
우리 부부에게는 까만 포도가 그런 존재다.


한국에 살던 시절, 운악산 머루포도를 사 먹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 깊고 진한 맛은 단순한 과일을 넘어, 계절의 향기와 고향의 정서를 품고 있었다.


캐나다로 이민 온 지 어느덧 20년.
그 맛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곳에서도 가끔 한인마트에서 캠벨 포도를 팔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가격이 너무 올라버려,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해, 우연히 알게 된 콘코드(Concord grape) 포도 농장
우리에게 뜻밖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그 농장은 중년의 형제가 운영하고 있었고,
그들의 따뜻한 인상은 포도만큼이나 정겨웠다.


그곳에서 우리는 넉넉한 양의 포도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냉장고에 가득 채워두고 실컷 먹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포도잼을 만들어 1년 내내 아침 토스트에 발라 먹었던 일이다.


그 달콤한 잼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계절의 추억을 담은 작은 선물이었다.


올해 다시 그 농장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대신 그 옆의 다른 농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은 중년 부부와 부모님, 자녀들까지 함께 운영하는 듯했고,
따뜻한 미소와 정성스러운 안내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포도밭에 들어서자, 먹음직스러운 포도들이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연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작은 축제 같았다.


먼저 한 송이를 따서 맛을 보니, 놀랍게도 한국에서 먹던 머루포도와 흡사한 맛.
비록 알맹이는 조금 작았지만, 그 향과 식감은
고향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우리 부부는 들뜬 마음으로 포도를 따서 두 바구니 가득 담았다.
가격은 단돈 25불. 너무 저렴해서 한 바구니를 더 채웠다.


일부는 식초물에 담가 깨끗이 씻은 후 포도잼을 만들었다.
설탕은 가급적 적게 넣었다.
우리 부부의 건강을 위한 작은 배려였다.


한 시간 넘게 저어가며 끓인 잼은 먹음직스럽고 색깔도 곱디고왔다.
소독한 병에 담아 냉장고 깊은 곳에 보관하고 나니, 마음이 뿌듯했다.


그 작은 병 속에는 단순한 잼이 아닌,
우리 부부의 정성과 계절의 향기,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이민자의 삶은 낯선 땅에서 익숙함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우리는 여전히 한국의 맛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한국에서 흔히 접했던 식재료들이
이곳에서는 모두 귀한 보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그 맛을 찾아 떠나는 우리의 작은 여정은
늘 특별하고 소중하다.


사소한 일상이 선사하는 작은 행복.
그것은 때로 포도 한 송이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포도는, 고향을 향한 마음의 다리가 되어준다.




✍️ 이민자의 일상 속에서 그리움과 성찰, 그리고 사소한 행복을 기록합니다.
누군가의 하루를 살짝 덮어주는 따뜻한 이야기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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