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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과 존중 사이에서 배운 것들

<이민자의 마음으로 봉사하다:작은 손길, 큰 울림> 시리즈 6 (6)

by 이민자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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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삶은 늘 두 갈래 마음 사이를 오간다.


낯선 땅에서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단단함, 그리고 그럼에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를 찾고 싶다는 마음.


그 두 마음이 동시에 나를 이끌어, 어느 새벽 나는 캐네디언 교회의 노숙인 식사 프로그램으로 향했다.


매주 화요일,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아침 식사와 저녁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


그곳은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누군가의 허기와 외로움이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자리였다.



마스크 하나에 담긴 작고 선명한 온기


코로나가 조금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마스크와 거리 두기가 필수이던 어느 날,


한 남성이 마스크 없이 식사를 받으러 왔다. 당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무료 식사가 가능하던 시기였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난감함이 겹쳐 있었다.


나는 가방 속에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여분의 마스크를 꺼내,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에 씌워 드리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꼭 마스크 착용하고 오셔야 해요.”


그 순간, 교회 관계자가 나를 불러 손을 씻고 오라고 했다. 물론 손을 씻어야 했지만, 이분이 자리를 뜨면 가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규칙은 지켜야 했지만, 도움을 건넨 손이 누군가에게는 ‘위반’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나는 다시 손을 씻고 돌아와 또 다른 이들의 식판을 채웠다.


그렇게 나의 작은 손길은 다시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는 힘으로 이어졌다.




“누나.” 그 한마디에 스며든 고향의 온도


그 센터에는 한국계 캐나다인 노숙인이 한 분 계셨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누나.”


50대 초반의 나에게 ‘누나’라는 호칭은 뜻밖의 따뜻함이었다.


나중에야 그가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고, ‘누나, 형, 오빠’ 정도만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짧은 단어 하나가 이민자로 살아온 내 마음을 잠시 고향으로 데려다주었다.




누군가의 몫까지 챙기는 마음


어느 날, 한 노숙인이 조심스레 다가와 말했다.


“우리 집사람이 아파서 오늘은 못 왔는데… 제가 대신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미안함과 걱정이 섞인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의 아내 몫까지 정성스레 챙겨 드렸다.


식판 하나를 건네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장면 속에는 누군가의 하루를 대신 어루만지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세 가지 메뉴가 알려준 존중의 깊이


이 교회의 식사는 늘 세 가지였다.


소고기, 닭고기, 그리고 채식 메뉴.


노숙인이라고 해서 아무거나 주는 대로 먹어도 된다는 태도가 아니라,


그들 역시 ‘선택할 권리가 있는 한 사람’이라는 존중이 음식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작은 배려는 이민자로 살아온 내 마음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돕는다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곳에서 배웠다.




이민자의 마음으로 봉사한다는 것


토론토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여러 봉사활동을 경험했지만,


이 식사 프로그램은 유독 오래 내 안에 남아 있다.


이민자로 살아온 시간 동안, 나는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받아왔을 것이다.


언어의 벽, 문화의 차이, 외로움과 경제적 어려움.


그 모든 순간마다 누군가의 작은 손길이 나를 이 자리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누군가에게 건넨 마스크 하나, 식판 하나, 짧은 대화 한 줄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내가 받은 마음을 다시 세상에 흘려보내는 일처럼 느껴졌다.




손끝으로 이어진 마음의 온도


돌아보면, 그날 내가 한 일들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작은 행동들이 모여 내 마음의 온도를 천천히 바꾸어 놓았다.


이민자의 마음으로 봉사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가 지켜내고 싶은 ‘사람 사이의 온기’를 잃지 않는 일이라는 것.


그날 채워준 식판은 잠시 누군가의 허기를 달랬을지 몰라도,


그보다 더 깊이 나의 마음을 채워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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