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던지고, 다시 돌아보지 않겠다는 다짐
1. 용서는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용서를
마음이 넓은 사람의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마다
제 마음이 좁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알게 됐습니다.
용서는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아서 하는 선택이라는 것을.
용서는 준비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았는데도
계속 버티다 보니 결국 선택하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2.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많은 상처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준 상처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억은 더 선명해지고,
더 깊게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다."
해결하는 건 결국
제가 그 기억을 어떻게 다루느냐였습니다.
3. 용서는 상대를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용서는 잘못한 사람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알게 됐습니다.
용서는 그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
상처받은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상대가 바뀌어서 용서하는 게 아니라,
제가 그 장면에 더 묶여 있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내리는 허락이었습니다.
혹은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붙잡고 있는 나 자신을 풀어주는 것이다.”
4. 그때의 나를 다시 바라보는 일
용서를 어렵게 하는 건
상대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바라보던 ‘그때의 나의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나쁘게 대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왜 나에게 그랬을까’보다
‘나는 왜 그때 그렇게밖에 반응하지 못했을까’를 더 오래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는 그때의 제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반응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상처받을 만한 상황이었고,
그만큼 힘들던 시기였고,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던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묵은 분노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5. 용서는 화해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용서를
관계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도
용서는 가능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용서는
다시 친해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웃으며 마주 앉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용서는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일,
즉 그 장면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대신,
두 손으로 가볍게 뒤로 던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뒤로 던졌으면 돌아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억을 다시 주워 들고
내 마음을 또 흔들지 않는 것.
이게 용서였습니다.
깊은 감정이 아니라,
아주 실용적이고, 아주 현실적인 선택.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살리는 결정.
6. 용서는 나를 부드럽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용서를 하기 전의 저는
단단해지는 것을 성장이라고 믿었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단단해지는 건
강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단단함 속에서
제가 먼저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부드러워지는 것이 약한 게 아니라,
더 멀리 갈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용서는 제가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마음을 유연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7. 그럼에도 용서했습니
저는 사실
용서를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상처는 아직도 마음 한구석을 찌르고,
어떤 기억은 지금도 불쑥 떠올라 저를 흔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용서했습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기억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감정 위에서 계속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잊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억하되,
그 기억을 다시 붙잡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뒤로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기억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제가 걸어 나간 것이었습니다.
그게 용서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용서했습니다.
상대를 위한 마음이 아니라
무너져 있던 나를 다시 살리기 위해.
용서는 뒤로 던지는 일이었고,
다시 돌아보지 않기로 하는
조용한 다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