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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떡

생명력이 다시 켜지는 아주 작은 순간

by 박세신

벌떡.
그건 마음으로 결심해서 일어나는 소리가 아니다.


언제나 몸이 먼저다.
생각보다 앞서,
감정보다 먼저,

어디선가 작은 불씨 같은 것이 켜질 때 나는 소리.


어떤 날은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침대가 몸에 달라붙은 것 같고,
몸은 이미 바닥으로 꺼진 것처럼 무겁다.


그런데
그 깊은 무기력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미세한 떨림이 일어난다.


설명할 수 없는,
정해진 이유도 없는,
누가 조언해주지도 않은,


그냥…
점처럼 작게 생겨나는 움직임의 감각.


그리고 어느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한다.


벌떡.


“해야 하니까 일어났다”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가 아니라,
그저
살아 있는 몸이 스스로 선택한 움직임.


그건 다짐보다도
희망보다도
훨씬 약한 힘인데,


이상하게도
가장 잘 일으킨다.


가끔은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날도 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햇빛이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지는 순간.


싱크대의 물방울이
유리컵 아래로 천천히 모여드는 장면.


방 안의 공기가
아주 약하게 흔들리는 느낌.


그 작은 변화들 속에서
문득
몸 안 어딘가에 공간이 생긴다.


가슴 깊숙이,
혹은 배 안쪽 어디쯤에
바람이 통할 만한 아주 작은 틈.


그 틈을 따라
미세하게 에너지가 스며 들어온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몸은 그 틈을 헤아리고,
그 작은 기운을 잃고 싶지 않아
슬며시 움직인다.


벌떡.


그건 “일어나야지”가 아니라
“여기 앉아 있기엔 아까워”라는 감각에 가깝다.


살아 있는 순간이
잠깐 반짝하고 지나갈 때,
몸은 자연스럽게 그 빛을 따라 일어난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상처에서 바로 낫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무 이유 없이
조금 가벼워질 때가 있다.


마음의 붕대가 완전히 벗겨진 건 아닌데도,
슬픔의 색이 조금 옅어진 느낌.


그 미묘한 변화를
자기 자신이 가장 먼저 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아… 돌아오네” 하는 느낌.


그때,
몸이 아주 천천히
안쪽에서부터 기지개를 켠다.


벌떡.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건
거창한 사건이 아니다.


그저
“죽어 있지 않다는 증거”가
몸에서 먼저 깨어나는 것.


따뜻함이 아니라,
부활이 아니라,
그냥
살아 있는 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몸의 움직임.


이 벌떡은
남이 시켜서 생기는 게 아니다.


누가 응원한다고 해서 찾아오지도 않는다.
어떤 문장에 감동받아서 오는 것도 아니다.


벌떡은 늘
자기 안에서,
자기 속도로,
아무도 모르게 생겨나는 감각이다.


그래서 더 진짜다.


사람이 본래 갖고 태어난
가장 원초적인 생명력.

완전히 꺼져버린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작은 불씨처럼
다시 켜지는 힘.


그 힘은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살아진다”에 가깝다.


하루 중 가장 깊은 벌떡은

때로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찾아온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순간.


핸드폰 화면 속
별것 아닌 문장 하나.


지나가던 강아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냥 지나가던 순간.


그런 아주 작은 장면들이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몸 안의 뭔가를 건드린다.


그러면 마음도, 생각도, 분석도 없이
몸이 먼저 일어난다.


벌떡.


그건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도 아니고
극복하려는 욕망도 아니다.


단지
“이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생명체의 본능.


살아 있는 존재들은
살고 싶은 순간을 알아본다.
그걸 알아보는 순간이
벌떡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벌떡은 큰 변화의 시작이 아니다.


벌떡은
“변화가 시작될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온 순간”이다.


벌떡 이후에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바로 다시 눕든,
잠깐 걷다가 멈추든,
그 자리에서 창밖을 한참 바라보든.


중요한 건 움직인 방향이 아니다.


움직일 수 있다는 감각 자체다.


몸이 스스로 선택한 최초의 움직임.
그걸로 충분하다.


벌떡은
삶이 다시 흘러갈 수 있는 최소한의 틈이다.


그 틈 하나가 열리면
사람은 다시 자기 속도로 살아진다.


억지 없이,
과장 없이,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그냥
살아 있는 사람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벌떡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건 희망의 소리가 아니라
생명의 소리다.


죽지 않았고,
꺼지지 않았고,
여전히 나를 살게 하는 무언가가
어디선가 조용히 켜지고 있다는 증거.


그 힘은 언제나
아무도 모르는 순간에 찾아온다.


벌떡.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충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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