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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멈추는 순간에 남겨지는 소리

by 박세신

찰칵.

그건 마음이 갑자기 멈춰 서는 순간,

어딘가에서 아주 얇은 금속이 닫히며 울리는 소리다.

크지 않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거나, 감정을 흔드는 소리와는 다르게

찰칵은 정지하는 소리다.

그 한 번의 닫힘으로 장면이 고정된다.


사람의 하루에는 수많은 움직임이 있다.

흔들리고, 닿고, 떨리고, 내려놓고, 다시 일어나는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모든 움직임들을 멈추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감정이 숨을 들이쉬는 것처럼,

마음이 한 장면에 붙잡히는 순간.


찰칵.

이 소리는 움직임을 멈추고,

하루를 한 프레임으로 고정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은 말이

유난히 크게 마음에 남는다.

그 말이 상처도 아니고 위로도 아닌데

문득, 그 말을 들은 이후의 시간이

그전과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날이 있다.


아무것도 깨달은 건 아닌데,

아무 것도 해결한 건 아닌데,

그 말이 마음속 어딘가에서 닫히는 소리를 만든다.


찰칵.

마치 “여기까지” 혹은 “이 부분은 이렇게 남겨두자”

라는 표시처럼.


사람은 하루 동안 많은 장면을 지나친다.

그러나 그 장면들이 모두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흐르고 사라진다.

말처럼, 표정처럼, 소리처럼.


하지만 가끔은 아주 작은 장면이

마음속에서 사진처럼 굳어질 때가 있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누군가의 표정 없는 인사,

커피잔 위로 지나간 바람

—그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순간들이

어떻게든 내 마음의 한 지점을 잠가버린다.


찰칵.

그 장면은 이후의 나를 따라다닌다.

카메라처럼 촬영된 마음속 이미지가

어느새 오늘의 감정을 정한다.


찰칵은 ‘기억되는 순간의 소리’다.

하지만 단순한 추억의 기계음이 아니다.


찰칵은 결정의 소리이기도 하다.

닫히는 순간의 소리,

마음이 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소리.


사람은 흔히 큰 결심을 떠올릴 때

거창한 계기가 필요한 줄 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마음을 바꾸는 건

천둥도 아니고, 울음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다.


의외로 조용한 순간,

아무도 모르게 찍히는 한 장면이

그 사람의 다음 걸음을 바꿔놓는다.


찰칵.

그 소리가 울리면

이미 마음은 어느 한쪽으로 닫혀 있다.


때로는 이 소리가 상처에서 온다.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

그 말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그 말이 닫히는 속도는 더디다.

아무렇지 않던 감정의 표면에

아주 얇은 금이 생기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똑같은 말이 다시는 들어오지 않도록

문이 닫힌다.


찰칵.


상처는 대단한 고통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저 ‘이제는 믿기 어렵겠다’

‘여긴 조심해야겠다’

하는 단단한 닫힘의 감각으로 남는다.


이 닫힘은 심지어

눈물도 필요 없다.

겉으론 아무 변화 없어 보이지만

내부는 어느샌가 굳어버려 있다.


어떤 날은 반대다.

따뜻함이 찰칵을 만든다.

누군가의 아주 사소한 친절,

말 한마디,

표정의 온기,

혹은 작은 배려 하나가

마음속 오래 잠겨 있던 장면과 닿아

서랍 하나를 조용히 연다.


찰칵.

닫히는 소리와 열리는 소리가

같은 리듬이라는 건 언제나 이상하다.


하지만 마음의 문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게 열린다.

소란도 없고, 선언도 없다.

단지

“아, 이건 믿어도 되겠구나”

하는 포용의 틈 하나가 생길 뿐이다.


그 순간 역시

닫히듯 열리는 한 장면이 찍힌다.


찰칵.


찰칵은 전환의 소리다.

하지만 움직임이 아니라

“멈추는 방식”으로 전환이 일어난다.


사람은 흔히 변화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흔들림에서 온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크게 바꾸는 건

흔들림이 아니라

이 작은 정지의 순간이다.


찰칵—

그 한 번의 멈춤으로

지금까지의 감정들이 재정렬된다.


관찰해 보면,

사람이 가장 크게 변하는 순간은

감정을 흘릴 때가 아니라

감정을 “가두어 둘 때”다.


사각사각이 마음을 깎아내려

결국 흩어지게 했다면,

찰칵은 그 흩어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고정시키는 소리다.


이건 정지이자 기록이고,

닫힘이자 출입구다.


열림과 닫힘이 동시에 가능한 소리.

그만큼 마음은 복잡하고,

그만큼 사람의 변화는 다층적이다.


하루가 끝나갈 때

문득 그 소리가 찾아올 때가 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장면 없이,

그냥 마음의 안쪽에서

하나의 결이 정리되는 순간.


찰칵.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는데

이제 다시 돌아가기 어렵겠다는 감각.

아무도 모르는 사이

오늘이 ‘기록’으로 남았다는 표시.


그 소리는

내일의 장면으로 넘어가기 위한

마지막 닫힘이다.


찰칵—

그곳에서 사람의 다음 장면이 열린다.


찰칵—

그것은 마음이 ‘이제 여길 기억하겠다’

라고 말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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