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게로 방향을 돌리는 순간의 소리

by 박세신

콕.
그건 누가 나를 찌르는 소리가 아니다.
마음이 스스로에게 방향을 돌릴 때,

아주 작은 점 하나가 찍히듯 울리는 소리다.
크지 않다. 귀로 들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마음은 정확히 알아차린다.
“아, 지금이구나.”
방향이 바뀌는 찰나의 미세한 감각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 말이 너무 콕 박혔다.”
그 표현 속에는 누군가의 말, 표정, 행동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하지만, 그 말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다.
콕은 사실, 상대가 나를 건드린 순간이 아니라
그 말을 들은 내가 다시 나를 바라본 순간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를 말할 때,
그 말의 방향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지만,
콕이 울리는 순간은 그 말에 대한 ‘내 반응’이
바깥이 아니라 내 안쪽을 향할 때다.
바로 그때 울리는 아주 작은 소리.


콕.


그 미세한 떨림은 상대 때문에 생기지 않는다.
상대의 말은 단지 계기일 뿐,
진짜 움직임은 내 안에서 일어난다.
어디가 눌렸는지, 왜 거기가 눌렸는지,
나는 무엇을 숨기고 있었는지,
어떤 결이 흔들렸는지—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올 때
콕은 정확하게 울린다.


사람의 마음은 말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닿는 것’이다.
상대의 말이 나에게 닿고,
그 말이 만든 파동이 다시 안쪽으로 돌아와
내가 나에게 닿는 순간—
거기서 콕이 생긴다.


어떤 말은 우연한 순간에 울린다.

별 의미 없어 보이던 한 문장,
“결론을 단정짓지 말라”는 말처럼.
그 말이 '콕'이라고 느껴진 이유는 단순하다.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도, 그 말 자체가 정답이어서도 아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동적으로 ‘그 사람의 말’로 향하지 않는다.
그 말이 내게 왜 이렇게 깊게 들어오는지,
왜 그 말이 뜻밖에 오래 머무는지,

왜 그 순간 마음이 잠시 멈추는지—

그 방향이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틀어질 때

콕은 가장 성명하게 울린다.


“나는 지금 뭘 바라는 걸까?”
“지금 내 마음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지?”
이 질문들이 떠오르는 순간,
외부 자극에서 멀어지고
내 안쪽에서 어떤 점이 눌리는걸 느끼게 된것이다.
그게 바로 콕이다.


콕은 그래서 감정의 반응이 아니다.
방향의 전환이다.
질문의 출발점이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에서
“나는 왜 여기에 반응했을까?”로 바뀌는 순간—
그 작은 회전이 콕을 만든다.


이 콕은 누가 대신 눌러줄 수 없다.
타인의 손가락이 아니라
내 감각이 ‘거기’에 닿아야만 울린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말들을 듣는다.
칭찬, 충고, 조언, 비판, 농담, 가벼운 말, 스쳐가는 말.
대부분은 그냥 흘러간다.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쳐버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말은 꼭 잡아끌듯 나를 멈춰 세운다.


그 말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 말이 내 삶의 방향을 즉시 바꾸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그 말이 나를 어디로 돌려놓는가' 이다.


가끔은 상처가 콕이다.
무심코 들은 말이
내가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결을 정확히 눌러
아프지도 않은데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

그 멈칫에서 시작되는 작은 질문이 있다.


“왜 지금 이 말이 이렇게 크게 들리지?”


그 묻는 행위 자체가 콕이다.


콕은 상처를 남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콕의 목적은 질문이다.
상대를 향한 질문이 아니라
나에게 던지는 질문.


그리고 어떤 날엔
콕이 아주 따뜻하게 찾아온다.
친구의 말 한마디,
누군가의 소소한 시선,
혹은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장면들.


햇빛이 바닥에 눕는 모습 하나에도
가슴 어딘가가 눌릴 때가 있다.
콕.
그건 감동도 아니고
눈물이 나는 벅참도 아니다.
그저
“여기. 바로, 이 부분이야.”
하고 알려주는 감각.


사람의 변화는 대부분
이 콕에서 시작된다.
천둥처럼 무너지는 후회가 아니라,
트라우마처럼 도려내는 고통이 아니라,
아주 작은 방향 전환.


콕.
그리고
그 소리를 놓치지 않은 사람이
천천히 달라진다.


콕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은
그 소리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울림이 아니라
안에서 안쪽으로 돌아오는 울림이라는 점이다.


내 마음이 내 마음에게 닿는 순간.
남의 말이 아니라
내 안쪽 어딘가가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그때 비로소, 다음 장면이 준비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콕—

그 작은 점 하나가
다음의 삶을 열어준다.


콕—
그것은 나에게 돌아오는 소리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