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아이고 삭신아

나도 있어 (feat. 상처)

by 골골


욱신욱신.

추운 요즘, 관절이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 차가운 온도 때문일까. 마음의 흉터도 문득 아려온다. 다 나은 줄 알았던 상처들이 형태만 바꾼 채 숨어 있었는지, 느닷없이 “나 아직 여기 있어” 하듯 다시 욱신거린다.


통증을 따라 여기저기 더듬어 보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고 지금의 아픔과 오래된 기억이 뒤섞여 묘하게 흐려진다. 아픈 건지, 그때의 기억이 반응하는 건지 모호해지는 순간이 문득 찾아온다. 어쩌면 지금의 이 묘한 통증은, 다 아물던 무렵에 남아 있던 기억의 꼬리표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상처는 언제나 위치가 참 이상하다. 몸에 난 상처와 달리, 마음의 상처는 정작 아픈 당사자인 나조차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자리라서, 손끝으로 천천히 더듬어야만 겨우 존재가 느껴진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지만, 마음의 상처는 질긴 섬유처럼 계절이 바뀌어도 묵묵히 제자리에 남아 있다. 잊었다고 생각해도 문득 스멀거리며 다시 올라오고, 아물었다고 믿어도 어느 날 갑자기 톡 하고 터지기도 한다. 어떤 상처는 오래 눌린 자국처럼 마음 한쪽에 남아 있다가, 불쑥 모습을 내밀며 그 존재를 알린다.


유년기 시절부터 나는 작고도 큰 상처가 많았다.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친구를 쫓아가다 넘어져 생긴 무릎 흉터부터, ‘그 말 왜 하셨어요?’라고 묻지 못해 조용히 남은 마음의 상처까지. 수없이 삼킨 말이 마음속 어딘가에 눌어붙어, 시간이 지나도 뗄 수 없는 흔적으로 남곤 했다.


친구들은 누군가를 지키다 생긴 흉터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감내한 고통을 자랑처럼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런 멋진 스토리를 가진 상처가 없었다. 내 상처들은 대체로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모양이었다.


방치하면 곪고, 억지로 도려내면 더 큰 흉이 남곤 했다. 그렇다고 손을 댄다고 해서 금세 나아지는 것도 아니어서, 어떤 상처는 만지기만 해도 아려 오래 머물렀다. 몸의 흉터는 지울 수 있어도, 마음의 흔적은 지울 수 없다는 사실만 또렷이 남았다.


이 아픔을 다스릴 명쾌한 답은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은 늘 비슷해서,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싶은 쪽으로 흘러간다. 나도 그렇다. 이번엔 정말 괜찮아질 거라며 스스로를 달래 보지만, 상처라는 존재는 느닷없이 말을 건넨다. “나 아직 남은 이야기가 있어.” 그럴 때마다 나는 또 허둥대며 방법을 찾는다.


금방 낫지 않더라도 지금보다 덜 아플 수는 없을까, 그 작은 틈을 찾으려 애쓴다.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약이라지만, 정작 아픈 쪽은 그 시간을 버티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그래서 나는 그 아픔을 이해해 보려는 마음 자체가, 아직 스스로를 놓지 않았다는 미약한 신호라고 믿어본다.


상처를 이해하려 애쓰는 일에도 끝이 없다. 아물지 않는 자리 앞에서 아무리 이유를 찾고 달래보아도, 어느 날은 그 노력마저 지쳐 버린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상처를 지긋이 바라보기만 한다. 이불속에 몸을 웅크리고, 오늘만큼은 상처도 나도 잠시 쉬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상처가 아무리 요란하게 신호를 보내도, 오래 함께 지낸 탓인지 이제는 찾아온 상처 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조용히 머물 수 있게 됐다. 오늘은 그저 이불속에서 나란히 누워 있는 날이다.


상처와의 거리는 여전히 서툴지만, 나는 이불과 상처 사이를 오가며 오늘의 온도를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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