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나를 길들인 동물의 왕국

완벽의 반대는 오점이 아니라 평온

by 골골


북북. 방 안 가득 종이 찢기는 소리가 울렸다. 퇴근 후 붙잡고 있던 보고서였다. 반복해서 수정하던 표의 정렬이 아주 미세하게 어긋난 것이 눈에 띄었다. 집중해야 비로소 보이는 차이였지만, 그 틈을 도무지 지나칠 수가 없었다. 셀 높이가 묘하게 들쭉날쭉한 것도 마음에 걸렸고, 제목 행과 내용 행 사이의 어색한 간격도 영 불편했다. 화면으로 여러 번 확인하고도 결국 프린트를 반복하며 수정하다 보니, 책상 위엔 종이가 산처럼 쌓였다. 그 높이만큼 내 안의 답답함도 켜켜이 쌓여 숨이 막히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우리 집 거실에는 늘 ‘동물의 왕국’이 제시간에 흘러나왔고, 아버지는 “봐라, 세상은 약육강식이다”라고 덧붙였다. 그 말은 내 마음속에서 이상한 방식으로 굳었다. ‘약하면 잡아먹힌다. 결함은 약점이고, 약점은 들키면 안 된다.’ 게임에서 지는 건 대수롭지 않았지만, 숙제 글씨가 삐뚤거나 요약 정리에 실수가 있으면 그건 용납되지 않았다. 심지어 인간관계에서도 그랬다. 사람들에게 약점을 들켜 잡아 먹힐까봐 언제든 사주경계를 하며 반격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나는 ‘완벽주의자’라는 이름을 조기 취득했고, 그 이름을 훈장처럼 달고 살았다. 아니, 훈장인 줄 착각한 족쇄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정교해졌다. PPT 한 장을 만들 때 화면을 300%까지 확대해 제목 상자의 모서리를 맞추고, 도형을 0.1mm씩 미세 조정하며 새벽을 넘긴 적도 있다. 정렬을 완벽히 맞추지 않으면 꿈속에서도 정렬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새벽 네 시쯤,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이걸 맞춘다고 인생이 맞춰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걸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 그런데도 손은 계속 정렬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이미 나에게 완벽은 성향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어 있었다. 부족함을 보이면 금방 탈락할 것 같은, 근거 없는 불안이 나를 몰아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완벽’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쳤다가 연관 검색어로 ‘완전’을 보게 됐다. 처음엔 단순한 동의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을 읽는 순간, 둘 사이에 흐르는 온도가 다르게 다가왔다. 완벽은 결함이 없는 상태, 작은 흠 하나에도 금이 가고 마는 유리잔 같은 세계였다. 반면 완전은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진 상태, 흠이 있더라도 제자리에 놓인 것들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세계였다. 완벽이 얇고 날카로운 유리칼 같다면, 완전은 조금 찌그러지고 무늬가 고르지 않아도 온기가 감도는 손작업의 그릇 같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속에서 드라이아이스 연기처럼 ‘쏴아—’ 하고 퍼지는 감각이 일었다. 내가 쌓아 올린 건 완벽이 아니라 불안이었구나. 흠의 유무와 상관없이 필요한 것이 제자리에 있다면 그것이 완전이구나. 그러자 완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 뒤로는 보고서 여백이 0.1pt 어긋나 있어도 일단 저장을 눌러본다. 물론 가끔은 손가락이 저절로 단축키를 눌러 조정하려다 멈칫하지만, 아주 작은 흠이라면 못 본 척 넘어가 보려 한다. 정렬이 조금 삐뚤어진 문서라도 무사히 올라가고, 나조차 허술한 날이어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간다. 완벽은 늘 나를 조이던 벨트 같았는데, 구멍 하나만 느슨하게 풀어도 숨이 한결 쉬어졌다. 어쩌면 완벽의 반대는 ‘오점’이 아니라 ‘평온’인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흠이 있고, 그 흠은 남의 눈에 더 잘 보일 것이다. 그러나 살면서 필요한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나만의 완전한 그릇을 만들고 있다고 믿기에, 흠 하나 없는 반짝이는 상태를 더는 꿈꾸지 않는다. 이제 ‘완벽주의자’라는 오래된 훈장은 서랍 깊숙이 넣어둔다. 그리고 완전을 향한 또 다른 조각을 천천히 찾아보려 한다.

가볍게, 그러나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한 마음으로. 나의 평온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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