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폭 고양이 깡돌이

상식이 가라사대

by 최국환

4) 조폭 고양이 깡돌이



사연인즉 이랬다. 열다섯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시골마을엔 스무 마리 남짓한 길고양이가 있었다. 물론 집에서 주인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고 사는 나는 그 숫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중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장년의 수놈이 대장노릇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마치 어느 조폭 집단처럼 그 수놈의 말은 그저 어길 수 없는 법으로 통했고 그를 어길 시 어김없는 처참한 처벌이 내려진다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어쩌다 막 태어난 수놈 고양이 새끼들은 그 어미가 눈치껏 피난을 시키지 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물어 죽이기까지 한다 하니 그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만했다.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암놈들을 아예 넘보지 못하도록 사전에 취한 계책이라 하니 그나마 조폭들은 순진한 편이었다. 그나마 암놈으로 태어난 새끼 초롱이를 이제까지 끼고 있을 수 있었지만, 청사의 나머지 자식들도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다 한다.

비록 시골 보일러 공장에서 태어나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껏 보내온 나의 사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아주 먼, 이 두 모녀의 사연은 그야말로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비하면 무척이나 어려운 처지임이 분명했다.

늦가을의 아침은 어디 몸이라도 불편한지 천천히도 해를 맞고 있었다. 어둠이 사방에 둘러 있고 그 어둠 속에서 우연히 마주한 두 모녀의 사정을 듣고 나니 그간 이네들에게 그간 품고 있던 복수의 마음마저 야릇한 동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잠깐, 움직이지 마!”

청사의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순간 어둠을 위태롭게 흔들었다. 긴장이 이어졌다. 우연히 이들 모녀와 마주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언덕 위 감나무 밑에서 순간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딸 초롱이를 안은 청사의 몸은 바짝 바닥을 향했고 조심스러운 눈망울엔 의연함마저 보였다.

이윽고 그 움직임은 어둠 속 희미한 모습으로 변하더니 바싹 마른 감잎들을 흩으러 놓는 것이 멀리서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우두머리 녀석이었다. 노랑 줄무늬를 한 녀석의 몸집은 상상을 초월했다. 가끔씩 배변의 흔적을 우리 집 미당에 남기며 사라졌던 이장 집 똥개의 체구를 가진 데다가 주인에게서 얼핏 들었던 깡패인상 그대로였다.

새벽에 출출한 배를 채울 요량인지 방금 잡은 들쥐를 입에 물고 서서히 사라지는 뒷모습은 가히 감당하기 어려운 깡패의 모습 아니던가!

“혹시 들키진 않았겠지? 만에 하나 우두머리가 보았다면 우리 모녀는 이제 끝장인데…….”

청사의 목소리에는 불안한 떨림이 묻어나고 있었다.

“걱정 마! 모르는 눈치였어. 그런데 왜 그렇게 벌벌 떠니?”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청사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사실 우두머리는 초롱이의 아버지야.”

“겁탈당했어 초롱이는 그렇게 태어난 불쌍한 애야.”

“상식이 너희 집에 종종 들러 밥을 얻어먹는 것도 그가 알았고 네 눈빛을 본 순간, 질투를 한 나머지 너희 집 출입도 사실은 영영 허락되지 않았어.”

“그 이후로 우리 둘은 다른 곳으로 떠날까도 생각했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그래서 가능한 한 몸을 숨기고 너희 집도 갈 수가 없었어.”

그 두 모녀를 한참 만에서야 보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이어지는 청사의 하소연은 기가 막혔다. 암컷인 이유로 초롱이는 죽음을 피했다지만 언젠가 잠자리를 같이 할 거라며 튼실하게 키우라는 겁박이 하루가 멀다 하고 청사를 괴롭혔다. 그런 중에 수놈인 집 고양이가 살고 있는 그러니까 우리 집을 우연히 찾은 게 화근이 되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주변 고양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나오지 않는 젖을 대신해 먹이를 찾아 우리 집에 온 것이 그들의 죄명으로 붙여졌다. 더군다나 수놈이 사는 집을 찾았다는 이유로 우두머리 녀석에게 몇 차례에 걸쳐 혹독한 죗값을 치러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청사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주위엔 선명한 상처들이 날카로운 손톱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keyword
월, 수, 금, 일 연재
이전 03화청사, 초롱의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