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가라사대
“그래 그 우두머리 녀석을 깡패, 아니 ‘깡돌’이라 부르자.”
“그들 보다 더하면 더했지 깡돌이 그 녀석은 자기가 낳은 자식들마저 수컷이라는 이유로 죽이지 않나 너희 두 모녀에게도 이런 못된 짓을 저지르다니…….”
그간의 일들을 하얗게 머릿속에서 지우고 호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너희 둘은 내가 책임질게. 우리 바깥주인도 그랬어. 자기가 그리 테러를 당해 방송에 나오고 나서 회사에서 직장폐쇄도 풀었고 모든 일이 원만하게 잘 해결되었대. 비록 자신의 희생이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야말로 날개를 달고 난 셈이 된 거지!”
“내가 너희들을 도울게.”
2년 전 헤어졌던 엄마와 형제들의 어렴풋한 기억이 머릿속을 가득 맴돌았다. 고양이로 태어났다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또한 정을 쌓으며 모여 사는 게 맞는 거였다. 서로 돕고 돌보며 어려움을 헤쳐 이겨나가는 삶은 애당초 잘못된 꿈을 꾼 것이었을까?
오랜 습관이 기억으로 멍든 세상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타성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서 얻을 수 있었던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간 포근했던 집을 뛰쳐나왔고 무언가 다른 길을 찾아 떠난 길에서 이들 모녀를 만난 것이다.
엄마의 포근했던 뺨과 가슴에 기대어 자던 밤, 젖을 빨려고 서로를 밀어대며 깔깔대던 낮과 밤, 그것은 유토피아의 향수에 불과했을까?
마음 놓고 그리 살 수 있는 날이 이 땅에서 아름답게 동트기를 소원하며 나는 이들을 돕기로 작정했다.
차츰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잠시 세상을 비추던 새벽 반달의 흔적도 이미 동산너머로 사라지고, 멀리서 얼굴을 내미는 가을 햇살이 두 모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젠 제법 길도 사방으로 정갈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집을 향해 돌아가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깡돌이의 만행을 잠재울 방안을 찾는 것이 내겐 우선 시급한 문제였다.
힘으로는 될 턱이 없었다. 우선 체구부터가 나와는 상대조차 되지 않을 정도니 무턱대고 덤볐다간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타협이란 있을 수 없는 일, 그렇지 않아도 평소 수놈 집고양이인 내게 억한 마음을 품고 있는 그 녀석에게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나 스스로가 얼굴을 내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해하던 차에 꼬마, 초롱이 녀석이 느닷없이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는 얼마만큼 힘이 세요?”
“엄마만큼 힘이 세나요?”
“우리 엄마는 내 일이라면 어떤 고양이가 달려들어도 물러나지 않는데 아저씨도 그럴 수 있나요.”
아주 맹랑한 녀석이었다. 내가 제 부모라도 되는 양, 눈에 힘을 주고 내 의지를 물어보고 있었다.
“초롱아! 힘으로만 모든 일이 되는 게 아니야.”
“때론 힘보다는 생각하고 의기투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단다.” 우선 대답은 그리 했지만 쉽사리 좋은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햇살은 멀찌감치 자리한 내가 살고 있는 하얀 집 지붕 위로 내리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