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가라사대
멀찌감치 떨어진 동산너머 언덕에 청사, 초롱 두 모녀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먼저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에 두 모녀의 목소리가 실려 전해지고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요.”
“이리 허망하게 당할 줄은 미처 몰랐는데…….”
청사는 눈물로 말을 대신했고
“아저씨 어쩔 수 없었어. 나쁜 아빠가 처음부터 다 보고 있었어. 엄마는 나를 살리려고 아저씨를 배신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힘내 아저씨, 끝까지 버텨 주세요.”
오물거리는 초롱이의 입술은 까맣게 타들어가는 듯 가냘프게 떨리고 있었다. ‘권력’과 ‘욕망’이란 완장을 차지한 우두머리 깡돌이의 모습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한 듯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힘없이 가라앉은 눈망울로 두 모녀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다 아가야. 오늘은 비록 이리되었지만 또 다른 무언가가 너를 지킬 거야. 뭐랄까? 오늘 네 엄마의 마음은 결코 나에 대한 배신이 아닌 언제나 한결같은 너를 향한 사랑이란다.”
“언젠가 나 같은 이가 혹여 네 앞에 나서거든 엄마의 사랑을 먼저 생각하거라. 엄마의 마음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담고…….”
“청사야 어쩔 수 없는 너의 선택을 존중해 혹여, 나의 대한 배신감이 죄로 사무친다면 끝까지 살아남아 아이들에게 알려 주거라.”
“언젠가 한 번은 격을 시련, 당당하게 너희들의 길을 건너라고, 하여 아무도 다녀간 적 없는 무명無名의 흔적으로 당당히 이겨내라고.”
간밤에 피어난 억새 눈썹이 잔잔한 바람에 날리고 있다. 두 모녀의 애절한 속삭임에 세상을 향한 그네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바깥주인의 넋두리가 생각났다.
‘순간 피었다 지는 꽃이라도 우리는 기억하겠다고. 그보다 많은 날들, 세상을 다녀간 그 무엇보다 이 하루를 아름답게 살았음을…….’
또 다른 마음에 담았던 애타는 목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또 다른 무지한 권력으로 다시 한번 상실의 아픔을 겪을 주인 부부였다.
‘상식아, 상식아 어디 있니 ……. 상식아 이 녀석아 날개라도 달았니.’
그래 나는 지금 날고 있다. 저편, 그러니까 나하고 같은 밤을 지내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함께할 태양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