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가라사대
두 모녀를 녀석에게 보내고 집 인근으로 자리를 옮겨 몸을 숨겼다. 주인의 목마른 외침도 일단은 외면하기로 했다. 청사와 초롱이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바깥주인은 정신을 놓은 채 마당을 서성이고 집 주변 풀숲에선 안주인이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튼실한 막대기로 풀숲을 뒤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굵은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
살뜰히 도 나를 보살펴 줬는데, 하루 밤의 쓸데없는 가출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그네들에게 남겼을까. 그냥 다 잊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할 일이 남았기에 그럴 수도 없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당신들이 제게 보여준 정의를 곧 보여주고 품에 안길게요.’
자신도 있었다. 마침 산 중턱쯤 떠오르는 늦가을 따사한 햇살이 그간 한 번도 다녀가지 않은 길모퉁이의 이정표로 찬연하게 내리고 있었다.
잠시 한눈을 팔고 주인의 모습에 정신을 놓은 순간, 등 쪽 목덜미에서 야릇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살짝 움직임이 감지되는가 싶더니 시커먼 그림자가 사정없이 등 뒤를 짓밟고 있었다.
깡돌이 그 녀석이었다.
‘이럴 수는 없는데! 이렇게 갑자기 습격을 당하다니’ ‘청사 초롱이 모녀가 실수라도 했단 말인가’ 그야말로 순간적으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정없이 발톱을 세운 녀석의 두발은 얼굴을 비롯한 몸 구석구석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 시작했다. 목덜미에 날카로운 이빨이 찍히는가 싶더니 저항할 틈조차 주지 않고 공격하는 녀석의 동작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 내가 방관하고 있었구나, 이 녀석은 나완 달리 평생을 야생에서 살았다는 것을…….’
그랬다! 들판에서 태어나 여태껏 숱한 고생을 해오며 죽음을 경험했던 녀석이었다.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싸워 이겨야 했고, 그 보잘것없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소중한 목숨들을 끊어버렸던가!
세상이 뒤집히는 날이 올지라도 그의 행동은 변치 않을 것이다. 깡돌이에겐 자신이 처해있는 지금의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겼으니 말이다.
참으로 슬픈 현실이었다.
목에서 시작한 통증이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내팽겨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려 애썼지만 이미 멀리서 떠오르는 태양조차 그저 희미한 실루엣으로 눈에 비치고 있었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