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푼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
파란 렌즈 그녀가 진상 엄마와 팔짱을 끼며 나타났다. 다시는 안 올 것처럼 굴더니. 뒷이야기가 살벌했던 진상 엄마는 파란 렌즈 그녀에게 다시 붙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평소보다 요란하게 들리는 원두 그라인더, 사람 볼 줄 아는 걸까. 유난히 낯설었다. 건네받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삼키더니, 파란 렌즈 그녀가 누런 송곳니를 자랑했다.
“원두 바뀌었어요? 맛이 좀 다른데?”
“안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손목을 돌리며 아메리카노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냥, 웃겼다. 평소엔 커피를 마시지 않는 그녀였다. 뜬금없이 주문해 놓고 원두가 바뀌었냐니. 옆에서 가식적인 눈웃음을 보이던 진상 엄마는 조금 떨어져 통화 중이었다.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어요?”
“허, 뭐라고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괜찮아요, 이해해요. 결점을 찾고 깎아내리고, 그렇게 본인 우월감 느끼고 자존감 지키고.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이해합니다. 그리고 정훈 어머니, 저희 아메리카노는 처음 주문하신 거예요. 보통 아이스티나 밀크티 드셨잖아요?”
그녀는 당황한 듯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혓바늘이라도 자랑하고 싶었을까? 입을 벌려 볼을 터치하듯 혀를 굴리는 모양새가 어찌나 볼품없던지, 알까기처럼 엄지 검지의 위력으로 얼음 하나 톡! 입안에 넣어주는 상상으로 웃음이 절로 나왔다.
‘꺼져라.’
“사람 봐가면서 장사하지 마세요, 사장님.” 그녀의 꾹 눌러 담은 분노가 꾸역꾸역 새어 나오듯 상체가 금세 부풀었다.
“믿을 사람이나 믿으세요, 정훈 어머니. 카페 장사하면서 엄마들 유형이 보이더라고요? 뒷말이 많아요. 어찌나 다양한 사건들이 많은지. 재밌어요, 이런 일 저런 일. 저는 다 이해하며 장사합니다.” 나는 통화를 하는 진상 엄마에게 시선을 옮기며 동문서답으로 맞섰다. 분명, 눈치챈 표정이었다.
그녀는 짧고 굵은 한숨을 뱉으며 시선은 땅으로 향했다. 이내 통화 중이던 진상 엄마에게 쏘아봤다. 인사도 없이 고개를 휙 돌려 보폭을 넓혔다.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진상 엄마는 급하게 따라나섰다.
‘니들은 오든 말든 선택사항이지만, 나는 손님을 골라 받을 수 없잖아?’
보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봐야 한다면, 나야말로 솔직하게 맞서야지. 기득권 세력, 이제 현명하게 흩어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꼭 똘똘 뭉쳐 타인의 평판을 깎아내려야만 보람을 느끼나? 하긴, 그들이 사는 방식이라면 존중해야지. 나야 뭐, 가짜 우월감을 진짜로 여기는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나만의 생존 방식도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맘 카페를 통해 동네 곳곳을 훑었다. 댓글 창이 활발한 곳은 이웃들의 생각들도 다양했다. 새로 고침을 통해 신축 아파트의 문의 글을 확인했다. 굳이, 서울에서 여기까지 왜 오려는지. 할 말은 해야겠으니 타다다닥, 키보드를 괴롭혔다.
티스푼: “아는 지인이 거기 사는데 층간 소음 심하대요~ 아줌마들 말도 많고, 동네 곳곳에 쓰레기들 천지에~ 아주 여러모로 최악이에요~ 최악!!”
내가 너무 비겁했을까? 나는 신축 아파트의 실상을 그대로 적었을 뿐이다. 물론, 사랑맘이라는 닉네임으로 아이를 키우며 살기 좋다는 좋은 말도 있었다. 그래, 누군가 살기 안 좋으면 누군가는 살기 좋아야지. 어디 이 동네만 그러겠나.
다음날, 정민시 그녀가 찾아왔다.
“집에 커피 머신이 있어도 가끔은 나와서 마셔야 맛있는 것 같아요~ 사장님네 커피가 제 취향이기도 하고요. 산미를 좋아해서.” 웃으며 건네는 다정함이 좋았다. 듣기 좋은 말, 그녀가 어딘가 모르게 다른 엄마들과 다르게 느껴진 이유는, 바로 그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저도 산미 있는 게 좋아요~ 손님들은 호불호가 있는 것 같지만요~!”
커피를 건넸다. 그녀는 받아 들고 지정석으로 향했다. 카페로 오는 사람, 그리고 가는 사람. 덧없는 인간관계는 더 이상 집착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좋은 대로, 편한 대로 하면 되는 거였다. 정민시 그녀도 그랬다. 그녀와 나는 적당한 거리로 오가는 소통, 스몰토크만으로 충분했다.
오랜만에 들린 그녀에게 서비스로 떠먹는 컵케이크를 건넸다.
“어머. 감사해요, 사장님.” 그녀는 밝게 웃어 보였다. 나갈 때 맛별로 포장해 달라고 했다. 가는 게 있으니 오는 게 있는 걸까. 그녀는 역시나 센스가 있었다. 이런 손님만 받고 싶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건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남자 손님이 찾아왔다. 근래에 자주 보는 얼굴, 늘 커피 세 잔을 주문했다.
“항상 가져가시는 걸로 해드려요~?” 웃으며 말했다.
“넵~!”
키도 훤칠하고 듬직해 보였다. 커피를 건넸다. 그가 사라질 때까지 시선도 따라갔다. 맞은편 편의점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