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민과 새로운 출발
어느새 기말고사(Final Exam)를 앞두고 있었다. 학교 이메일로 어드바이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음 학기부터 정규 수업을 들어야 하니 상담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Advising'이라는 단어 하나에 괜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잘못한 건 없는데도, 괜히 긴장됐다.
나는 다음 날 오후 1시로 예약을 잡아두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마지막 시험을 준비했다‘무슨 질문을 할까. 어떤 대답을 해야 하지…’
문장 하나하나를 상상하며 머릿속으로 연습했다.
다음 날, 점심을 먹고 상담실 문을 열었다. 무표정한 얼굴의 어드바이저는 다짜고짜 물었다.
“Do you know what you want to study? And if you want to move to another school, do you have one in mind?”
(혹시 공부하고 싶은 전공이 정해지셨을까요? 다른 학교로 편입을 고려하고 계시다면 마음에 두신 학교가 있으신가요?)
그런데 막상 질문을 받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드바이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Let’s do the math test first. Then we’ll talk again. Think about your major and job for now, alright?”
(먼저 수학 시험부터 보시죠. 그 다음에 다시 이야기 나누면 될 것 같아요. 지금은 전공과 진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괜찮으시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상담실을 나섰다.
그날 밤,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는 뭘 좋아하지?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수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막막한 마음에,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 둘이 있는 단톡방을 열었다.
“야, 뭐하냐?”
짧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오랜만이라 반가웠지만, 대화를 이어가다 결국 고민을 털어놨다.
“나, 전공 정하래. 근데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순간, 전화기 너머로 정적이 흘렀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라는 이상한 위로가 들었다.
그때, 친구 하나가 조용히 말했다.
“야, 미국까지 간 놈이 아직도 전공을 못 정했냐?”
나는 욱해서 반사적으로 말했다.
“여기 노스캐롤라이나 시골이라 몰라서 그래!”
친구들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뉴욕이나 필라델피아 같은 데 한 번 가보지 그래. 혹시 마음이 달라질지도 모르잖아.”
‘그래, 대도시 간다고 사람이 바뀌겠어?’ 싶었지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며칠 뒤, 수학 시험 날이 되었다.
공부도 준비도 없이 시험장에 도착했다.
직원이 10분만 기다려달라고 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때, 옆에 앉은 스페인어권 학생이 계속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었다.
옆눈으로 슬쩍 보니, 단순한 방정식 문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설명해줬고, 그 학생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I couldn’t figure this out for a whole week!”
(일주일 동안 붙잡고 있었는데도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며 문제 풀이 방법을 공유했다.
그때 미소가 자연스레 피어났다.
별것 아닌 문제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게 큰 벽이었다는 사실.
그걸 넘어주는 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뿌듯했다.
시험은 예상보다 1시간이나 빨리 끝났고, 결과는 최고 레벨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이상한 결론이 떠올랐다.
‘내가 수학을 잘하는 건 아닌데,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이과 쪽이 더 유리할지도 몰라.’
한국에서는 상위 10% 안에 들어야 '수학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여기선 상위 30%만 돼도 You’re so good at math (수학 정말 잘하시네요) 소리를 듣는다.
나에겐 그게, 작지만 분명한 가능성처럼 느껴졌다.
나는 시험 결과지를 들고 어드바이저를 다시 찾아갔다.
“I’m not sure about my major yet, but I want to study something in science or engineering. Can you help me with that?”
(아직 전공은 확실히 정하지 못했지만, 과학이나 공학 계열로 공부하고 싶어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어드바이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Associate in Science (A.S.) 편입 프로그램을 설명해주었다.
그날 밤, 한국에 있는 친구 둘이 다시 그룹 통화를 걸어왔다.
내 상황을 듣고는 한 명이 물었다.
“조금 있으면 방학인데, 뉴욕이나 다른 큰 도시 한 번 가볼 거야?”
솔직히 계획은 없었지만, 괜히 자존심에 “그래, 계획하고 있어”라고 답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그럼 우리도 휴학하고 군대 가기 전에 여행 가자!”며 흥분했다.
“왜?”라고 묻자, 둘 다 허세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스무 살 초반에, 한 번쯤은 큰 세상 봐야지. 그래야 나중에 후회 안 하지.”
그리며 각자 가고 싶은 도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고민도 하나둘 흘러나왔다. 분명 여행 얘기로 시작했던 대화였는데, 결국 우리 셋 모두 비슷한 걱정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득, 어릴 때 박사학위까지 마쳤다는 누군가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예전엔 단순히 "참 똑똑하구나" 했지만,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그 나이에, 그렇게 많은 걸 포기하면서까지 몰입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것. 그게 진짜 재능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치도록 좋아하는 걸 찾는 능력.’ 어쩌면 그게 가장 부러운 재능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나는 편입도 해야 하고, 외로운 학교생활도 이겨내야 한다. 졸업이 가까워지면 인턴십 자리를 찾아 수십 곳에 이력서를 넣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애쓰고, 비자 문제까지 해결해야 한다.
그 모든 게 유학생이라는 타이틀 아래, 결국 내가 마주하게 될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모든 여정 안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 겪게 될 경험, 그리고 그 속에서 나도 모르게 쌓여가는 삶의 지혜와 잊을 수 없는 추억들…
그게 어쩌면 이 미국 생활의 진짜 재미 아닐까 싶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계획을 세우다 보니, 어느새 여행 일정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여행은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특권"이라며,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고민해보겠다"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속마음은 조금 달랐다.
사실은 편입, 휴학 그리고 군대, 그 현실을 잠시 미루고 싶은 마음. 새롭고 낯선 경험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
그런 회피와 쉼의 욕구가 더 컸다는 걸, 우리 셋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각자의 목표와 불안, 기대와 회피를 품은 채 동부 여행을 결심했다.
노스캐롤라이나를 출발해 워싱턴 D.C.,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보스턴을 지나 캐나다 토론토와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무려 한 달간의 여정이었다.
동선을 맞춰 미리 메가버스(Mega Bus) 표를 예약했다.
물론 돈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표는 단돈 5달러짜리였다. 등받이도 거의 움직이지 않는 딱딱한 90도 의자에 앉아 6시간씩 이동해야 했지만, 우리에겐 그 불편함마저도 젊으니까 가능한 일이라며 웃었다.
우리는 각자의 불안과 꿈, 아직 꺼내지 못한 감정들까지 배낭에 꾹 눌러 담고,
그렇게 패기 있게 버스에 올랐다.
앞으로 어떤 날들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 채 말이다.
부족한 글이었지만, 제 이야기에 시간을 내어 주시고, 조용히 함께 걸어와 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