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아낸 것들과 남겨진 것들에 대하여
대기의 빛이 반쯤 사라지고 반쯤 빛날 무렵까지
온갖 인사와 온갖 감사함을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보낸다.
지나가는 식민지 태생의 피가 흐르는 듯, 결코 똑같으나 똑같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려 5월의 연휴에 인산인해가 된 사람들 사이에서 노동을 하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보살핌의 시기에 그동안 가꾼 풀밭을 드리우고, 수많은 눈과 눈 사이를 정해진 시간 옹기종기 모여 식탁에 앉아 식사를 즐기는 그들을 맞이하고 배웅했다.
부드러운 천들의 조각상은 없으나
얼룩진 천을
하얀 새것으로 갈고
누군가의 입술자국이 뭍은
지문이 가득한 유리잔을 닦고
손은 심장을 대신하던
낮의 시간과 밤의 절반을 보낸다.
머리털에 색종이 조각들을 장식하진 않았으나
마치 자비로운 술이 달린 턱받침을 씌우고
광대처럼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듯
그렇게 서막은 끝이 났다.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던 지난 며칠에 대한 현실적 보답일까.
일을 마치고 나에게로 돌아오는 시간 정말 비가 내린다.
무엇인가 해냈다는 사실을 도피처로 삼고 살진 않지만,
모순을 즐기고
고행을 겪고 싶지 않지만
종교가 없는 나에게도
십자가의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인지
여전히 고뇌가 있는 것처럼
하루에 지독한 고뇌도 자리한 것이 사실이다.
들쑥날쑥한 풀처럼
자리한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강렬한 불빛으로 시작해
잠시동의 적막과
이제는
천둥소리로 이어지는 번개가 가까이서
들렸다가
멀어지면서
나를 안심시킨다.
묵시록은 지나간 듯 느껴지는
휴식시간에도
나는 사람들에 섞여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꺼운 종이를 급히 넘기는 소리처럼
늘 똑같은 직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더 많은 생각을 했던
나를 돌이켜 본다.
생각하고 느끼는 내 능력은 많은 부분
사람에게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명료함으로 내 인생이 겉보기에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마치 손님들의 이야기를 일부러 엿들으며 식탁보를 청소하는 무심한 걸레질에 쓸려, 현실의 빵 껍질과 부스러기들과 함께 쓰레받기에 버려진 것처럼. 똑같은 운명을 지닌 다른 사물들과 차이가 있다면, 쓰레받기 속으로 떨어진다는 특권뿐일 것이다. 그것을 사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의 잔해와 난해함의 부산물들이 가득 들어 있는 곳.
육신에 남은 먼지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가지 않고
욕실을 향해 벌거벗은 몸을 씻기면서도
어떤 별들 사이로 어떤 일이 이어질지는
상상조차 못 하는 것처럼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살을 그대로 받아 쓴다.
밤이 오면
딱히 해야 할 일도 없고
생각해야 할 일도 강요받지 않으나
이 하얀 종이 위에 나의 이상을 적어보기도 하고
낙서 아닌 단어가 되어 살아나는 숨들을 새겨보다가
모든 것을
모든 방법으로 느끼기 위해
감정과 함께 생각하고
생각과 함께 느낄 줄 알기에
겉멋을 부리며
고통을 누리는 중인지도 모를 글을 쓴다.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이 모든 이상은
이 밤에 끝날 것을 안다.
본능적인 힘이 쌓인
쓰레기 더미임에도 불구하고
태양 아래 밝았다가도
어두운 창백한 색조로
빛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밤이다.
홀로 앉은
비와 밤의 식탁사이에서
그리고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인 인간이라는 존재.
누구도 될 수 없는
나를 통해 작용하는 모든 것을
느껴본다.
비의 밧줄 위로
소리 없이 느리게 걸어서
도착하게 될 그곳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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