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의 새로운 향기가 피어오르다
당신은 선동의 힘을 무시하고 있군요. 그 선동이라는 것은 과히 대단한 파괴력을 지닌 것이었죠. 선동은 논리가 아니랍니다. 인간의 감정을 먼저 겨냥하는 일이었죠.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불안과 피해의식 같은 인간만이 가진 원초적인 감정을 건드는 일이었습니다. 선동이라는 것은 거짓에 불과한 것이었죠. 선동은 사실이 부족해도 느낌이 강하면 힘을 얻게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뉘른베르크 집회에서 보았던 히틀러는 선동의 집약체였습니다. 그는 감정으로 호소하며 군중의 열광을 극대화시키고 있었죠. 그것은 마치 화려한 극장에서 보았던 한 편의 드라마틱한 대형 오페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아리아는 많은 사람들의 귀에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 독일은 다시 위대한 자리를 되찾아야 하며, 그 길을 막는 세력에 맞서 국민 전체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 민족의 부흥이 자연스럽게 되리라 약속하지 않는다. 국민 스스로가 전력을 바쳐야 한다! 독일 국민의 미래는 우리 독일인들!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근면함과 결단력! 자긍심과 인내심으로! 그때서야 우리는 독일을 일으킨 선조들과 같은 위치에 설 수 있다! 이제! 국민들이여! 감연히 일어나서 폭풍을 일으켜라! "
" 총통! 우리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도시를 삼킬듯한 함성과 함께 수많은 군중들의 손이 히틀러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히틀러를 향한 충성의 목소리가 시작된 것이었죠. 제가 바라본 선동의 힘이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민족주의적 열망은 너무나 쉽게도 독일인의 지쳐있던 마음에 분노의 불을 집히기 충분했으니까요. 경제와 수많은 정당의 시끄럽던 목소리를 한 번에 잠재우던 것이었죠. 히틀러는 사람들의 절망감을 이용해 독일의 부흥과 국가적 자손심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인의 마음에 분노의 불을 집혔습니다. 히틀러의 약속은 대중의 분노를 결집시켰습니다. 아직도 기억하는 그의 강렬했던 억양과 감정에서 나오는 것만 같은 강력한 그의 제스처는 군중을 앞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시간 속에 점점 독일인의 구세주로 바뀌고 있었지요. 그의 연설은 여기저기 도시에서 계속되어 나갔습니다. 라디오와 영화로 만들어져 그의 목소리는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유대인의 음모론과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반복해 대중을 쇠뇌하는 것에 불과했지요. 하지만 그 선동의 파급력이라는 것은 대중을 쉽게 물들여갔습니다. 반복과 극단적인 언어. 인간만이 소리 낼 수 있는 그 언어라는 것을 갖고 말이지요.
절멸(Ertötung)과 최종해결(Endlösung)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습니다. 그가 등장하는 집회의 모든 곳에서 청중의 공포화와 분노를 자극했습니다. 선동은 악을 미덕처럼 위장시키는 것이었지요. 가장 무서운 지점은 그것이 옳다는 확신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저는 지켜보았습니다. 그 확신은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대의라고 착각하게 만들기 시작했지요. 역사 속 이 참극은 이런 방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선동은 결국 권력이 된다는 것을 히틀러가 온 세상에 보여준 것이었지요. 사람의 마음과 집단의 방향을 잡는 능력은 곧 권력이었습니다. 인간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것이었지요. 히틀러는 국민을 국가의 신체처럼 묘사했으며 개인이 아니라 민족의 의지가 우선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순수한 민족 혈통과 그들을 파괴하는 적이 유대인이라는 음모론이 그 시작이었지요. 히틀러의 연설의 위험한 힘은 내용의 위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잘 짜인 인간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적인 기술에 불과했으니까요. 한 편의 역사적 대본에 불과한 것이었으니까요. 피해자의 서사로 사람의 불안과 분노를 자극하고, 민족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흡수하며, 적의 단순화로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감정의 리듬으로 집단의 황홀감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그렇게 히틀러는 독일인들의 우상이 되어갔습니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요.
보이지 않는 목소리와 군중을 움직이는 그림자 같은 존재, 어둠 뒤에 연설가들은 당신들이 보지 못하는 그 존재들과 늘 함께 있었다는 것을 당신은 모를 겁니다. 어쩌면 저도 그중 하나였을 수도 있겠군요. 당신은 어쩌면 이 선동이라는 것을 철학적 주제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본능적인 그림자.
나는 이것을 당신이 갖고 있는 선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선동이란 특별한 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시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태초부터 인간 안에 있었던 충동의 언어는 선동이였습니다. 누군가는 움직이고, 누군가는 움직여지며, 그 둘이 맞닿는 순간 역사의 방향이 수 비게 비틀어져 버리는 것처럼요. 인간들은 스스로를 이성적인 존재라고 여기지만 진짜 인간은 논리보다 감정에 먼저 반응하는 생명체입니다.
두려움. 분노. 결핍. 소속감의 욕구. 어쩌면 이것이 오랜 시간 동안 인간만이 갖고 있는 신의 선물과도 같은 감정이라는 것이지요. 사고는 늘 그 감정에 이유를 붙이기 위해 뒤따라갔죠. 선동은 늘 인간의 불안함을 겨냥했습니다. 외로움과 무력감, 사회적 좌절, 분노의 누적.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일수록 어떤 목소리를 찾게 되는 법이라는 것을 인간은 알고 이용하며 살아갔죠.
자신을 대신해 욕해주는 사람, 세상을 이해해 주는 사람. 문제를 대신 규정해 주는 사람들을 당신 스스로가 찾게 되는 날은 살아가며 언제나 있었을 겁니다. 그 목소리가 바로 선동의 씨앗이 된다는 걸 모르고 말이죠.
한 사람은 깊고 복잡하지만, 오히려 군중은 얕고 단순하답니다. 한 사람의 고민 따위는 깊어 보이지만, 군중 속에서는 흐려지고 우리 편의 감정으로 번지고, 그것은 곧 진실이 돼버리는 것이죠. 그렇게 히틀러는 군중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전쟁이 없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선동을 작동하는 스위치를 갖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선과 악을 말합니다. 인간은 늘 이렇게 시작했지요. 우리와 그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이 단순한 구조는 감정의 방향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기에 너무나 효과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는 역사와 지금 당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미 감정의 방향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한 머리들은 굴러가고 있을 테니까 말이죠.
당신이 아는 선동가는 사실 악이 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당신에게 다가오는 선동가가 있다면 그는 그저 당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가장 먼저 알아챈 자일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말이라고 생각하겠지요. 말은 다만 그 표면을 스치고 지나갈 뿐입니다. 그 아래서 흔들리는 것을 인간은 볼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로 저 같은 존재들이 있는 이유겠지요.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친숙한 감정에 이끌린 당신을 나는 유혹하는 존재니까요.
군중이 모인 합성들이 라디오를 뚫고 나오려는 듯한 볼륨이 높여진 마녀의 응접실에는 르네와 그레타가 히틀러의 연설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마녀의 입에는 창가에서 스며드는 햇살에 엉키는 담배연기가 가득 차 있었지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군중이 내는 반복되는 구호를 그녀도 함께 외치고 있었습니다. 선동은 겨울 같은 것이었습니다. 부헨발트 수용소의 겨울은 유난히도 길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르네의 머리카락은 조금씩 자라 어느새 단발머리 정도의 길이가 되었지요.
마녀는 르네의 듬성듬성 잘린 머리가 보기 싫다며 머리를 길러도 좋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쓰지 않는 이상한 색깔의 스카프를 두르라고 던져준 이후부터였죠. 르네는 마녀의 성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다행이었습니다. 의외로 마녀는 르네를 좋아하는 듯 보였으니까요. 르네를 향한 마녀의 구박은 점점 익숙함 정도로 이어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마녀는 르네의 보금자리를 바꿔주었습니다. 중요한 정치범이 수용되어 있는 감방 같은 것이었지요. 그곳에는 매일 빈방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작은 공간 침대하나가 놓인 달빛을 바라볼 수도 있는 아직은 차가운 독방이었습니다. 르네가 마녀의 성에 자리하면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르네의 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마녀가 먹고 남은 음식은 그녀의 허기진 모든 것을 채워줬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르네의 마른 육체는 원래 형태로 채워져 가고 있었고, 그녀의 아름답던 피부는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으니까요. 마녀의 행동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잘 된 일이었을까요?
" 르네! 르네!"
" 네. 부르셨어요."
" 오늘 점심 메뉴는 뭐야?"
" 좋아하시는 스테이크를 준비하고 있어요."
" 음. 역시. 너는 나의 마음을 잘 알고 있구나. 먹고 싶었는데. 알았어. 일 봐."
히틀러의 연설방송이 끝나자 마녀는 천천히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테라스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헨발트의 수용소를 그녀는 마치, 자신이 소유한 광활한 공원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 들판에는 자유롭게 뛰어 다니지도, 먹지도 못하고 있는, 자신의 가축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있는 곳이었죠. 그곳은 마녀의 소유물 같은 곳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성향이 돼 간 것은 아마도 그녀가 유산을 경험했을 때부터였을 겁니다. 아기를 잃고 나서부터 그녀의 이상한 행동은 서슴없이 수용소에 자리한 수감자들에게 행해졌으니까요. 매일 아침을 먹고 나면 그녀는 말을 타고 수용소로 향했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늘 채찍이 들려있었죠. 마녀의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더 잔인하고 어이없게 사람을 죽였습니다. 새로운 장식품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줄 세워 가장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사람을 골라 그들의 피부를 벗겼지요. 시체들의 피부를 잘라 그녀는 자신이 쓸 장갑과 책 덮개를 만들었습니다.
수용소에 나치들도 그녀의 선동에 물들어갔습니다. 마녀의 선동은 모두가 보기 좋은 구경거리였으니까요. 마녀의 행동은 나치에게도 자극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권력은 남편을 뛰어넘어 있었죠. 하루에도 수 십 명이 그녀의 손에 죽어갔습니다. 이유가 없는, 그녀의 기분에 따라 사라지는 영혼들은 숨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죽어나갔으니까요. 더 잔인하게 죽어가는 유대인들을 보며 수용소에 자리한 나치 병사, 그들도 그녀를 통해 배우게 되었으니까요.
마녀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니 그녀의 머리는 다른 인간과는 다른 전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마치 부헨발트의 쳐진 전기철조망 같은 단순한 구조물처럼 그녀의 기억에 자리하고 있는 대부분은 분노와 경계였습니다. 그녀의 머리 작은 한 부분엔 그녀가 잃은 여동생이 있었지요. 놀랍게도 그 여동생의 얼굴이 르네와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전 생각했습니다. 르네가 적어도 이 여자의 손에 죽을 일이 없을 거란 것을 말이죠. 그녀는 르네를 본 첫날부터 잊고 있던 영혼이 되어버린 여동생을 떠올리고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르네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가 이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음. 르네 맛이 좋은데. 너도 먹어봐. 괜찮으니 먹어봐!"
" 감사해요. "
" 너! 그레타 언제 아기가 나온다고 했지?"
" 다음 달이라고 했어요. 의사가..."
"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구나. 드디어 끝나게 생겼네. 널 안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지. 알겠어. 의사에게 이야기는 해놓을게."
마녀의 목소리 사이로 르네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레타가 죽는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습니다. 아기를 낳으면 그레타는 죽게 되는 거라는 말인지, 둘 다 죽일 거란 말인지 르네는 헷갈렸습니다. 그레타의 눈을 바라보며 눈짓을 했지만, 그레타의 눈은 이미 바닥을 향해 떨어져 있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말이죠. 마녀가 옷을 차려입고 수용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나서야 르네와 그레타의 이야기는 시작될 수 었었답니다.
" 그레타. 무슨 말이에요. 아기를 낳으면 죽인다는 말인가요? 당신이 죽는다는 말인가요? "
" 아니. 아이는 살고, 나를 죽인다는 말이야. 나는 그녀에게 치욕이었거든."
" 말도 안 돼. 그렇게 그레타를 미워하는 건가요. 자신을 대신해 자식을 낳아주는 건데도요?"
" 그건 어쩔 수 없는 운명 같은 거였단다. 르네. 내가 원해서 얻은 아이가 아니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그녀에게 나는 치욕일 수밖에 없는 거야. 그녀의 남편이 아이를 원했을 때부터 나를 겁탈하고 생겨버린 아이의 존재를 남편이 그녀에게 말했을 때부터 이미 정해진 이야기였어."
" 아니에요.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레타. 분명 남편은 그레타를 죽이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
" 다른 곳으로 보내주겠다는 약속은 받았지만, 이곳에서 그녀가 모르는 이야기는 없단다. 그건 저 여자가 살아있는 한 불가능한 일이란 걸, 너도 이제는 알고 있을 거야. 그녀는 나를 살리지 않아 르네. 너무 나 때문에 마음 쓸 거 없어."
르네의 눈동자엔 작은 호수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레타가 지난 몇 달 동안 자신을 챙겨준 것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에서는 무언가라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르네의 향기가 순간 달라졌던 건 그때였습니다. 르네는 마음속에 그레타를 살려보겠다는 의지가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방법이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며 머릿속에는 온통 착한 그레타를 살리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레타의 배는 어느새 움직이기가 힘들 만큼의 크기로 커져있었습니다. 르네는 아침나절 들었던 히틀러의 연설방송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작은 도전을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은 시작해서는 안될 선동이라는 것이었지요. 독일인이 유대인을 죽이는 것처럼, 유대인들이 독일인을 살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시절이었으니까요. 저는 르네에게 다가가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 꿈도 꾸지 마! 르네! 너무 위험해.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생각도 하지 마."
아무리 노력해 봤자, 여전히 르네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것이 점점 더 쉽지 않은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르네와의 계약을 파기해야만 하지만 그 대가에는 르네의 영혼이 필요한 것이었지요. 이 길을 가도, 저 길을 가도, 그것은 르네를 잃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를 지하의 불구덩이에 넣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이며, 지금의 르네의 목숨을 살리는 일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슬퍼졌습니다. 바라만 불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르네의 머리에는 수많은 불꽃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그녀의 향기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알 수 없는 향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