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마녀와 다가오는 두려움, 하인리히에게 보내는 그레타의 편지
인간에게는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벗어나려는 힘이 존재하지요. 폭력, 학대, 노예적 조건에 갇힌 사람에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선택권'이랍니다. 자신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오는 절망감은 푸르른 안시호수의 깊이보다 더 깊고, 때론 메마른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레타를 바라보면 그랬습니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고 명령에 복종해야 했지요. 억압이 마치 그녀의 삶의 정당화된 것처럼 그녀 또한 자신을 잃어가며 부헨발트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포기했던 것입니다. 죽음보다 억압이 더 두렵다고 느낄 때 인간이 꿈꾸게 되는 것은 탈출이라는 출구를 찾는 것이랍니다. 그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르네와 그레타의 심장에서 나는 향기는 바로 탈출 본능이라는 것이었지요. 그건 희망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미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요. 당신도 혹시 탈출을 꿈꾸고 있나요? 그렇다면 저는 그 선택을 말리고 싶군요. 그 탈출이 부르는 참혹한 결과는 늘 비참한 것이었으니까요.
비명 한 번 질러 보지 못한 그레타의 밤은 길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밤까지 그레타에게는 아무 일이 생기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레타는 조용히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는 얌전하게 잠들어 있었고, 그 작은 손끝은 살아 있는 꽃잎처럼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문이 움직였습니다. 마녀가 돌아온 것이었죠. 그레타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밤의 심장처럼 그 안에서 벌어진 감정은 불길이 되어 일어나고 있었지요. 두려움이 아니라, 부헨발트 밤하늘에 떠 있는 날카로운 초승달 같은 음산한 결심이었습니다.
" 네가 여길 찾을 줄 알았지." 마녀가 속삭였습니다. "하지만 넌 너무 약해. 그레타. 네 몸은 이미 깨져버렸잖아. 너 같은 게 무얼 할 수 있겠니?" 처참한 몰골의 그레타를 바라보며 비웃기라도 하듯 마녀의 어깨는 조금씩 들썩거리기 시작하며 그녀를 향한 조롱을 보내고 있었지요.
" 내 몸은 깨진 게 아니야! 너는 경험하지 못한 출산이라는 걸 한 것뿐이야." 잠시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어가는 그레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붉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마녀의 얼굴이 점점 얼어붙어 가고 있었지요. 그레타는 더 이상 예전의 그레타가 아니었습니다. 출산의 순간에 체험한 경계의 파열은 그 극한의 고통 속에서 그녀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힘을 본 것이었죠. 잔혹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마음이 몸을 떠나는 현상, 깊숙한 곳에서 여기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또 다른 그레타는 긴 시간이 지나 드디어 탈출의 씨앗을 뿌리려 하고 있었지요. 그 힘은 마녀의 오래된 마법보다 깊고 더 생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레타는 그 힘으로 성에 깃든 어둠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자기 보존 욕구라는 것은 심장이 빨라지고 주변을 스캔하고 작은 틈만 생겨도 위험보다 가능성을 먼저 보는 시야를 갖게 하는 것이었지요. 그것은 인간의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녀는 처음으로 뒤로 물러서고 있었습니다. 그레타는 점점 마녀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레타가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마녀의 힘은 성과 함께 갈라지기 시작하고 있었지요. 그녀의 향기에서는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마녀도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려움이었지요. 그레타의 붉게 물든 린넨 원피스에서는 강렬한 붉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성의 가장 깊은 복도에서 두 사람의 숨이 뜨겁게 뒤엉켰습니다. 마녀는 손짓 하나로 공기를 흔들었고 그레타는 그 흔들림을 감각으로 느끼며 몸을 낮추었지요. 둘의 싸움은 마치 오래된 전쟁 같았습니다. 상실을 지키려는 자와 새로운 세계를 지키려는 자의 싸움처럼 보였지요. 그레타의 그림자가 벽에 세 번 흔들렸을 때 마녀는 첫 공격을 날렸습니다. 손끝에서 발화한 짧은 음파가 벽을 갈라 뜨리며 그레타의 어깨를 스쳤습니다. 그레타는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지요. 출산으로 찢어진 상처를 손으로 감싸며 더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힘으로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 넌 내 아이를 훔쳤어! 그리고 내 삶까지! " 그레타는 숨을 몰아쉬며 마녀의 손에 든 총을 뺏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 넌 그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어. 더러운 년." 마녀의 음성이 덜컹거리는 철문처럼 울렸습니다. "이거 놔! 이 더러운 년아. 너 같은 건 이미 죽었어야 했어."
두 여자는 서로를 향해 뛰어들었습니다.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피 냄새가 공기 안에 흩어졌고, 촛불은 둘의 싸움에 따라 길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마녀의 손목을 붙잡은 그레타는 마지막 힘을 짜내고 있었습니다. 마녀의 손바닥에서 아직은 달궈져 있는 뜨거운 권총이 떨어지자 마녀의 피부에서는 타들어가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마녀의 피가 마룻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레타의 손에는 깨진 도자기의 날카로운 조각이 들려 있었지요. 그레타의 손바닥에는 또 다른 운명의 금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대가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문이 천천히 무겁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 안에서는 결코 들리지 않던 낯선 신발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있었지요.
"일제 코흐! 멈춰! " 아주 낮고, 마치 땅속에 오래 묵힌 단단하고 큰 돌 같은 음성, 카를이었습니다. 마녀는 뒤를 돌아보지도 못한 채 석상처럼 굳어버렸지요. 그레타 조차 숨을 멈췄습니다. 문틈 사이로 걸어 나온 이는 카를이었습니다. 구스타프의 연락을 받은 마녀의 남편이 돌아온 것이었지요. 그의 얼굴은 태연함이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녀는 그를 본 순간 태연함을 잃었고 마녀의 분노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지요.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일제! 감히 내 아이를 이런 식으로 취급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일제! " 그의 목소리는 마녀의 심장에만 들리는 것처럼 떨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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