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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침묵하는 사람의 진짜 언어

회사라는 공간이 만들어낸 조용한 사람

by 구시안


회사에서 침묵하는 사람은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전혀 달팽이관에 문제가 없으며, 달팽이관에 때려 박는 모든 사람의 말을 다 듣고 있다. 그리고 입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제 위치에 잘 자리하고 있다.



그는 말을 하지 않는 법을 배운 사람에 가깝다.

회의실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메신저에서 짧은 답을 보내며, 불필요한 의견을 덧붙이지 않는 그 태도는 무관심이 아니라 계산의 결과다. 회사라는 공간은 말이 많을수록 안전해지는 곳이 아니라, 말의 무게를 잘못 재는 순간 위험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은 종종 가장 현실적인 언어가 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살아남고, 침묵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 회사에서 침묵하는 사람의 진짜 언어는 바로 그 선택의 연속이다.



심리적으로 회사에서 침묵하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누구보다 상황을 예민하게 읽는다. 누가 어떤 말을 하면 분위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의견이 환영받고 어떤 말이 기록으로 남아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그는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그 생각 끝에 침묵을 고른다. 말은 휘발되지만 평가는 남고, 평가는 결국 사람의 자리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 일찍 배웠다.



회사에서의 침묵은 종종 오해를 낳는다.

적극적이지 않다, 의욕이 없다, 생각이 없다. 그러나 침묵하는 사람의 머릿속은 오히려 과잉으로 돌아간다. 이 말을 해도 될까, 지금 이 타이밍이 맞을까, 저 사람의 말에 반박하면 관계가 틀어지지는 않을까. 그는 말을 줄이는 대신 맥락을 늘린다. 그 결과 침묵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을 접어 넣은 상태가 된다.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말을 삼킨 결과다.



회사는 개인의 언어가 조직의 언어로 번역되는 장소다.

개인의 생각은 보고서가 되고, 감정은 태도로 평가되며, 침묵마저도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회사에서 침묵하는 사람은 이 번역 과정의 잔혹함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말이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 맥락 없이 잘려 나가 평가될 위험을 그는 경험으로 체득했다. 그래서 그는 말의 순도를 지키기 위해 차라리 말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침묵은 자기 생각을 보호하는 가장 원시적인 방어기제다.



문학적으로 보면 회사에서 침묵하는 사람은 늘 문장의 괄호 안에 산다.

말해도 되지만 말하지 않는 문장들, 쓰였으나 제출되지 않은 의견들, 회의록에 남지 않은 생각들. 그 괄호 안의 문장들은 공식 기록에는 없지만, 그의 하루를 구성하는 가장 큰 부분이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야 비로소 그 문장들을 꺼내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퇴근길 지하철에서, 샤워를 하며. 회사에서 침묵한 대가로, 그는 혼자 있을 때 더 많은 말을 한다.



회사에서 침묵하는 사람은 대체로 책임감이 강하다.

말 한마디가 팀에 어떤 파장을 남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감정적인 발언을 피하고, 확실하지 않은 의견을 보류하며, 자신의 확신마저도 한 번 더 검증한다. 그러나 이 태도는 종종 오해받는다. 리더십이 없다, 존재감이 약하다. 회사는 종종 조용한 신중함보다 시끄러운 확신을 더 빠르게 인정한다. 그 속도 차이 속에서 침묵하는 사람은 점점 더 말을 아끼게 된다.



심리적으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그가 침묵에 너무 익숙해질 때다.

말하지 않아도 일이 돌아가고, 문제 삼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며, 침묵이 곧 성실함으로 오해받기 시작할 때. 그 순간부터 침묵은 선택이 아니라 역할이 된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 되고, 그 역할에 맞는 태도를 스스로에게 요구한다. 불편해도 말하지 않고, 부당해도 넘기며, 결국 자기 감정을 업무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축소한다.



그러나 침묵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회사에서 침묵하는 사람의 진짜 언어는 표정, 속도, 타이밍에 숨어 있다. 이메일의 문장 길이, 회의에서 고개를 드는 순간, 질문이 끝난 뒤 잠깐의 정적. 그는 말 대신 신호를 보낸다. 다만 그 신호를 읽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회사는 대개 명확한 언어만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침묵하는 사람은 결국 두 가지 선택 앞에 선다.

계속 침묵하며 자신을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언어를 되찾을 것인가. 이 선택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다. 이건 우리가 쓰고 있는 글도 마찬가지다. 말해도 안전한 공간에서만 사람은 말할 수 있다. 침묵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조직이 만들어낸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사에서 침묵하는 사람을 단순히 조용한 사람으로 부르기 전에,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는 왜 말하지 않게 되었는지, 어떤 말들이 그렇게 사라졌는지. 침묵은 언제나 결과다. 그가 말을 잃은 것이 아니라, 말이 머무를 자리를 잃었을 가능성을. 회사에서 침묵하는 사람의 진짜 언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말하지 않는 쪽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But ! the most important thing to keep in mind.

그는 가장 강력한 한 방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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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한 감정과 쉽게 합의된 문장들 사이를 기록합니다. 빠른 공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자 합니다.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 58일째 거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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