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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은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가

성찰과 행복의 불일치

by 구시안

이 질문에는 이미 약간의 냉소가 섞여 있다.

사색은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적어도 단순하게는 아니라는 것을. 사색은 삶을 윤택하게 만들겠다는 약속서를 써주지 않는다. 통장 잔고를 늘려주지도 않고,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정리해주지도 않으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갑자기 인생이 명료해졌다는 감각을 선물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색은 삶을 종종 더 복잡하게, 더 느리게, 더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색하는 사람은 늘 약간 곤란한 존재다. 질문이 많고, 확답이 없고, 결론을 미루는 사람. 사회는 그런 인간을 효율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색을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색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바쁘게 살고, 적당히 만족하고, 충분히 잘 지내는 와중에도 어느 순간 생각은 옆구리를 찌른다. 이게 정말 전부인가. 이 선택은 어디서 왔는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나의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생산성이 없다. KPI로 환산되지 않고, 성과 보고서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말한다. 너무 생각이 많아. 인생은 그냥 사는 거야. 그러나 그런 말은 대부분, 생각을 멈추는 데 실패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는 주문에 가깝다.



심리적으로 사색은 자해에 가까운 취미다.

사색은 상처를 낫게 하기보다, 상처의 모양을 정확히 보여준다. 왜 아픈지, 어디가 썩고 있는지, 언제부터 균열이 시작됐는지를 집요하게 들춰낸다. 덮어두면 그럭저럭 굴러갈 수 있었던 마음을, 굳이 멈춰 세워 해부한다. 그래서 사색은 삶을 ‘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편안함에 대한 환상을 부순다. 사색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쉽게 납득하지 못하며,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이쯤 되면 사색은 개선이 아니라 훼방처럼 보인다.



풍자적으로 말하자면, 사색은 인생을 망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결정은 늦어지고, 확신은 희미해지며, 타인의 말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사색하는 사람은 늘 한 박자 늦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혼자 고개를 갸웃하고, 다들 박수칠 때 왜 박수를 쳐야 하는지 묻는다. 조직에서는 피곤한 인간이고, 인간관계에서는 예민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삶이 ‘잘 굴러가게’ 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사색은 분명 비효율적인 선택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사색은 삶을 더 나아지게 하기보다 삶을 더 정확하게 만든다.

그리고 정확함은 언제나 불편하다. 사색은 우리가 붙잡고 있던 가치들이 얼마나 임시적인지, 신념들이 얼마나 환경에 의존적인지, 도덕이 얼마나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우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깨달음은 삶을 고급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더 이상 거짓으로 포장할 수 없게 만든다.



문학적으로 사색은 서사를 지연시킨다.

이야기가 흘러가려는 순간, 사색은 멈춰 서서 묻는다. 이 장면은 정말 필요한가. 이 인물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 결말은 이렇게 단순해도 되는가. 사색은 이야기의 속도를 늦추고, 여백을 만든다. 그 여백 속에서 독자는 불편해지고, 생각하게 되고, 자기 삶을 끌어와 문장 사이에 끼워 넣는다. 사색은 완성된 이야기를 주지 않는다. 대신 계속 작동하는 질문을 남긴다. 그것은 소비하기 어려운 문학이고, 빨리 잊히지 않는 삶이다.



그래서 사색은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느냐는 질문 자체가 약간의 오해를 품고 있다.

사색은 삶을 업그레이드하는 기능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탈색시키고, 불필요한 장식을 벗기며, 남아 있는 것을 그대로 보게 만든다. 그 결과 남는 삶은 더 나아졌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덜 행복하고, 덜 확신에 차 있으며, 덜 단순하다. 그러나 그 삶은 적어도 덜 속고 있다.



사색의 가장 큰 풍자는 여기 있다.

사색은 삶을 개선하지 않으면서도, 한 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생각하지 않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질문을 품기 전의 단순함은 복원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색은 일종의 비가역적 선택이다. 유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미 알게 된 것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이 점에서 사색은 성장이라기보다 감염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색은 완전히 무용하지 않다.

사색은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지는 않지만, 삶을 더 ‘자기 것으로’ 만든다. 남이 정해준 기준으로 잘 살고 있다는 안도 대신, 내가 선택한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는 자각을 남긴다. 그 자각은 피곤하지만, 대체 불가능하다. 사색은 삶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을 타인의 것이 아닌 상태로 유지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사색은 삶을 더 나아지게 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더 정직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떤 인간에게는, 그 정직함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며, 때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그 태도가, 결국은 삶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만든다.



그게 사색의 전부다.

구원은 없고, 보상도 없으며, 다만 끝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힘만 남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여긴 생각이 쓸모없어져도 버려지지 않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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