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름이라는 결단

서두르지 않기로 한 사람

by 구시안

나는 움직이지 않기로 선택한다.

이 문장은 느리게 읽혀야 한다. 너무 빨리 읽히는 순간, 이 문장은 자기 자신을 배신한다. 움직이지 않겠다는 말은 멈추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방향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세계는 늘 방향을 요구한다. 앞으로 가라, 위로 올라가라, 더 빨리 결정하라. 그 요구들은 친절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나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서 있다.
어디로도 가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어디로도 가지 않기로 선택한다. 이 선택은 소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다. 떠난다는 것은 때로 용기처럼 포장되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견디지 못한 결과다. 속도가 나를 앞지를 때, 결론이 생각보다 먼저 도착할 때, 사람들은 떠남을 선택한다. 머무름은 그 반대다. 도망치지 않겠다는 의지, 그러나 싸우지도 않겠다는 결단.



머무름은 가장 오해받는 상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생산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고, 결과를 내놓지 않는다. 그래서 무능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머무름은 고도의 긴장을 요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참아야 한다. 반응하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반응의 충동을 통과해야 한다. 머무름은 느슨함이 아니라, 억제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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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한 감정과 쉽게 합의된 문장들 사이를 기록합니다. 빠른 공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자 합니다.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 68일째 거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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