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담배 그리고 또 하나의 밤

by 구시안

기관지 부근에서 불쑥 튀어나와
자신의 정체를 차가운 바람에 노출시키고 싶어 하는
목구멍으로 넘긴 변태같이 뜨거운 커피는
위를 녹일 것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 변태를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아
꾹 참고 있었다.


아 뜨거! XX.


솔직한 포효에 카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시계가 오늘따라 밥을 잘 잡쉈는지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투명한 문을 박차고 나오자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거 이동하기 시작한 개미굴로 쏟아지는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하늘에서는 눈을 찌를 것만 같은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이 좀 늦어지겠지만, 저 지옥굴에 사람들 틈에 끼어 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들린 카페에서 변태같이 뜨거운 커피맛을 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물을 끓였길래, 염병.


제우스의 번개로 쏘아댔나.


"Oh my God!"


아니지. 게으르고 배부른 신은

더 이상 부르지 않기로 했으니,


“Oh my gosh.” 로 하자.




잠시 노트북을 펼쳐 정리할 것들을 정리하고, 잠시 내 자리가 보이는 밖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섬뜩할 만큼 아직도 이동 중인 사람들의 행렬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마치 뭔가 비밀스럽게 즐기러 가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었고, 온몸에 곰이 삼백 마리 정도 붙어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저렇게 사람들 틈에 끼어 가느니, 카페에 앉아 사람들이 헐렁해 질 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변태같은 커피를 뒤로 하고 조금 걸어서 큰 책방이나 들렸다가 두 권의 책을 들고 나왔다.


아무리 찾아도 어디에 두었는지 보이지 않아 허전해하고 있던 차에,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소중한 소장용으로 언제든 다시 읽어볼 수 있게 재구매를 했고. 또 하나는 처음 읽어보게 되는 작가.

전혀 관심이 없던 이슬아 작가의 「갈등하는 눈동자」라는 에세이 책을 사 들고 나왔다. 사실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두께도. 딱 좋아하는 사이즈. 좋아하는 색에 디자인도 훌륭하다. 종이책이라면 이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까지 들 정도로. 아주 잘 만든 종이책이었다. 솔직히, 이슬아 작가의 책을 읽을지는 모르겠다.




어떤 언어도 존재를 구속하지 않았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간결한 감탄사와 과장된 문체, 정신이 몽롱한 천국으로 데려갈 만큼 약에 취한 형용사들의 만국기를 만들어 본다거나, 지겨운 완곡어법으로 모든 실체를 덮어버린다거나 하는 생각을 나는 굳이 하지 않는다. 관용어가 나타나기 이전의 즐겁고 흐린 의식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를 묻는 대신, 무엇을 써야 할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생각나면 쓰고, 쓰여진 글에 맞는 제목을 붙일 뿐. 뭘 고민하랴. 그냥 쓰는 것이지.


오늘 사투리를 쓰는 사람과 오랜만에 너무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거시기.


거시기하는데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모든 게 거시기였고

진짜 거시기했다.

거시기가 정확히 뭔지를 말하라고

풀어서 설명 좀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얼추절추 짜맞추니 이게 이야기가 되더라는 말이다.

완벽하게 이해도 가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제스처가 동반되어 있었다.

그 거시기라는 말을 하는 입과

그것을 가리키는 제스처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말만으로는 도무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참 재밌는 대화였다.

언어라는 게 이리도 쉬웠던가 싶을 만큼.


일로 만났지만, 시원시원한 것이.

헤어지며 악수를 하고도 참 거시기한 만남을 기뻐했다.

정말 오랜만에. 아주 거시기한 재미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진짜 언어의 마술사였다.

거시기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니. 부러웠다.




담배는 나를 세상에 남게 하고, 책은 나를 세상에서 지워버린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하루를 견딘다.


담배를 피울 때마다 생각한다.

살아 있다는 건 폐로 들어온 연기가 다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안도하는 일이라고.


책을 펼칠 때마다 확신한다.

생각한다는 건 이미 패배한 자들이
도망칠 언어를 찾는 행위라는 걸.


담배는 짧고 솔직하다. 책은 길고 교활하다. 그래서 나는 담배를 사랑하고 책을 신뢰하지 않는다. 책 속에서 인간은 항상 이유를 가진다. 현실에서 인간은 그저 버릇처럼 산다. 나는 문장을 읽다가 살아야 할 이유를 잊고, 연기를 들이마시며 죽지 않아야 할 이유를 떠올린다. 세상은 나에게 의미를 요구하지만,

나는 오늘도 재와 종이 사이에서 아무 쪽도 선택하지 않는다.


담배가 끝나면
책장을 넘기고,
책장이 끝나면,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 반복이야말로 내가 철학을 가장 정직하게 실천하는 방식이다.


조지오웰의 산문선을 읽고 있다.

이게 참.

글을.

참.

정말 잘 쓴다가 아니라.

그가 쓴 글로 감탄하기 이전에.

나는 이 모든 글이 말해주는 설명들이 이해가 먼저 가니 이 '조지 오웰'은 참 대단한 작가이다 싶었다. 윤곽을 흐리게 하여 세부내용을 덮어버리는 것이 없는, 말 그대로 원자폭탄 같은 글이었다. 고이 모셔두려 한다.

아주 잘 산 책이다.


가능한 것을 꿈꾸는 이들은 진짜 환멸을 느낄 것이 다분하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자기를 괴롭힐 것인지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안되면 난리라도 날 것처럼 굴지만, 어차피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그걸 인정해 버리면 쉬운데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인간은 늘 그렇게 지저분한 감정과 불안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인가 보다.


나는 단순한 몽상가 정도로 살다가 가도 괜찮은 삶이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이 나를 달래주고, 사람이 쓴 책과 사람이 만든 담배를 갖고 노는 몽상가 정도면, 가능한 꿈을 굳이 이루지 않아도 그것이 우연적인 일이 되어 의존하지 않게 되길 바랄 뿐이다.


지금이 나는 딱 좋다.


한낮에 텅 빈 사무실에서 창가에 기댄 채 거리를 내다보는 잠시의 시간처럼.

조금은 더 길게 나의 공간으로 돌아와 창가에 기대어 내다보는 지금의 이 시간의 차이는

'길이'다.

그 길이가 조금 더 여유가 있고 구속받지 않는 시간대에 놓인 것 뿐이다.


워낙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밤도 있는 터라,
불편하게 창가에 발을 걸친 채 잠에 들지 않기를 바라지만, 물질적인 차원을 포기하고 상상력을 동원해 탐구하는 일보다, 그저 어느 하늘 아래에서 책을 쓰는 작가의 글에 잠시 눈을 맡겨 보고, 입은 심심하고 그 입이 추워하니, 그 아궁이에 불을 조금 더 때어 주는 일이 무엇이 그리 나쁜 일이겠는가.


나에게는 충분히 좋은 일이다.

그 책과 담배, 그리고 밤이 있어 좋은 또 하나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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