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밥통에서 사는 사람들

섞이지 않기로 한 사람의 기록

by 구시안

일종의 시장조사를 핑계 삼아 임원들을 조질 생각이셨는지, 제법 품격 있는 청담동 어느 주점 이층에 자리를 잡고, 꽤나 감질나고 맛깔스럽고 정성스러운 음식들이 차례로 나오고 있었다. 여위고 키가 큰 편인 '김' 이사라는 존재는 늘 대표의 옆자리에 어떻게든 끼어 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 그때 딱 마시고 싶던 술이 들어왔다.


저녁 여덟 시부터 시작된 이 거지 같은 모임을 축하라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판 위에 나를 올려두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상한 촉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자리가 어쩌면 나를 시험하는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그럴 즈음, 세상에 이런 멍청이들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저토록 현명하게 취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유전자의 특성상 술에 잘 취하지도 않는 말통인 나는, 오히려 작은 무인도 같은 섬이 되어 혼자 술을 따르고 마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채, 고립된 풍경처럼. 그런데도 그들의 행각은 끝내 미장센처럼 보이지 않았다. 장면은 있었지만 연출은 없었고, 소음은 있었지만 의미는 없었다. 틀려먹은 일이다, 싶었다. 그래서 결론은 간단했다. 그냥 즐기자. 그냥, 술자리였다.


옷차림을 살피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렇다 치더라도, 같은 밥통에서 살아가며 월급이라는 것을 꺼내 먹는 자들과 친해질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픈 걸까? 나는 오히려 지금 이 상태가 가장 완벽한 ‘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눈길이 가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냉소적인 내가 실실 웃으며 다가가지는 않았다. 누군가 찾아와도 거리를 두는 완벽한 대사를 갖추고 행동했다. 그렇게 차갑게 굴면서도, 스스로 선을 그어 준 이들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창백하고,
눈깔의 색은 교묘하며,
선한 인상이라기보다 강한 인상을 주는 호불호가 정확히 갈리는 나라는 존재는, 같은 밥통 안에서 살아가면서 친구를 만들거나, 같은 일을 꾸미거나, 무언가를 추구할 유전자가 애초에 결여되어 있었다. 그것이 회사라는 밥통의 속성이기도 했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같은 밥통 안에 사는 사람들의 실태가 어느 정도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취향이 나와 비슷한 대표의 방은, 마치 나의 방처럼 현대적인 정신병동을 닮아 있었다. 모든 것이 하얗고, 히노끼 향이 은은하게 스며 있으며,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갖춰져 있었다. 대표는 권태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그 어딘가쯤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두껍고 푹신한 팔걸이 의자, 나풀거리는 하얀 커튼, 깔린 양탄자 속에서 담배를 피우며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우연히 볼 때마다, ‘보통은 아니겠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 자리에 오는 것을 꺼려했음에도, 나는 내 자리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소음 속에서 술을 한 잔씩 꺾으면서, 나는 이 사람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서서히 그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한쪽은 실의에 잠긴 채 찌그러져 있었고, 차갑게 굳어버린 괴로움이라도 몰려온 것인지, 내 앞의 두 명은 흉통을 쥐었다가 놨다가를 반복하다 뛰쳐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토해낼지를 거의 예측할 수 있었다. 옆에서 “마셔요. 마셔요.” 하고 똑같은 단어로 시를 읊는 사람은, 기대해봐야 소용없다고 포기라도 한 듯한 곡조로 시조를 읊고 있었다. 한복만 입지 않았을 뿐, 조선 양반 같은 태도였다. 대수롭지 않은 우연이라 하기엔, 자리는 이미 너무 정해진 대로 치러지고 있었고, 자연스러운 대화의 장이 되기에는 이미 글러먹은 듯했다. 자리를 뜰 무렵, 나의 이름을 부르는 대표가 웃고 있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대표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해본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약간 부끄러워하면서 물어보지도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대표의 눈은 진실을 토하고 있었다. 열렬히 칭찬해 주는 통에 이것이 꿈인가를 생각해 봤지만, 여전히 현실 세계의 목소리는 존재했고, 내 옆에서 진실을 토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엮고 있는 대표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있었다. 근데 이게, 나쁘지 않은 거다. 이 순간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단골집에 들려, 좋아하는 처음처럼을 깠다.

똥집하나 시켜놓고 얼마든지 죽을 쳐도 되고,

결핍이든 번민이든 뭐든 생각나는 모든 것을 혼자만의 시간에서 털어보는 것도 체화된 것이기에 얼마든지 즐겨도 괜찮은 시간을 이용하는 것뿐이니 상관없었다.


어떻게 살다가 여기 가지 기어 오게 된 건지.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따라 마시는 소주가 달았다.

똥집은 쫀득거리게 입안에 녹아내리기 시작하고, 생각은 줄줄 새어 나오니 마음이 펑크 나기 시작한 것을 때우지는 않기로 한다. 마주치며 짧은 목례정도로 싹수없게 지나가던 나를 반성해 보고 있었다. 굳이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거짓처럼 행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것을 죽어도 못하니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정해진 휴가에 짧은 여행도 다녀오고 살면서, 그렇게 그냥 그렇게 세월이 지나가고 미련하게 후회 같은 것이 밀려오면 썼던 글들이나 돌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며 살고도 있지만, 사회라는 곳은 언제든 방 빼라는 셋방살이에 불과한데, 떠날 건데 굳이 주인장과 잘 지낼 필요까지 있나 싶었다. 어릴 적부터 혼자가 좋았다. 그냥 좋았다. 혼자가. 어느 집단에는 날라리 시절 잠시 소속이 되어 봤을 뿐. 담배와 롤라장 그것이 전부였다. 빙글빙글 도는 일. 어릴 적 어떤 단체나 구조에 일원이 될 거라는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때는 나이라는 것이 이런 속도로 달리는 것이라는 걸 몰랐으니까.


국가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한 건, 세금 잘 내고 사는 거 그거 뿐이다.

인생에서 맞닥뜨린 이런 사람들이라는 숲 속에서 이어진 거미줄 같은 관계를 별로라 하면서. 고립된 본능이 만든 형상 그대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살아왔다.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야 늘 겪었던 것이고, 그것이 나인데 어쩌겠는가. 오는 사람잡지 않아고, 가는 사람 막지 않았다. 그게 깨끗했다.


아무 연관성이 없고, 연관성을 갖추려는 의지도 없는 단상 속에 거짓이 아닌 사실을 기록하고 싶었으니까. 그 이름을 무슨 ‘고백’이라느니, ‘자서전’이라느니, 그런 진부한 제목을 붙일 마음도 없었다. 그저 이런 깊은 밤에

기록이라는 핑계로 글이나 쓰는 것이 편안하니까. 그거면 충분하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는 일이 제법 오랫동안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할 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할 말이 많으니 말을 안 하는 사람이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좋아졌나 보다.

유전자에도 금이 갈 수 있는 것인가. 이 밤, 이상하게 조금은 달라진 나를 발견하고 있다. 가슴 한 켠이 이상하게 반응한다. 그 같은 밥통에 사는 사람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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